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19일 서울 안국동 중앙선원 회의실에서 제16차 월례발표회를 개최했다.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스님)은 3월 19일(월) 서울 안국동 중앙선원에서 제16차 월례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월례발표회는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이자 선리연구원 고문을 맡고 있는 인환스님이 좌장을, 동방대학원대학교 차차석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됐다.

선리연구원장 법진스님(선학원 이사장)은 격려사에서 “명실상부 한국불교학의 튼튼한 요람으로 자리 잡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이제 논문집 <선문화연구>를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평가’의 등재후보지에서 등재지로 올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연구 ‧ 발표 활동을 통해 좋은 논문을 쓰는 연구자 여러분을 지원해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발표회에서는 총 2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 책임연구원 나정순 박사가 <조선전기 무심(無心)소재 시조의 불교적 연원과 동향—월산대군의 시조 1수를 중심으로>를, 조계종 교수아사리이자 동국대 강사인 정운스님이 <무상대사와 마조의 사법(嗣法)에 대한 재고—현실적인 시공간 측면에서 접근하다>를 각각 발표했다.



"조선 시가문학 속 '무심(無心)', <금강경>의 직접적 영향 받은 것"

나정순 박사는 제1주제 <조선전기 무심(無心)소재 시조의 불교적 연원과 동향>에서 조선 사대부들의 ‘강호가도(江湖歌道)’ 시조문학이 불교와 무관하다는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나 박사는 특히 조선전기 시조문학 중 ‘무심(無心)’이란 제재에 주목했다. 나 박사에 따르면 “‘무심’ 제재 작품이 우리 시가의 풍류 미학을 보여주는 핵심적 소재이면서도 동시에 이것이 동아시아 문화 미학의 근원적 의미를 제시해줄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 나정순 박사
나정순 박사는 불교적 전통과 관련된 ‘무심’ 제재 작품의 대표작으로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의 시조를 꼽았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낙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후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동시에 우리 시조문학사상 가장 서정적이고 우수한 작품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이, 기실은 <금강경오가해>의 야보선사의 시에서 직접적으로 불교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게 나 박사의 핵심 주장이었다.

나 박사는 “월산대군의 시조가 불교적 전통의 맥락에서 중요한 이유는 월산대군이 왕족으로서 불경언해사업과 밀접한 지형에 놓여 있었던 점, 그리고 <금강경> 언해본의 핵심인 ‘무심’이라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사상적 의미와 관련하여 국문시가를 재창조해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하며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는 당대의 현실적 조건 속에서 '불교사상의 추구'라는 전통성의 지향을 꾀했던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1주제의 논평을 맡은 동국대 김기종 HK연구교수는 나 박사의 발표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나 박사의 논문이 조선조의 시가문학 속에 놓인 불교적 전통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했고, ‘무심 제재 시조’의 구체적인 작품 수와 작가, 창작 시기 등의 정보가 거의 제시되지 못했단 점을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발표자에게 “왕위를 동생(성종)에게 뺏겼던 월산대군의 ‘무심(無心)’을 과연 불교적 차원—‘망심을 여읜 진심’, ‘깨달음’, ‘반야’ 등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두 발로 직접 무상-마조 행적지 순례하며, 두 대선사의 사법(嗣法) 가능성 탐구"

한편 조계종 교수아사리 정운스님은 제2주제 <무상대사와 마조의 사법(嗣法)에 대한 재고>에서 한국불교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인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 선사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법맥 문제에 대하여 나름의 분석을 시도했다. 정운스님은 2006년, 2010년 두 차례 사천성의 무상과 마조의 행적지를 순례한 결과를 바탕으로, 무상과 마조의 사법(嗣法)에 대해 시간적 ‧ 공간적 ‧ 지리적 ‧ 중국 문화적 접근을 시도했다.

▲ 정운스님
정운스님은 무상과 마조의 불교사적 위치를 살피는 데서 논문을 시작했다. 신라에서 출가해 당나라로 넘어가 훗날 중국불교에서 모시는 오백나한에까지 포함된 무상대사, 중국 선종사에서 조사선의 개조(開祖)로 칭해지며 후대 묵조선과 간화선이라는 체계의 기틀을 다진 마조대사. 정운스님은 사천성의 장송산 마조동(馬祖洞), 장평산 혜의정사(惠義精舍) 등을 찾는 한편 직접 무상과 마조 선사의 활동 반경을 걸어본 경험을 논문 속에 녹여냈다. 또한 중국인들 특유의 인연관계를 중시하거나, 외국인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중화주의 사고방식을 지적하며 역동적인 논문 발표를 펼쳐갔다.

정운스님은 무상선사와 마조선사의 사법(嗣法)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 회의적 시각을 제시한 후 “당대 중국 선종의 대들보인 마조가 무상의 제자라고 언급되는 점이나, 정중무사의 정진력이 오만방자한 중화주의 중국인들에게 감화를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이 논문이 확고한 논지가 없이 전개된 점에 있어선 지탄 받아야 하지만, 중국 땅의 지리적 ‧ 공간적인 측면에서 본 경험으로는 책상머리에서 살펴본 것과는 달랐으며, 현실감이 있었다”고 술회를 밝혔다.

동국대 김호귀 HK연구교수는 제2주제의 논평에서 “무상과 마조에 대한 기존의 견해로부터 현지를 답사한 결과를 재고(再考)하는 성격을 지닌 점에서 본 노고는 신선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특히 무상과 마조의 사법 불일치의 가능성에 대하여 문화사적인 측면, 생몰 연대와 관련한 점을 들고, 지명과 관련된 연관성 혹은 지리적인 근접성 을 들어서 설명한 점, 당대의 무상의 명성 등과 관련해 추론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날 발표회의 좌장을 맡은 인환스님도 총평을 겸한 말씀에서 정운스님의 발표에 대해 “한국불교사는 무상스님과 같은 고덕하고 뛰어난 분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껏 그 분에 대해 우리 학계는 중국과 일본 학자들보다도 더 관심을 갖지 못했다”면서 “정운스님이 책상머리가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뛰어서 만들어낸 생생한 논문을 읽을 수 있어 기뻤다. 이제 스님이 무상스님에게 손을 댔으니, 앞으로도 무상스님에 대한 부분을 심화 ‧ 발전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 박성열 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