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벌할 수 있는가. 범부인 내가 무슨 권리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나.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의 길인가.” 평양 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 판사 이찬형(李燦亨?효봉의 속명)은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고뇌했다.
한국인 최초의 판사로 법의를 입은 지 10년. 법의는 출세와 영광의 상징이 아니었다. 양심을 옥죄는 번뇌의 쇠그물이었다.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 내가 갈 길은 따로 있을 것이다.” 드디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그는 ‘위대한 버림’을 시작했고, 암흑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海底燕巢鹿抱卵 해저연소녹포란
火中蛛室魚煎茶 화중주실어전다
此家消息誰能識 차가소식수능식
白雲西飛月東走 백운서비월동주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속 거미집에선 물고기가 차를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법기암 토굴에서 다시 태어난 효봉 스님의 사자후다. 감동과 환희의 진폭이 여느 선사보다 큰 오도송이다. 세속의 잣대로는 해체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관념과 비논리의 세계다. 논리의 세계는 분별에 의해 이뤄진다. 거기서는 명료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즉 불교적 절대진리의 세계에서는 온갖 논리를 뛰어넘는다. 그래서 겨울에 덥고 여름에 춥다는 비논리적 표현의 수용이 가능한 것이다. 투명한 지혜만이 반짝인다.

효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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