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스님)이 14일 개최한 제5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학술상을 수상한 세명대학교 김종수 박사는 학술회의의 2주제 발표자로 나와 수상작 ‘서계 박세당의 ‘삼소(三笑)’ 철학과 유교(儒佛) 교섭(交涉)-종교간 대화의 모색-’을 발표했다.

김종수 박사
상호 이질적인 세계관을 전제한 교리 체계를 갖춘 종교들 간의 실질적인 대화의 노력은 가능한 것일까? 김종수 박사는 종교 간 대화의 문제를 둘러싼 유의미한 선례를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구축한 사상 체계 속에서 발견하려는 논의를 시도했다. 동진(東晋)의 혜원(慧遠. 334~416))선사가 남긴 ‘호계삼소(虎溪三笑)’ 고사를 즐겨 인용했던 박세당은 유불도(儒‧佛‧道) 삼교를 아우르는 통섭적 학문 세계를 지향했다. 자연 박세당의 사상 체계 속에는 종교 간 대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용한 단서를 예비하고 있었다.

실제 자신이 지향했던 학문 세계를 흐르는 물의 종류에 개의치 않는 물고기의 속성에 비유하였던 박세당은 포괄주의(pluralism)에 기초한 진리 인식론의 토대를 설정해 두었다. 때문에 박세당은 동시대를 전후한 순정(純正) 주자학자(朱子學者)들의 이단관과는 확연히 변별되는, 즉 극히 문호 개방적인 이단관(異端觀)을 견지할 수 있었다. 나아가 박세당은 평화와 도덕이 넘실거리는 이상사회적 전망을 구상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관건이자 미덕으로써 선(善)을 추구하려는 구성원들의 동기를 존중해 주는 똘레랑스[寬容]의 중요성을 피력해 두었다.

그 결과 박세당은 유학적 기반 위에서 노장(老莊)으로 대변되는 도가(道家)는 물론이고, 심히 이질적인 불교 교학과도 교섭(交涉)을 시도하는 등의 진취적인 태도를 발휘하기에 이른다. 박세당은 유학과 도가 간의 접점을 발견하려 노력했고, 불교 교학을 통해서 유학적 사유의 지평을 보완하려는 진지한 학문적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박세당이 수립한 사상 체계가 이채를 풍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또한 이 장면은 박세당이 견지했던 포괄주의적 진리론과 종교적 다원주의가 상호 제휴를 꾀했던 흔적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맹(孔孟) 위주의 원시유학을 강력히 지향했던 박세당의 사상적‧이념적 입각점이 결코 희석된 상태는 아니다. 박세당은 오륜(五倫)으로 상징되는 유학적 인륜의 대법(大法)을 기준으로 삼아서, 노장 철학과 불교 교학을 동시에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박세당의 진리론이 다원주의와 결별하면서, 배타주의와 연대한 장면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다원주의와 배타주의, 포용과 거리 두기를 동시에 예비했던 박세당의 사상 체계를 속에서, 종교 간 대화 양식의 한 전형을 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차연(差延)의 방식을 취했던 박세당의 포괄주의적 진리론을 통해서, 상호 이질적인 세계관을 전제한 종교 간 대화에서 관용의 미덕이 안게 되는 명확한 한계도 실감하게 되었다. 박세당이 보여준 유불(儒‧佛) 간의 교섭 노력은 ‘차이’와 관용이 서로 이웃한 관계, 곧 연기론적 배열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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