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명호를 입으로 외우는 수행을 염불이라 합니다. 대표적인 수행 가운데 하나다 보니, 흔히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외워 가피를 받는 것으로만 단정 짓기 쉽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 염불(念佛, buddhānussati) 수행이 지닌 실제 의미는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수행이면서, 동시에 부처님의 모습[佛相]과 그 덕[功德]을 찬탄하고 수행자는 이를 마음에 새겨 정진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염불은 초기불교에서 시작하여 대승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전승되었습니다. 초기불교에서의 염불은 부처님의 공덕을 떠올려 3독[貪ㆍ瞋ㆍ癡]을 버리고 다시 일으키지 않으면 천상에 태어나며 열반에 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배(禮拜), 찬탄(讚歎), 억념(憶念) 등의 덕목을 실천하였는데, 이는 모두 부처님에 대한 귀경(歸敬)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아미타부처님, 아촉부처님, 약사부처님, 미륵부처님, 관음보살님 등에 대한 신앙과 병행되게 되었습니다.

염불의 종류와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여러 수행인이 관심을 갖는 일반적인 실천 수행법이다 보니 칭명(稱名)ㆍ관상(觀想)ㆍ섭심(攝心)ㆍ수식(數息)ㆍ간화(看話)ㆍ참구(參究) 염불 등 그 가지 수 역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구분은 첫째,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ㆍ상호를 염하는 관상염불(觀想, 觀像) 둘째,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외는 칭명염불(稱名, 口稱)로 나누어 그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지면을 빌어 세분화된 수행법을 참고삼아 잠시 말씀드리면, 전력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칭하는 칭명(稱名)의 염불, 불상이나 탱화를 모시고 부처님을 염하는 관상(觀像)의 염불, 부처님의 상호를 염하는 관상(觀想)의 염불, 자신과 모든 일체법의 진실상(眞實相)을 관하는 실상(實相)의 염불 등으로 후대에 세분화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정토의 경계를 생각하며 왕생을 희구하는 칭명왕생(稱名往生)의 염불, 그 경계를 이해하면서 부처님 상호와 광명을 염해 죄를 소멸하는 관상멸죄(觀相滅罪)의 염불, 마음의 경계를 알아 따로 경계가 따로 없음을 체득하는 제경유심(諸境唯心)의 염불, 마음의 경계 그 자체마저도 장애 없어 무자상(無自相)을 체득의 심경구이(心境俱離)의 염불, 한량없는 경계와 지을 바 없음을 체득하고 일체의 분별을 버리는 성기원통(性起圓通)의 염불 등으로 구체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다양하게 세분화된 염불수행의 근간이 있습니다. 바로 염불삼매(念佛三昧)인데, 오로지 한 마음[一念]으로 절실하게 불보살님의 명호에 집중하고 그 상호와 광명을 관조하게 됩니다.

한 마음이란 망상에서 벗어난 마음입니다. 그래서 끊이지 않게 집중하여, 삼매 속에서 능히 불보살님을 친견하고 그 국토에 왕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경론에서 근거를 찾아보면 󰡔반주삼매경󰡕과 󰡔대아미타경󰡕 그리고 60권 󰡔화엄경󰡕 등에서 이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염불은 수행인 개인의 왕생을 추구하는 한편, 자기 정체성[無我法空]을 확립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구제[化他行]를 실현하는 실천행입니다. 이는 타인의 왕생까지 희구하는 이타행(利他行)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누군가를 구제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아집(我執)마저도 버리는 중도 실천행의 다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차후 여러 염불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시기로 하고, 먼저 󰡔증일아함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염불을 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초기 불교 경전을 ‘아함’(阿含)이라 하는데, 이 아함에는 남전의 니까야(nikāya)와 북전의 아함이 있습니다. 아함의 분류는 넷으로 나눕니다. 그 가운데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Aṅguttaranikāya)은 부처님의 교설을 법수(法數)에 따라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4세기 후반, 중국의 동진(東晋) 시대에 한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염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품은 「십념품」과 「광연품」 그리고 「호심품」과 「고당품」 등이 있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관조[念]하는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10가지를 제시하고, 그 으뜸으로 ‘부처님 생각하기’ 즉 염불(念佛)을 들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념품」과 「광연품」에서는 ‘부처님 생각하기’를 ‘한 법’[一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법’[一法]을 닦아 행하고 ‘한 법’을 널리 펴면,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念佛]이다. 그것을 잘 닦아 행하고 널리 연설해 펴면,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한 법을 닦아 행하고 한 법을 널리 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 󰡔증일아함경󰡕 「십념품」 중에서>

