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아산 보문사에서 뜻깊은 행사가 마련됐다. 불교계 아동문학의 시원을 밝히신 석주 큰스님을 잊지 못한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원들이 스님의 상좌 송운(보문사 주지)·송담(칠보사 주지) 스님의 도움을 받아 추모비를 세운 것. 40여명 안팎의 회원 작가들이 추모비 건립 기금을 발의해 700만원 남짓 모아, 제작하기까지 산파 역할을 도맡았던 선행(善行) 신현득 선생을 만났다.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신현득(善行) 선생. 누가 그를 칠순을 넘긴 노인으로 볼까. 해맑은 미소는 영락없는 10대 소년이고, 창작에 대한 열정은 스무살 청년을 무색케 한다.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산’으로 등단한 그는 지난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동시와 동화 창작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펴낸 책만도 동시집 16권, 동화집 20권. 어린이들을 위해 쉼 없이 살아왔던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실 불교계에서야 신현득 선생 하면 80년대 이후 불교동화를 열심히 쓰고 있는 중견동화작가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동문학계에서 그의 위상은 원로 윤석중 옹의 뒤를 잇는 거목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실제 현직 아동문학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선생은 가장 존경받는 시인으로, 또 아동문학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이로 여러 차례 뽑힐 정도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여기에 아동문학가로서는 드물게 선생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단행본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가 출간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의 아동문학이 이렇게 주목받는 까닭은 한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어린이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면서도 사상과 철학으로 교육과 문학을 하나로 융합시키려는 진실함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교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은 그의 아동문학을 속 깊게 만드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선생의 글에서는 토속적인 향기와 민족문화에 대한 사랑이 촉촉이 묻어 난다. 그리고 이는 고단했던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선생은 1933년 경북 의성군 신평면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말기 가뜩이나 어렵던 시절 일제의 수탈까지 겹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졌다. 선생이 4살 되던 해 가족들은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살 길이 막막해 4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선생이 4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9남매 가운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난 4남매. 어린 그는 이 무렵부터 마을 앞 쪽박샘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디딜방아에 겉보리를 찧어 밥을 짓고, 빨래와 바느질도 하며 서투른 엄마 노릇을 해야 했다.
선생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옹이처럼 단단해져 간 대신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 손톱 거스러미처럼 일어난 것도 그쯤이다. 집안을 돌보기보다 염주를 목에 걸고 다니며 독경과 기도만 하는 아버지가 무능력해 보였고, 어려운 와중에도 남을 돕는 그가 위선처럼 보였다. 마을 아이들이 ‘사바하 사바하’하고 흉내를 내며 자신을 놀렸던 것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조금씩 깊어만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사무소 급사로 취직한 선생은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이 책 저 책 다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또 시를 쓰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던 그는 병산중학교를 거쳐 안동사범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다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교회에 다니며 성경을 배웠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볼수록 편협하고 얕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네 생각과 역사보다는 서구적인 틀에 맞춰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싫었고 제사를 거부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고향마을인 중률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기독교 성경 대신 사서삼경 등 유교경전과 불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선생은 그토록 싫어했던 금강경이나 천수경 등을 읽어나가며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대단한 신앙과 철학을 가졌던 자유인이며 선객으로 세상이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일생이 멋있고 좋았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동기인 김종상 선생과 함께 학교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기울여 동시를 가르치는 한편 상주포교당 주지 스님을 설득해 어린이회를 조직하고 일요법회를 지속적으로 열었다. 당시 사찰은 엄숙하고 조용한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의 열정은 아이들이 전국규모의 글짓기 대회에서 연거푸 입상토록 했고 이 때문인지 문인들 사이에서는 상주를 ‘동시의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60년 신춘문예에 등단한 본격적인 동시인으로서의 삶을 걸었다. 그는 잇달아 시집을 펴냈고 당시 무관심했던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75년 여름, 그는 20여 년간 잡았던 교편을 놓고 소년한국일보 학습부 기자로 직업을 바꿨다. 동시는 모든 예술의 근본으로 위대한 철학이며, 낭만이며, 서정이며, 생활이며, 평화라는 그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펼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선생은 신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들에게 해맑은 동심보다는 약삭빠름을 요구하는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 눈코틀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대원불교대학을 졸업한 그는 ‘세계 최초의 동화집은 좬본생경좭이며 부처님은 세계 최초의 아동문학가’라는 확신을 했다. 그는 한글대장경 한 질을 구입해 모두 독파할 것을 결심하고 한 권 한 권 읽어나갔다. 동화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일일이 체크했고 거기에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상중하로 각각 구분했다. 이렇게 대장경을 독파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힘들게 공부한 만큼 성과도 컸습니다. 경전을 잘 아는 어느 분이 대장경 속에는 3000∼4000개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해보니 1만 편이 넘는 동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팔만대장경은 광활한 동화의 바다였죠.”
신 선생은 불교아동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당시 원로였던 김동리 선생과 함께 한국불교아동문학회를 창립해 소장 아동작가와 어린이들의 글쓰기를 독려했다. 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첫 불교동화집을 펴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지난 89년말 학문과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한국일보사 취재부장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어린이 팔만대장경』 『날아다니는 목련존자』 등 어린이 불교동화집을 잇달아 펴냈다. 요즘은 어린이들이 365일 불교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불교동화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또 틈틈이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윤색한 작품들도 이미 수백 편에 이른다.
선생은 단국대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강의보다는 늘 시를 짓고 동화를 쓰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천직이라 믿는다. 그는 차디찬 쇳조각처럼 썩기를 거부하고 잊혀지기를 두려워하는 세태 속에서 차라리 한 웅큼의 거름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출판되건 안되건 아이들과 후배 작가들을 위해 팔만대장경의 모든 이야기를 동화로 개작하겠다”며 맑고 곱게 웃는 초로의 미소년.
스스로 거름이 되어 아이들을 밝고 맑게 꽃 피우는 자양분이고자 한 신현득 선생은 “석주 큰스님 추모비 건립에 도움을 주신 보문사 주지 송운 스님과 제자를 써주신 칠보사 주지 송담 스님, 제작을 맡아주신 다석의 김기홍 사장님, 동자 그림을 주신 김승연 화백, 성금을 내어주신 회원들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오종욱/본지 편집실장

석주스님 4주기…‘어린이 사랑 추모비’ 제막
불교아동문학상 임신행씨 수상

조계종 원로의원과 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석주당 정일대종사의 4주기 추모재가 지난 10월31일 충남 아산 보문사(주지 송운스님)에서 봉행됐다. 이날 추모재에는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과 수덕사 주지 옹산스님,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 한국불교아동문학회 신현득 회장 등 사부대중 300여 명이 참석했다.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은 추모사에서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큰스님의 자상한 모습과 천진한 미소는 지금도 기억 속에 더욱 뚜렷하다”며 “큰스님의 진면목을 잊지 않고 가르침을 바르게 이어받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월운스님은 추모법어에서 “큰스님께서는 한국불교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포교와 역경, 교육불사 등에 매진하셨다”며 “큰스님의 법향을 흠모하며 모인 불자들은 뜻을 받들어 성숙한 불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설했다.

한편 이날 추모재 후에는 한국불교아동문학회에서 보문사 경내에 ‘어린이 사랑 석주 큰스님 추모비’ 제막과 제25회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

한국불교아동문학상에는 ‘풀산딸나무 그 꽃’의 탄보 임신행 씨가 수상을 했으며 전국어린이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나는 스님이 될 거예요’의 은석초등학교 최민재 군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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