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에서 전통사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문화유산을 자연경관이나 문화재 뿐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무형문화를 포함한 입체적인 개념으로 확장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흔히 절을 말할 때 우리는 기와지붕의 나무집 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스님들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아직도 깊은 산속 바위굴에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세상 인연을 끊고 오직 깨달음을 위해 살아가는 노스님의 맑은 얼굴은 불자들이 생각하는 스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차타고 도심을 가로지르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고 고민하는 스님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참선정진하는 스님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근래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스님들의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스님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랍니다. 오랜 세월 절을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는 스님들의 일상은 어떤 걸까? 우리가 잘 몰랐던 스님들의 살림살이를 구석구석 살펴보죠.

스님이 되려면?
남자스님은 비구, 여자스님은 비구니라고 합니다. 스님이 되려면 먼저 가출이 아닌 출가를 해야 합니다. 집을 나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집단생활을 하게 되는데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를 지켜야 합니다. 보통 불자가 5계를 지키는 거에 비해 굉장히 많은 계율을 지켜야 하니 예사 각오가 아니면 스님 되기가 쉽지 않겠죠? 인도말로는 노동하지 않고 얻어먹으며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답니다.

경전에 나오는 최초의 비구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입니다. 카필라성의 정반왕이 출가한 아들 싯타르타(석가모니의 출가 전 이름)를 걱정해 성안의 귀족 출신의 수행자 다섯 명을 보내 함께하게 했죠.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를 찾아가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첫 법문을 듣고 최초의 비구가 됩니다. 초전법륜(처음으로 불법의 수레바퀴를 돌렸다는 의미)으로 불리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요즘은 종단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조계종을 기준으로 18살에서 50살 미만인 고졸이상의 건강한 성인만 출가 할 수 있습니다. 학력은 고졸 이상입니다. 여러분도 스님이 되려면 공부를 좀 더 해서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간혹 동자승들을 볼 수 있지만 이런 애기스님들은 정식 출가가 아니라 봉축 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이벤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칙적으로 어린아이의 출가는 부처님 당시에도 아주 엄격하게 제한됐습니다.

조계종으로 처음 출가하게 되면 행자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출가를 목적으로 절에 왔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게 아니라 정말 스님노릇을 잘 할 수 있는 자질과 곧은 마음을 가져왔나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일단 예비 등록을 한 행자는 기본적인 의식공부와 대중생활 6개월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 뒤 종단에서 시행하는 5급 승가고시라는 수계산림(보름동안 열리는 예비학교 같은 겁니다)에 들어가 엄격한 시험을 치러야 예비승려라고 하고 사미 사미니 법계를 받습니다.

▲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열린 조계종 스님들의 구족계 수계산림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다시 강원이라고 불리는 기본교육기관 승가대학을 4년 동안 다녀야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도 중도탈락이 많다고 합니다. 어렵게 공부를 마치면 구족계 수계산림을 거쳐야만 정식스님으로 인정받습니다. 쉽지 않죠? 이렇게 되기까지 최소 5년에서 6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나마 다른 불교국가에 비해선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엔 강원교육만 10년이었다고 하네요. 요즘 남방불교권이나 티베트도 정식스님이 되는데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화합대중의 민주주의 ‘대중공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말 가운데는 불교에서 온 말들이 참 많습니다. 절집의 말이 흔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그만큼 불교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기도 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걸 ‘대중’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불교의 ‘화합대중’에서 나온 말입니다. 부처님이 제자들을 받아들여 승단을 꾸려가는 과정을 경전에서는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으로 시작해, 마하가섭 같은 당대의 인도 사상가들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불법에 귀의하는 내용은 무척이나 박진감 넘치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죠. 하지만 그 속에서 다투고 갈등하는 것은 부처님 시대에도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선지 부처님은 늘 화합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2600년이 지나면서 불교는 나라마다 문화적 지리적 차이에 따라 의식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특이한 문화를 가지게 됐습니다. 특히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에게 ‘문중’이라는 유교적 개념이 있습니다. 처음 출가하면 속세의 부모와 같은 은사 스님을 정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스님들은 어디를 가던 누구의 제자인지, 어디 문중인지를 따지는 일이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강조하게 된 건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성을 중요시하는 ‘승가대중’들의 필요가 낳은 자연스런 결과기도 하죠. 개인을 내세우기보다 집단 안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게 미덕인 전통적 동양의 사고방식에도 걸맞아 보입니다.

그런데 친구들도 학교에서 나와 정말 친한 친구가 있는 반면 싫어서 가까이 하기 싫은 친구들이 있죠? 그래서 다투거나 갈등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 깨달음을 얻어 ‘보살’이나 ‘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화합은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이 처럼 승단에서도 화합을 해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스님들은 ‘대중공사’라는 방식으로 집단의 지혜를 발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당사자가 자신의 허물을 대중들 앞에서 드러내 놓고 참회하면 함께 사는 스님들 모두가 의견을 내고 최종 처분을 결정하는 겁니다. 또 어른을 모시거나 절집안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것도 이 대중공사를 통해야 가능합니다. 몇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대중의 뜻에 따라 집단을 이끄는 스님들의 지혜는 오늘날 한계를 보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훌륭한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어쨌든 부처님의 제자라면 화합하는 일을 제일로 여기고 마음속에 늘 명심해야겠습니다.

