근대화 산업화의 산물, 신문이 대규모 공장제라면 잡지는 소규모 가내수공업이다. 책을 만들 편집자 1명과 창고 같은 사무실만 있으면 잡지는 나온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어느 누군가가 허름한 골방에서 끄적인 글 한편 만으로 충분히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사회에 신선한 변화를 줄 수 있던 여유롭던 시절에 잡지도 세상을 풍미했다.

불교잡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까지 잡지는 불교계 언론의 총아였다. 일제시대 다양한 모습으로 선을 보였던 불교잡지는 1962년 조계종단 출범 후 한국불교계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면서 제 시대를 열기 시작한다. 1962년 <불교사상>을 시작으로 ,1964년 <불교생활>, 1966년 <백련>, 1967년 <법시> <법륜>, 1969년 <불교문화> 까지 1960년대 다양한 불교잡지가 선보였다. 초창기 잡지는 주로 재가불자들이 만들었으며 내용은 교리와 신행을 주로 담았다.

스님들은 정화를 거쳐 1962년 출범한 신생 조계종단에 큰 기대를 걸고 그 아래로 모여들었다. 법정, 운학 등 젊은 승려들은 <대한불교> (불교신문 전신)를 통해서 사자후를 쏟아냈다. 열흘에 한 번 나오는 대한불교는 신문보다는 잡지에 가까웠다. 1970년대 들어서 상황이 달라졌다.

통합 조계종단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 살림을 차린 대처승측은 태고종을 만들며 분종(分宗)했다. 신생 종단에 대한 스님들의 기대는 점차 사라져갔다. 1970년 태고종 총무원은 월간 <불교>를 만들었다. 통합종단의 법을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던 광덕스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젊은 불자들과 함께 새로운 불교운동을 모색한다. 1974년 11월 <불광>이 사람을 모으고 사상을 전파하는 구심 역할을 했다. 1975년에는 <법시>를 이끌었던 종달 이희익이 최초의 선(禪) 잡지 <선문화>를 창간했으며 1979년 5월 도선사가 <여성불교>를 창간했다.

1960~70년대 이같은 분위기를 이어 1980년대 들어서 불교잡지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종단 사찰 개인 출판사 등 발간 주체가 다양해졌고, 시사, 어린이 등 관심 분야도 넓어졌다. 가장 주목되는 잡지는 1982년 3월 창간한 <해인>이었다. 1980년은 한국불교계에 가장 치욕스런 해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기위해 불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10.27 법난을 일으켰다.

이에 충격을 받은 젊은 승려들은 1950~60년대 그들 은사들이 종단을 세우는데 몰두했던 것과 달리 사회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고민이 <해인>으로 나타났다. 총림 해인사의 방장이며 조계종 종정이던 성철스님의 법문과 사회 문제에 눈을 뜨던 젊은 스님들의 울분이 함께 실린 이 잡지는 합천 가야산 골짜기를 벗어나 한국사회 전반에 울려 퍼졌다. 1983년 조계종 총무원은 ‘인간 시대, 그 내일을 밝히는 불교사상’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불교사상>을 만들었다.

학술적 성격이 강했던 이 잡지는 당시 혼란했던 종단 상황을 반영, 중앙종회가 열리면 정쟁의 한 복판에 내몰리기도 했다. 1985년 1월에는 천태종이 ‘우리의 숨결, 불교를 알리자’는 기치로 <금강>을 창간했다. 아직은 낯설었던 천태종을 홍보하고 불교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명성을 날렸던 <금강>은 신문에 밀려 옛 명성을 찾지 못하고 이후 쓸쓸히 퇴장했다.

1985년 6월 현대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잡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대중불교>로 이름을 바꾸는 월간 <대원>의 등장이다. <대원>은 여러모로 이전의 잡지와 달랐다. 우선 외형이 한 손에 쥐는 작은 판형에 활자만 있던 기존 불교잡지와 달리 컬러 사진이 들어간 크고 시원한, 그야말로 현대식 잡지 모습을 띠었다. 내용도 불교교리를 홍보하던 사상지에서 탈피해 사회와 종단 문제 신행흐름 등 시사적 성격에 가까웠다. 이는 대한불교진흥원과 해방 후 처음으로 불교교양대학을 설립하는 등 대중불교운동을 선도했던 대원정사의 적극적 지원 덕분이었다. 진보적인 내용으로 청년불자와 스님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원> 편집실은 불교운동가들의 회의장소며 아지트였다.

1989년에는 최초의 어린이 전문 잡지 <굴렁쇠어린이>가 나온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이벤트였던 ‘굴렁쇠’에서 따온 이름에서 보듯 이 잡지는 불교 범위를 넘어 어린이 전문 잡지를 표방했다. 어린이 잡지답게 올 컬러에 화려한 편집이 눈길을 끄는, <굴렁쇠어린이>는 이후 출판사가 명성을 떨치면서 책 이름도 출판사와 같은 <동쪽나라>로 바꾸며 재기를 도모했지만 잡지시대의 퇴조 속에 1996년 문을 닫는다.

