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는 부끄럽다. 편견과 독선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공업중생이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겪은 IMF 보다 더욱 힘든 경제 상황, 군사 독재정권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사회현상들, 종교편향의 잘못을 지적했더니 교회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목사들의 발언이 더욱 거세지고, 무엇보다 철학과 목표를 잃은 교육현장의 모습은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하는 한 가장에게도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현 세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하려는 교육현장의 잘못된 모습을 봐야 한다는 일이다. 경제력에 따라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가 다르다. 특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액의 학원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한쪽에는 방학이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음날 대한민국의 전 은행장들이 모여 ‘감봉’을 결정하는 모습은 마치 연대장의 한마디에 전 병사가 움직여야 하는 군대문화를 보는 듯하다.
이런 독선의 또 다른 형태가 바로 종교편향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종교편향이 사회적 문제로 붉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마치 “이제 우리 세상이 왔으니, 사회, 정치, 교육 곳곳을 개신교 뜻대로 바꿔놓자”는 식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학교도 그 예외가 아니다.
입시교육이 강화되면서 교회와 사찰 청소년법회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아이들이 주말에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에 맞춰 몇몇 교단에서는 ‘초등학생 선교대책’을 제시했다. 선생을 대상으로 복음화를 실시해 학보모를 선교하자는 내용이 골간이다. 촌지를 내미는 학부모에게 “제가 다니는 교회에 아이 이름으로 선교기금으로 전달하겠다”고 말을 전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학부모에게 선생이 직접 선교활동을 펴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발생한 사건이 공립학교 교장이 포클레인으로 운동장을 파서 학교에 있던 탑을 묻어버린 일이다. 또 최근에는 한 공립중학교 운동부 유니폼에 십자가를 디자인해 놓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개별적 성향으로 치부해 버릴 사안은 결코 아니다. 몇몇 개신교 교단에서 수년전부터 내놓은 ‘학교 선교전략’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종교 갈등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 10월9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와 학생간 종교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학배정원서에 종교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뜻 보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학교배정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종교적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들린다. 하지만 보다 꼼꼼히 따져보면 공공교육의 필요성과 철학을 무시한 채 개신교계가 설립한 학교에서 행하는 선교의 정당성만 부여할 뿐이다.
현재 국내 중고등학교는 공립보다 사립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사립의 경우 25%정도가 종교사학으로, 90% 이상이 개신교 재단이다. ‘예배를 강요당하기 싫은’ 청소년들은 인근 학교를 피해 멀리 있는 학교로 가야한다. 교통이 비교적 잘된 서울의 경우 그나마 낫다. 지방의 중고등학교의 경우 종교에 따른 배정원칙을 고수한다면 결국 학생들이 장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불편이 따르게 된다. 역으로 이를 피해 가까운 개신교 재단 사학을 선택할 경우 “종교적 배려를 했음에도 자율의사로 개신교 학교를 선택했다”는 논리로 선교행위를 더욱 강요당할 소지도 다분하다.
결국 종교자유 침해논란을 피하기 위해 교과부에서 근본적인 치유책을 내놓기보다 행정편의식의,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초중고는 정부지원을 받고 있다. 이는 공교육의 사회적 책임과 중요성을 인정한 까닭이
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이상 그에 상응하는 공공성을 교육기관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 종교 활동은 철저히 학생의 자율의사에 따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정책을 생산하지 않고, ‘네가 가기 싫으면 다른 학교 보내주겠다’는 식의 사고는 학생들의 불편과 교육받을 권리를 무시한 처사다. 결국 학생들에게 잘못된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라는 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종교편향은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한다. 최근에는 한 학교 교사가 일부 아이들에게 강제적으로 개신교 동아리 가입을 시킨 사례도 있었다. 설사 그 본인이 개신교인이라고 해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종교재단이기 때문에 전교생이 일주일에 한번 강당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헌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그런 모습에 얼마나 공감을 할까?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종립학교는 그럼 어떤가. 교법사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수업과 신행을 분리해 교육하고 있다. 즉 교과시간에는 지식전달 차원에서 불교의 교리와 전통문화를 교육하지만 예불과 같은 신행행위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파라미타청소년협회 분회를 설치해 동아리 차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가입은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수업 이외의 시간에 학내 법당에서 다양한 수행과 명상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종립학교의 경우 불교반이 여타 동아리보다 활성화되다보니 자발적으로 참여를 원하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종교가 사회통합과 인성교육을 이끌어왔지만, 한편으로 종교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과 사람들이 죽임을 맞아야 했던가. 또 현대 중동에서 지속되는 분쟁의 근저에는 개신교와 이슬람의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종교가 오히려 대립의 불씨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석가나 예수, 마호멧의 가르침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명예와 종교권력을 위해 위선과 독선을 거침없이 행하는 몇몇 종교지도자가 문제였다.
우리 아이들에게까지도 그 독선을 전해줘서는 안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상생의 원리, 원융의 사상을 전해줘야 한다. 최근 ‘종교편향’이 빈번 하는 교육현장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안직수/불교신문 편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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