울력과 수행하는 스님들의 일상
스리랑카나 동남아시아 불교의 스님들과는 달리 대승불교권이라고 불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스님들은 ‘위로는 보리(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보리와 중생구제는 출가자의 가장 큰 의무라는 뜻이죠. 그런데 한국 스님들은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판(理判)과 불사와 사찰의 살림을 담당하는 사판(事判) 스님들이 협력해 불교를 발전시켰습니다. 흔히 쓰는 이판사판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심에 나와 신도들과 함께하며 교화에 힘쓰는 스님이 있는가하면 산사에서 오직 수행에만 몰두하는 스님들이 있죠.

▲ 비구니 스님들의 농사 울력

 

수행하는 스님들의 일과는 대개 새벽 3시부터 시작됩니다. 이건 전기가 없던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이치대로 적응하고 살아가려 하는 불교의 전통과 우주관이 살아 있다고 봐야 합니다. 3시 30분부터 새벽예불을 보고 간단한 죽으로 아침 공양을 마칩니다. 이른 아침 선방의 스님들은 좌복에 앉아 첫 정진을 시작하고 승가대학의 스님들은 오전 경전을 봅니다. 잠시 휴식시간이 지나면 오전 9시 경부터 일과가 시작되는데 각자의 역할을 정해 사중의 ‘울력’에 나섭니다.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일한다는 뜻입니다. 절집에서는 누구도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없는 게 불문율입니다. 예불을 빠져도 조금 봐주지만 울력을 빠지면 용서가 없다고 하죠. 따라서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 운문사 스님들의 예불모습
10시 30분엔 낮에 하는 사시예불이 시작됩니다. 점심은 대개 11시 경에 먹습니다. 점심(點心)도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를 가진 불교용어라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옛날 절에서는 낮에도 수행에 방해된다며 음식을 조금만 먹었다고 하네요. 본격적인 수행은 대개 오후에 진행됩니다. 좌복에 앉아 수행하는 선방스님들은 ‘화두’라는 말 숙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간화선’이라 불리는 수행법을 목숨 걸고 매진합니다. 오후 5시 30분경이면 다시 저녁예불이 시작됩니다. 예불 후엔 저녁공양 후 일과를 정리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전기가 없던 시절엔 해가 지는 때가 일과를 마치는 시간이었답니다. 보통 밤 9시 전후로 잠을 자지만 요즘은 공부나 수행이 부족한 스님이 좀 더 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좌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스님들이 이런 시간표대로 수행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루 세 번의 예불은 절집이라면 어디에서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우선 일과입니다.

쉼 없이 계속되는 스님들의 수행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한국스님들의 수행은 좌선 위주입니다. 조계종이 참선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님들의 수행방법이 참선만 있는 건 아닙니다. 수행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단련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라고 보면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타는 방법, 또 KTX를 타는 방법처럼 다양하지만 자신에게 맞고 유용한 방편을 따르는 게 보통입니다. 한국에선 가장 많은 스님들이 ‘간화선’이라고 하는 화두 참선수행을 택합니다. 간화선은 ‘화두’라는 말꼬리를 잡고 지극한 의심의 뿌리를 찾아내는 수행방법입니다. 지금도 여름 석달과 겨울 석달을 ‘하안거’ ‘동안거’라고 부르며 전국의 100여개 선방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선수행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수행은 염불입니다. 말 그대로 부처님을 입으로 소리 내 부르는 수행입니다. 쉬지 않고 ‘나무아미타불 관셈보살, 관셈보살, 관셈보살...’을 외우는 할머니 보살님들을 본적 있죠?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아미타부처님을 세 번 부르면 어떤 재난에서도 구해주고 극락으로 이끌어 준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이름을 외면서 삼매라고 하는 경지를 체험하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리내 외우는 것도 염불이라고 합니다.

간경도 스님들이 많이 하는 수행법입니다. 경전을 소리 내 읽는 건데 주로 승가대학의 학인스님들이 사용하는 수행법입니다. 이외에도 경전을 베끼는 사경도 스님들의 수행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범패나 불화를 그리는 스님, 노래나 춤을 추는 스님도 있죠. 깨달음을 구하는 치열함과 지극함이 바탕이 된다면 스님들의 수행은 그것이 어떤 형식이던 불자들에겐 숭고함 그자체로 인식됩니다.

치열한 구도의 일생과 열반
간혹 스님들을 성직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이건 매우 잘못된 표현입니다. 성직자란 말 그대로 성스러운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건데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 수행자라고 불러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스님들의 본분은 일생동안 수행해 성불하는 겁니다. 부처를 이루는 일이 직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렇게 살다 세상과 인연이 다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원래 열반은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말합니다. ‘입적’ ‘해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스님들이 돌아가셨을 땐 ‘다비’라는 전통불교의식의 장례를 치릅니다. 

▲ 큰스님의 다비식

인도에서는 육신을 태워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화장이 일반적인 장례였고 이러한 전통은 한국도 마찬가집니다. 부처님도 역시 다비를 했다고 하죠. 다비를 마치면 ‘사리’라고 하는 결정체가 남습니다. 그 가운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들이 있는데 이런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엔 통도사 금강계단과 봉정암 법흥사 정암사 건봉사 용연사의 보궁이 유명하죠. 작은 것은 깨알만한 것도 있고, 큰 것은 새끼손톱 크기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사리를 영험한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기도 합니다. 부처님을 비롯해 수 많은 선지식과 조사 큰스님들이 다비를 통해 사리를 남겼습니다. 조금은 남다르고 별나 보이지만 오로지 성불을 향해 가는 스님들의 삶과 수행이 있었기에 지금의 불교가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올 수 있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조용수 / 불교 TV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