요약하면 이 ‘한 법’을 닦고 널리 펴기를 권하여 이를 통해 신통을 이루고 산란한 마음을 버려 스스로 열반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십념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를 두루 검토해 보면, 이 ‘한 법’의 염(念)하는 대상은 부처님 외에 10가지가 됩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① 부처님 [念佛] ② 법 [念法] ③ 승가 [念眾] ④ 계율 [念戒] ⑤ 보시 [念施] ⑥ 하늘 [念天] ⑦ 휴식 [念休息] ⑧ 호흡 [念安般] ⑨ 몸의 무상함 [念身非常] ⑩ 죽음 [念死] 등이 되겠습니다. 한 눈에 보시기 쉽게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표1>

 

< 표 1 >

대상

십념품 1

부처님 [念佛]

십념품 2

법 [念法]

십념품 3

승가 [念眾]

십념품 4

계율 [念戒]

십념품 5

보시 [念施]

십념품 6

하늘 [念天]

십념품 7

휴식 [念休息]

십념품 8

호흡 [念安般]

십념품 9

몸의 무상함 [念身非常]

십념품 10

죽음 [念死]

 


염(念)하는 대상에 대해 간결하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십념품」이라면, 그 10가지 대상이 보다 자세히 제시되고 있는 품이 있습니다. 품의 이름은 「광연품」인데 제자와의 문답을 통해 ‘한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읽으시는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표 2>와 같이 ‘한 법’에 대하여 두 개의 품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표 2>

십념품

광연품

❶ ‘한 법’[一法]을 닦아 행하고 ‘한 법’을 널리 펴면,

❶ ‘한 법’[一法]을 닦아 행하고 ‘한 법’을 널리 펴야 하느니라.

 

 

 

❷ ‘한 법’을 닦아 행하면 좋은 이름이 있고 큰 과보를 성취하여 온갖 선이 두루 모이고 단 이슬 맛을 얻어 함이 없는 곳[無爲處]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❸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을 얻을 것이니,

❸ 그리고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을 얻을 것이니,

❹ 어떤 것을 ‘한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念佛]이니라.

❹ 어떤 것을 ‘한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念佛]이니라.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광연품」에서는 어떻게 법을 행해야 하는 지, 함이 없는 곳[無爲處]에 이르게 되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념품」과 「광연품」 두 품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부처님을 생각하는 ‘한 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됩니다.

‘한 법’을 닦아 행하고 ‘한 법’을 널리 펴면,
좋은 이름이 있고 큰 과보를 성취하여
온갖 선이 두루 모이고 단 이슬 맛을 얻어
함이 없는 곳[無爲處]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그 ‘한 법’이란 바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이어 경에서는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사문의 결과를 얻어 스스로 열반을 얻게 되는 바에 대해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① 몸과 뜻을 바르게 하고 가부좌 틀어 ② 생각[念]을 매어 앞에 두고 ③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면밀하게 부처님만을 생각해야 하며 ④ 여래의 형상을 관함에 줄곧 눈 떼지 아니하고 ⑤ 눈을 떼지 않되 곧 여래의 공덕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어떠한 점을 집중하여 생각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경전에서 어떻게 가르침을 펴고 있는 지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여래의 얼굴[如來顏貌]
단정하기가 짝이 없으시고, 아무리 뵈어도 싫증이 나지 아니하며
계율의 덕을 성취하심은 마치 금강과 같아 허물어지지 않고
티 없이 청정함은 또한 마치 유리와도 같으니라.

여래의 삼매[如來三昧]
일찍이 줄어진 일이 없으시니, 아주 쉬고安息 길이 고요하여 다른 생각이 없으시어
교만과 게으름과 사나운 모든 뜻은 담박하게 되었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망설임 그리고 잘난 척하는 번뇌는 모두 다 없어졌노라.

여래의 지혜 몸[如來慧身]
그 지혜는 끝도 밑도 걸리는 장애됨 없으시니
여래의 몸은 해탈을 성취하여 모든 윤회가 다하여
다시 태어나 ‘나는 응당 다시 생사에 떨어질 것’이라 말할 바 없도다.

여래의 몸[如來身]
지견知見의 성을 건너 남의 근기까지 아시니
제도할 것과 제도하지 못할 것을 따라 행하며,
여기 죽어 저기 나고, 두루 돌아다니며 가고 오며 나고 죽는 지음에서
해탈하는 이와 해탈하지 못하는 이를 모두 아시니라.
< - 󰡔증일아함경󰡕 「광염품」 중에서 - >

<다음 호에서 계속>

- 정성우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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