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해 저소득층은 더욱 어려운 세모(歲暮)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도심의 포교도량인 보성선원에서는 저소득층 주민을 대상으로 ‘자비의 김장 나누기’ 행사를 펼쳤습니다. 이웃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자비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교리적으로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특히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는 여러 분원장 스님들께 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설픈 글로써 이 불사의 시말을 기록해 올리니 제방의 큰스님들께서는 다만 뜻만 취하시기 바랍니다.>

‘자비의 김장 나누기’ 행사
저희 보성선원에서는 지난 12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자비의 김장 나누기’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 절이 위치한 달서구 송현1동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230세대를 대상으로, 김장 김치를 9~10Kg씩 나누어드린 행사였습니다.
12월 6일 전달식에는 곽대훈 대구 달서구청장, 김종후 달서구의회 의원, 박효병 송현1동장 등 지역 유지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보성선원 경내에서 저와 신도들은 구청장과 동장에게 김장 김치를 전달했고, 그들은 즉석에서 미리 대기중이던 통장들에게 통별로 나누었으며, 통장은 각자가 준비한 차량에 김치통을 싣고 받으실 분들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배추 구하기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배추를 구하는 문제였습니다. 신도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배추는 해남에서 난 것이 가장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따라 해남 미황사 신도님이 농사지은 배추를 산지에서 직송해 왔습니다.
배추는 모두 3,100포기를 실어 왔는데 그 가운데 2,100포기는 지역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팔아 비용 가운데 일부를 충당했습니다. 배추의 산지 가격은 포기당 650원이었고, 운임은 트럭 2대에 85만원으로, 한 포기당 운임은 270원 정도 되었으므로 배추 한 포기 원가가 920원 가량 되었습니다. 이 배추를 포기당 1,500원씩에 팔았는데, 대구지역 시장의 해남 배추 가격인 2,500원보다 훨씬 쌌으므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신도님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한 품목은 생배추 외에도 무, 소금에 절여서 헹군 배추, 그리고 김장 김치였습니다. 예상 외로 소금에 절여 헹군 배추가 많이 팔렸습니다.

배추 절이기와 김장 담그기
김장을 담그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적어보고 현재 사중의 비품 가운데 있는 걸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많은 김장을 담근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물건을 사야만 했습니다.
배추를 절이려면 많은 고무통이 필요했지만, 그 많은 고무통을 살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비닐이었습니다. 한쪽이 막힌 두꺼운 비닐에 절인 배추를 담아 입구를 묶은 뒤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뒤집어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절인 배추를 흐르는 물로 세 번 씻은 뒤 물을 뺐습니다. 그리고는 이튿날 미리 준비한 양념으로 버무려 김장용 비닐봉지에 넣어 들통에 담았습니다.

수입과 지출, 그리고 차액
이번 불사에는 많은 수입과 지출이 있었습니다. 생배추ㆍ무ㆍ소금에 절여서 헹군 배추ㆍ김장 김치 등의 판매 수입은 3,926,000원이었고, 신도님들이 보시하신 금액이 3,550,000원이었으므로 수입금 합계는 7,476,000원이었습니다. 8,624,000원이 이번 불사의 총지출이었으므로 이번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를 위해 사중에서 부담한 액수는 1,148,000원에 불과합니다. 큰일을 치르고도 이 만큼 밖에 들지 않았으니 상당히 잘 된 불사인 셈입니다.

판매 수입
생배추 판매 2,538,000
무 판매 30,000
절임배추 판매 1,038,000
김장김치 판매 320,000
합계 3,926,000

보시금 3,550,000

수입 합계 7,476,000

지출
배추·무 2,315,000
고추 등 양념 2,276,000
들통 등 비품 2,298,000
트럭 운임 850,000
선물값 885,000
지출 합계 8,624,000

