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한 번도 학교를 떠나지 않고 30년에 가깝게 면역학이라는 생명의학 분야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참선 모임이나 경전 강의를 하는 내가 가장 접하게 되는 질문은 과학과 불교의 관계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그렇듯이 서양의 중세 이후 형성된 근대 사회는 분명히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현재의 과학이 우리가 미래에 겪을 앞으로의 여러 어려움도 다 원만히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합리적 이성에 의한 과학적 세계는 영국의 러셀이 말했듯이 수학적으로 표시될 수 있는 세계관이며, 그 연구 대상으로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적 과학주의에 의해서 이제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행복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실질적으로도 많은 환경 파괴 및 새로운 질병의 창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황을 설명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명확한 것의 하나로서 근대 과학적 관점이 자연이나 인간의 실상을 알기에는 부족하다는 점과 더불어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우희종 서울대 교수.
눈에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은 그 대상을 잘게 쪼개어 들어간다. 그렇게 잘게 쪼갠 각 부분을 잘 이해할 때 전체 모습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것을 분석적 환원주의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과 같아서 각 부분은 잘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체 모습을 아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다시 말하여 과학은 관계 덩어리인 사물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잘게 분해하여 관계를 끊고 들어가 분석하는 방식이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통해 사리(事理)를 밝힘으로서 인간들에게 편리함이라는 욕망의 만족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이다.
현재 근대 과학이 봉착한 한계는 서양의 분석적 환원론의 한계로부터 온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흔한 관절염 치료가 어려운 것은 딱히 병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면역 요소들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분석적 환원론에 근거한 현대 의학은 이렇게 관계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질병에 대해서는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21세기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 전일적(holistic)이고 통합적 과학에 대한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에는 직접적으로 비환원론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우리엑 잘 알려진 것으로서는 통계물리학으로부터 등장하여 많은 요소간의 관계를 다루는 복잡계 과학(Science of Complexity) 등이 있다.
이렇게 현대 과학이 직면하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 근대 과학이 선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방법론적 한계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당연히 이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은 과학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과학주의자들도 현대과학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기에 앞으로의 시대는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종교의 만남이 필연적이다. 그것은 인문학이나 종교 분야에서는 분석적 환원론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과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관계 덩어리 그 자체를 직관과 믿음으로 접근하여 사물의 관계성을 바로 보는 지혜로서 진리(眞理)와 하나 되는 경험이다. 따라서 관계를 끊기보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결국 이를 통해 추구하게 되는 것은 욕망의 비움을 통한 행복이다. 따라서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가장 잘 맞는 것이 현대 과학으로 표현되는 문명사회라면, 이러한 삶이나 인식방법과는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불교이며, 또 불교는 유식 불교에서 보듯이 매우 정밀한 논리적 접근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 최근 첨단 과학과의 통합적 시도와 많은 연결점들이 가능하다. 따라서 단순히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과학자일수록 융합학문을 시도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교적 시각과의 접목하게 된다.
과학과 불교의 만남에 있어서 현재는 ‘불교적 관점’과 ‘과학적 방법’의 만남의 단계이다. 앞으로 보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융합적 시도를 통해 이끌어낸 ‘불교적 방법론’과 과학의 접목이다. 비록 21세기에 들어서서 과학계에서는 불교적인 관계 중심의 전일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아직은 지금까지 근대 서양 과학이 의존해 왔던 분석적 환원론을 보완하고 과학의 한계를 극복해 줄 구체적인 불교적 방법론이 아직은 도출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현 시점에서 근대과학의 합리적 이성과 환원론적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론에 근거한 새로운 불교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기에는 이르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꾸준하게 과학과 동양적 관점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상태이다. 분명히 과학과 종교는 각각의 정체성이 확실하며, 더 나아가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이러한 융합 학문의 초기 과정 중에 생기는 시행착오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시도를 개신교의 창조과학과 같이 특정 목적에 근거한 유치한 과학과 종교의 만남 내지 과학적 신비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말처럼 과학적 사유의 특징이 개방성(openness)임을 잊지 않는다면, 현재 시도되고 있는 목적론적이 아닌 방법론적인 불교와 과학의 통합적 접근은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 간의 융합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극복하여 각각의 학문 영역을 풍요롭게 해주며 더 나아가 이를 통해서 인간과 모든 생명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동시에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생태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태 중심적 시각에 근거한 구체적 방법론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실생활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고민할 때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를 통해 불교적 가르침과 속세라고 불우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서로 둘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으며, 그런 가치에 근거한 시대로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주의가 난무하며 욕망의 만족을 최선이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서 불교가 지닌 잠재력은 현 시대를 뛰어넘어 저 너머를 향하여 뜻을 세우고 가는 과학자에게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불교라는 그 무진장의 보고를 어떻게 열어 우리 삶에 과학적으로 접목시키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희종/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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