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羅末麗初, 중국 유학파 스님들로부터 비롯된 한국의 선禪

우리나라 해동의 선법禪法이 도의 국사, 혜소 선사, 혜철 선사, 홍척 선사 등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들어올 무렵 불교국가 신라의 사상적 변화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우선 당시 왕실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교학 중심 불교가 부정됨으로써 선과 교의 갈등과 대립이 초래되었다. 그리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신라 선종도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산사를 중심으로 일체의 형식과 권위를 탈피하고 실천수도의 선문을 개창하는 등 신라 불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렇듯 신라 말엽에서 고려 초에 선禪이라는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은 대부분의 선사들은 당시의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고 중국 유학을 시도한 스님들이었다. 그 선사들은 길고도 고단했던 중국에서의 수행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당시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고양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왕권의 통치이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선학禪學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현각 스님이 중국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는 불교 이야기에서 벗어나 우리 선사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 『한국을 빛낸 선사들』(도서출판 한걸음․더 간)을 출간하였다. 정년퇴임을 앞둔 스님이 그동안 쌓아온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원력을 발해 연구한 성과물을 회향 차원에서 정리해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중국 불교계를 일깨운 해동의 맑은 바람

저자 현각 스님은, 당시 스님들이 구법求法하기 위하여 중국이나 인도에 갔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면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스님 자신의 공부 경지를 점검하고자 하는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혹독한 수행을 완성한 후에 실제로 중국 불교계의 퇴락한 정신을 일깨운 스님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신라에서 태어나 16세의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간 혜초 스님은 ‘떠날 때는 1백 명이었으나 돌아온 자는 한 명도 없다’는 그 어려운 천축 여행길에 올라 낯선 이역땅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왕오천축국전󰡕에 생생하게 기록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의 첫 세계인으로서 한민족의 혼을 만방에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스님들이 중국에 들어가 구법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큰스님들로부터 받은 찬사는 이 짧은 지면에 다 소개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로 유명한 범일 국사는 당나라 약산 스님으로부터 “대단히 기이하구나. 대단히 기이하구나. 밖에서 들어온 맑은 바람이 사람을 얼리는구나.”라는 찬탄을 들었다.

성주산문을 개산한 무염 선사는 백낙천과 도우道友였던 여만 스님으로부터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 봤으나 이와 같은 신라 사람은 드물었다. 훗날 중국에서 선이 실종될 때에는 장차 동이東夷에게 묻게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해동의 4무외대사四無畏大師 가운데 한 분인 이엄 선사는 중국에서 6년간 시봉한 도응 선사로부터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니, 사람이 능히 도를 펼 수 있는 것이다. 동산東山의 선지가 타인에게 있지 않느니라. 법의 중흥을 오직 내가 너에게 주니, 나의 도는 동이東夷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심인心印을 받았다.

원효 성사에서 나옹 선사까지 서른여섯 분의 스님들을 소개하면서 󰡔한국을 빛낸 선사들󰡕이라는 제목을 쓴 데 대해, 이 책에 소개된 스님들이 모두 선사禪師는 아니지 않느냐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선禪’을 도입한 분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인 도의 국사이기 때문에 그 이전 스님들인 원효, 의상 스님이나 이차돈, 김대성, 부설 거사 같은 분들을 선사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분들 대부분이 수행에 매진했을 뿐 아니라 이 책에 소개하고 있는 대다수 스님들이 선사들이기에 ‘한국을 빛낸 선사들’이라는 제목을 써도 큰 무리는 없다고 보았다.


저자 및 역자 소개

-현각 스님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하였으며,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禪의 實踐哲學硏究」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초대 한국선학회 회장 및 3․4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로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 『선의 길』, 『인도의 선․중국의 선』, 『불교와 기독교의 비교연구』, 『법주사』, 『종교학․종교심리학』, 『생각은 있으나 생각하는 자는 없다』, 『선종사부록』, 『선어록 산책』, 『고승구법열전』, 『행복에 이르는 뗏목』, 『날마다 좋은 날』, 『아난의 입 가섭의 마음』, 『선학의 이해』, 『선문선답』 상․하편 등이 있으며, 「선학자료논고(Ⅰ․Ⅱ)」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목차

원효 성사의 신통력
원광 법사의 세속5계
의상 스님과 선묘 이야기
부설 거사
혜통 스님의 도력
자장 율사와 금와보살
이차돈의 순교
김대성의 원력
낙산사와 조신의 꿈
정중무상 나한님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
도의 국사의 선법
범일 국사의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
순지 선사의 삼편성불론三遍成佛論
무염 선사의 무설토론
범패의 선구자 혜소 선사
동리산문 혜철 선사
봉림산문 현욱 선사
사자산문 도윤 선사
봉암산문 도헌 선사
실상산문 홍척 선사
보조체징 선사
대통 선사
행적 선사
영조 선사
혜청 선사
안선사
형미 선사
경보 선사
여엄 선사
찬유 선사
이엄 선사
긍양 선사
대각 국사 의천
보우 선사
나옹선사

현각 스님 / 동대출판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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