차액 -1,148,000

수입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신도님들이 많은 동참금을 냈다는 사실입니다. 찬물에 손 담그고 일을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이웃돕기에 힘을 모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장을 담근 사람들
김장을 담그는 인력도 문제였습니다. 현재 저희 절에는 절 살림을 하는 ‘마야회’, 대외 봉사활동을 하는 ‘자비회’, 저와 함께 상가에 가서 염불해 주는 ‘지장회’, 전법기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포교회’가 있습니다. 각 단체의 회장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더니 모두 찬성하였습니다. 여태껏 김장이라고는 100포기 정도 밖에 해 보지 못한 신도들이었기에 일부 반대가 있었으나 각 단체별 회의에서도 어렵지 않게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초하루 법회 때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에 대해 설명하고, 날짜별로 인력 배분을 하기 위해서는 신도들이 접수를 미리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으나 뜻밖에 단 한 명도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크게 걱정하는 가운데 일이 시작되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모이더니 하루를 넘기고, 또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하여 나흘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4일간 연인원이 150명이었으니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모인 것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배추에 양념을 버무린 마지막 날에는 외부 인사들이 15명가량 합류하였는데, 이 분들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행복해 하는 신도들
배추와 각종 양념, 그리고 비품을 구비하고 연인원 150명이 동원된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는 큰 문제없이 무난히 마쳤습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첫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었고, 마지막 날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 어떤 것도 이웃사랑의 열기를 꺾지 못했습니다.
김장 울력에 동참한 신도님들은 대부분 흐뭇해하는 것 같았고, 어떤 경우에는 감격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헹구고, 양념하기까지 많은 수고로움이 따랐지만 이웃을 위해 자신들이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고마워했고 기뻐했습니다. 어떤 신도님은 “스님 덕분에 저희들이 복을 짓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신도님들은 이번 행사를 매우 뜻 깊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행운권 추첨
저는 우리 신도님들의 고마움에 대해 어떻게 인사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하나씩 안겨드린다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그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행운권 추첨이었습니다.
최신형 1470만 화소 디카를 하나 준비하고 이태리 명품 라디오를 한 대 협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차 두 통, 불교서적 열 권을 추첨해서 드렸고, 모든 분들께 제사 지낼 때 쓰시라고 천연향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기뻐하는 이웃
김치는 김장용 비닐에 3포기씩 넣어 15리터 플라스틱 들통에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들통의 허리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자비의 김장 나누기
대한불교조계종 (재)선학원 보성선원
대구 청소년수련원 아래 대서초등학교 건너편 골목안 621-3333


그리고 동사무소 직원과 통장을 통해 대상자의 자택까지 배달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20여 분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전화하신 분은 한결같이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딨냐고, 절에서 김장을 가져다 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100% 우리 농산물을 사용했다는 문구가 빠졌습니다. 다음번에는 그 내용도 넣어야겠습니다.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에 대한 평가
‘자비의 김장 나누기’ 불사는 자신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김치에 대한 의존도를 생각해 본다면, 김치는 단순한 반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김치 하나만 있으면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김장불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든든한 반찬을 제공해 주는 것이며, 동시에 부처님의 따사로운 자비를 느끼게 해 줍니다.
둘째, 지역 주민들이 믿을 수 있는 좋은 배추를 싸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소위 ‘해남 배추’에 대해 소비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에서 직구매한 배추는 믿을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셋째, 100% 우리 농산물만 씀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구에서는 해남 배추가 포기당 2,500원을 웃돌았지만 산지가격은 턱없이 낮아 농민이 배추밭을 갈아엎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도시 사찰의 농산물 직거래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지역에서 사찰의 이미지가 더 좋아집니다. 저소득층에게 김치를 보시하는 것과 배추를 싼 값에 파는 것 둘 다 사찰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섯째, 신도님들이 서로 결속하게 될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여섯째, 재정적인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잘만 하면 수익사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보성선원에서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수익사업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신도님들은 국산 콩으로 청국장이나 손두부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벌리기 위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대승불교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만 이롭다면 대승의 가르침과는 10만 8천리 동떨어진 소승의 무리배일 것이요, 타인만 이롭게 한다면 중생의 근기로 보아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비의 김장 나누기는 공덕을 짓는다는 측면에서 자리행(自利行)도 충족시키는 것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배추를 싸게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이타행(利他行)도 충족시키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분원장 스님들께서는 이 불사를 적극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북 스님/보성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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