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문

사람들은 교토가 누구나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일본여행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가끔씩 묻곤 한다. 일본 어디를 가고 싶냐고. 그러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온천과 교토라고 대답을 한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번 묻는다. ‘교토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 물음에 대한 답 역시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일본 전통의 다다미 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일본 전통문화체험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필자는 웃으면서 ‘교토의 어디를 가든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교토가 일본의 오래된 절이나 건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와 과거가 오묘히 조화를 이룬 곳이 바로 교토이다. 현대의 빌딩이 모여 있는 번화가로부터 5분 정도 걸으면 녹음과 절, 그리고 교토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공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중 교토 관광시 반드시 가야할 기온[祇園],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마루야마 공원[円山公園] 옆에 치온인[知恩院]이 있다. 우리에게는 지은원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호넨상인(法然上人)
치온인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총본산으로 정토종을 창시한 호넨상인[法然上人, 1133-1212]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호넨상인 이전의 불교는 일반 대중들이 극락왕생을 하고 싶어도 극락왕생을 위한 수행방법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호넨은 단지 “나무아미타불”만을 염불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설법을 했으며 이러한 호넨의 설법은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어 정토종을 성행시켰다. 호넨의 정토사상은 현재의 일본 정토종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온인의 또다른 얼굴은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가문이 조상대대로 위패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던 절이라는 점이다. 호넨상인이 창건당시의 치온인은 조그마한 암자에 불과했으나 현재의 거대한 전각을 가지게 된 것은 도쿠가와 막부의 비호아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치온인 앞에 서면 일단 우리를 반기는 것은 거대한 삼문(三門)이다. 도후쿠지[東福寺]의 삼문과 더불어 나무로 제작된 현존하는 삼문 중 가장 큰 삼문이다. 삼문 옆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연중 끊임없이 대형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있어 과연 교토의 사원순례에 있어 필수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삼문은 1621년 도쿠가와 막부의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의 명으로 건립된 것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삼문의 삼은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해탈을 의미한 삼해탈문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 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해탈할 수 있다고 하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번쯤은 통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삼문 뒤로 경사가 급한 돌계단과 완만한 돌계단이 보인다. 정면의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남자언덕[男坂]’, 남자언덕의 오른쪽에 위치한 완만한 계단은 ‘여자언덕[女坂]’이라고 부른다. 이 돌계단은 약 10여 년 전 크게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2003년 공개된 톰 크루즈 주연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이 돌계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치온인의 삼문은 보이지 않으며 돌계단 뒤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궁궐을 합성해 놓았지만 이 돌계단만큼은 정확하게 영화 안에서 나오고 있어 한동안 회자되었다.

삼문의 위 상층부에는 불당으로 석가여래불과 16나한상, 천장의 벽화 등 중요문화재가 안치되어 있으나 1년에 단 두차례만 공개하고 있다. 그 밖에 치온인은 미에도[御影堂], 호넨상인어당[法然上人御堂], 방장(方丈) 등 각 전각이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삼문만을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 방장

필자는 여기서 치온인 소장의 「아미타25보살래영도(阿彌陀二十五菩薩來迎圖)」(13세기)라는 유명한 불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이 불화를 처음 본 한국인들은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이게 과연 불화인가 하고. 한국의 고려불화 속에서 보이는 아미타래영도나 아미타삼존도, 관음보살도 등의 불화와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미타래영도는 아미타부처님 혼자 서있거나, 아미타부처님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함께 서서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이들을 구도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치온인의 「아미타25보살래영도(阿彌陀二十五菩薩來迎圖)」는 우리의 상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제작된 이 불화는 당시 유행한 불교설화 등을 차용해 보는 이들에게 현실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가마쿠라 시대 불화 특유의 강렬한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 아미타25보살래영도
화면은 극락왕생을 바라는 호넨상인을 맞이하러 아미타부처님과 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치온인으로 향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건너편 오른쪽 상단에는 서방정토가 그려져 있어 가마쿠라시대 불화의 전형인 현실적 배경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면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밑으로 떨어지는 경사진 구름 위에 아미타불과 협시보살들이 타고 있다.

떨어져 내려오는 구름의 정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이 내영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아미타부처님의 앞뒤로 스물다섯이나 되는 보살들이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왕생자를 서방정토에 안내하려 내려가고 있다. 흰색 구름의 꼬리는 마치 늘어난 테이프처럼 길게 늘어져 희미하게 처리되어 이들이 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빨리 내려가고 있는지 은유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치온인의 이 불화가 유명한 이유는 소설처럼, 혹은 영화처럼 극적인 구도와 반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를 동반한 구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극적인 구도를 취한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본 불화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기 위해 주변의 배경을 전부 어둡게 처리했다. 금색의 가사를 두른 아미타부처님과 보살들이 어두움 속에서 당당히 빛을 발화며 주변을 밝히는 반전은 현재보다도 이 불화가 제작된 800년 전에 더 빛이 났을 것이다.

아미타부처님이 넘어오는 산은 치온인의 뒤에 위치한 카쵸산[華頂山]이라고 일부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가마쿠라 불화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카쵸산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여하튼 폭포가 흘러내리고 벚꽃이 만개한 산을 넘는 아미타부처님과, 치온인의 법당 안에서 극락왕생을 바라며 염불을 하고 있는 호넨상인의 모습은, 일반 대중들도 ‘염불을 하면 나도 극락왕생 할 수 있구나.’라고 자신을 대입시키게 한다.

더불어 본인이 래영도의 주인공이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감동까지도 선사한다. 이 불화 때문인지 몰라도 치온인은 가을보다 벚꽃이 만개한 봄이 더욱 아름다운 절이다. 특히 벚꽃이 만개한 시즌에는 야간개장을 해 봄밤의 몽환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마도 벚꽃이 만개한 봄에 극락왕생하고 싶다는 교토사람들의 정서가 그대로 표출된 것이리라.

치온인 가는 방법
JR 교토역 206번 버스 知恩院前 하차, 도보 5분
지하철 도자이센(東西線) 히가시야마 역(東山駅) 하차, 도보 8분

-지미령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