포교사 전문지를 표방한 <월간 법회>, 서경보스님이 발행인이던 <선사상>, 시사문제와 불교계 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뤘던 월간 <현대불교> 도 1980년대를 대표하던 잡지였다. 여기에다 <봉은> <신행회보> <관음> <동학> 등 다양한 형태의 사보들이 1980년대의 불교잡지를 더 풍요하게 만들었다. <법륜> <법시> <불광> 등 그 이전 나왔던 잡지들과 더불어 1980년대 한국불교 언론은 잡지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부하고 다양했다. 그 기세는 적어도 1990년대 초반 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잡지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기울어갔다. 이는 비단 불교잡지 뿐 아니라 언론계 전반적인 변화였다. 잡지를 대신한 것은 신문이었다. 1988년 언론출판 자유화와 민주화 물결을 타고 많은 신문이 등장했다. 불교계에도 <불교신문>과 <주간불교>가 양분하던 신문 시장에 <법보신문> <해동불교> <대한불교> 등 신생 언론이 등장했다. 이어 1994년에는 한마음선원이 <현대불교>를 창간 하는 등 1990년대 신문 전성기를 열었다. 잡지가 물러나고 신문이 주름잡던 시기는 한국불교계가 이전보다 훨씬 복잡 다양해지던 불교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8면 신문 지면을 채우기 힘들 정도로 한가하던 불교계는 사회 복지 문화 문화재 해외 학술 등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논의 과정도 빨라졌다.

‘한가한’ 잡지가 감당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잡지가 하던 것은 물론 하지 못하던 영역 까지 신문이 담아내면서 잡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초창기 신심과 원력으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잡지를 창간하고 이끌었던 재가불자들이 떠나거나 나이든 것도 잡지 침몰에 한 몫 했다. <법시>와 <선문화>를 창간했던 종달 이희익, <법륜>의 박완일이 대표적이다. <법륜> <법시> <불교사상> <법회> <선사상> <현대불교> <굴렁쇠어린이>가 문을 닫았다. 막을 내린 잡지는 모두 발행인이 재가불자였다. 1992년 나중에 <불교문화>로 이름을 바꾼 <다보>가 창간 한 것 외에 1990년대는 이처럼 불교계 잡지가 종말을 고하는 시대였다.

1960년대부터 80년대 까지 잡지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던 재가불자들이 떠나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찰과 스님들이 불교계 잡지 시대를 이끈다. 그 흐름은 2000년대 들어서 더 공고해져 이제는 불교계 잡지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선 사보(寺報)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불광> <해인> 등 전통적인 사보가 계속 발전해가는 가운데 동학사 청암사 봉녕사 등 비구니 강원에다 송광사 통도사 등 주요 사찰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보를 발간해 지금도 성장 중이다.

사보는 발간하지 않는 사찰을 찾기가 더 적을 정도로 많아졌다. 1990년대 초반에 설립했던 스님들의 결사단체인 선우도량과 실천불교전국승가회도 각각 <선우도량>과 <화두와 실천> 등 무크지 성격의 잡지를 발간했다. 현재 발간되고 있는 잡지 중에서 대표로 꼽히는 해인사 <해인>, 불광사 <불광>과 <공감플러스>, 봉은사 <판전>, 신흥사 <불교평론>과 <유심>, 선학원 <선원>도 모두 사찰이 발간 주체다. <불교와 문화>을 발간하는 대한불교진흥원만이 유일하게 단체다.

내용과 주제는 불교사상 교리 신행 일변도이던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특히 문화 관련 잡지가 많아졌다. <차의 세계> <차와 문화>, 창간호만 내고 없어진 <선과 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판전>과 지난해 판형과 내용을 대폭 바꾼 <불광> 역시 문화재, 풍경 등 사찰 문화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불광사가 계간 형태로 발간하는 <공감플러스>는 지역 문화지 성격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사찰이 사보가 아닌 지역 전문 잡지를 내는 것은 현재 불광사가 유일하다.

1999년 창간, 통권 52호를 발간한 <불교평론>은 불교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제반 사회문제를 불교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학술지와 대중지의 중간 성격을 띠고 있다. 선학원 발족 당시 한암, 석두, 용성, 만해스님 등이 부처님의 참뜻을 이 땅에 구현하고자 간행했던 선(禪) 전문잡지 <선원(禪苑)>의 맥을 잇는 선학원의 <월간 선원>은 주로 선 관련 주제를 많이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유심>은 유일한 불교 문학 전문 잡지로 매번 신인 작가들을 발굴, 지면에 소개한다.

통신 영상 활자가 결합한 현재 언론은 그릇의 의미가 없는 시대를 맞았다. 대중들은 이제 담은 그릇이 무엇이든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서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대중의 염원을 정확하게 읽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를 갖춘 자는 아무런 장애 없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그런 점에서 너무 빨라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이 시대에 현상 뒤에 가린 진실을 드러내고 가야할 길을 제시해왔던 잡지가 더 위력을 발휘할 지도 모르겠다.

박부영/불교신문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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