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8시, 북한산 자락 정릉에 위치한 보덕선원. 이곳에서는 매주 서너 명의 재가 불자들이 자율적으로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일체를 내려놓고 화두 삼매에 드는 시간은 그야말로 법열(法悅)의 그쁨을 느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다. 새벽까지 50분 정진에 10분 휴식으로 진행되는 자율정진은 대게 참선 경력 10년 이상의 재가불자들이 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반성과 경책, 정진력이 없으면 꾸준히 하기 어려운 정진이다.
물론 낮에는 10여명의 불자들의 선방에서 정진을 하고 있다. 절에서 기거하며 정진하는 재가수행자도 있으며, 집과 절을 오가며 좌선하는 불자들도 있다. 보덕선원의 경우는 철저한 자율정진이 특징인데, 이런 경우는 초보자들 보다는 수행경험이 많은 재가자들이 선호하는 시민선원이라 할 수 있다.
보덕선원이 문을 연지 몇 년 되지 않았듯이, 10여년전부터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시민선원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제 재가불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수행공간이 되고 있다. 해마다 조계종 1백여 선방의 2천여 수좌를 비롯 천태종, 태고종 소속 스님 등 3천여 스님들이 석달간의 집중수행에 들어가는 한편, 3천여 재가자들도 전국 30여 시민선원에서 출퇴근을 병행한 안거 수행을 하고 있다. 매주 또는 매달 정기 철야참선을 하는 재가불자들도 늘어나 스님 못지 않는 용맹정진이 일상화되고 있는 추세다. 또 평상시 전국 50여 시민선방에서는 직장인, 주부 등이 틈을 내어 꾸준히 정진하고 있으며, 사찰수련회동문회 회원들의 정기적인 철야참선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미얀마 등 수행문화가 일반화 되어 있는 남방 불교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수행 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가 오랜기간 동안 수행중심의 승가체계를 다져온 반면, 한국불교는 이제 시민선원을 건립해 관리체계를 확립하는 단계에 불과해 어느 정도는 남방불교의 지도점검 체계를 벤치마킹 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동안 간화선 수행체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선지식 및 지도점검 시스템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문답식 법회와 정기 점검, 선어록 공부 등 화두선 일변도의 수행방편을 극복하고 조사선의 다양한 수행법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여년간 시민선원이 양적인 성장을 이뤘다면 이제는, 내용면에서 명실상부한 참선수행도량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게 시민선원 수행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수행지도 및 점검 체계 갖춰야

간화선 위주로 수행하는 조계종 소속 시민선원에서는 스스로의 ‘자기점검’이외에 선지식에게 받는 ‘지도점검’이 거의 없거나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시민선원은 구참 재가수행자를 입승으로 임명, 좌선 시간을 정해 놓고 자율정진하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입승이 스님인 경우는 죽비로 경책을 하며 수행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지만, 입승이 있더라도 죽비 경책을 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스님들의 경우는 참선 법문을 정기적으로만 하는 정도여서 재가자들은 수행 경험이 많은 불자로부터 지도를 받거나 점검 아닌 점검을 받고 수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다 보니 이 절, 저 절 시민선원을 옮겨 다니며 정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런 가운데 일부 선원이나 참선 공부모임에서는 선종 고유의 공부과정을 되찾고 있는 곳도 점차 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조사선의 전통에 따라 스승과 제자간의 문답-점검 시스템이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은 안국선원, 원명선원, 현정선원, 무심선원, 화계사 선우회, 전등사, 선도회, 법천사 운문선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선원에서는 일대일 ‘공안 인터뷰’(화계사)나 독대 점검(전등사), ‘입실(入室) 지도’(선도회), 문답(원명선원) 등을 통해 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이들 선원에서는 다수의 제자를 대상으로 공개 문답을 통해 수시로 수행을 점검하거나, 법문을 듣다가 의문나는 점이나 정진 과정에서 부딪친 경계를 개인 문답을 통해 스스로 해결토록 지도한다. 이런 지도ㆍ점검체계를 갖춘 시민선원에서는 재가자들의 정진열기가 식지 않고 꾸준한 발심으로 수행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교쌍수로 안목부터 갖추는 게 필수

시민선원 지대방에서 재가 선객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선(禪)에 대한 안목이 생각 보다 낮고, 일반인들보다 여전히 분별심이 치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취사선택하는 마음을 쉴지니라’한 3조 승찬 선사의 가르침 처럼 선(禪)은 분별심을 쉬는 것이 수행의 요체이다. 하지만, 오로지 화두만 들고 좌선하며 경전과 선어록 보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금기시 하다 보니, 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선가에서 말하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 ‘교에 의지해 선을 깨닫는다’는 ‘자교오종(藉敎悟宗)’‘의교오선(依敎悟禪)’과 같은 말임을 모르고, 교학을 도외시한 결과 불교교리 조차 잘 모르는 참선 수행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교입선’이란, 먼저 정법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진 후 실참에 들어가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성자리를 체험하라는 말임을 재가불자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시민선원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선과 교를 함께 닦는 선교쌍수(定慧雙修),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선사들의 깨닫기까지의 수행과 깨달은 순간들의 상황을 기록한 선어록이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판단아래, 선어록을 공부하는 모임이 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현재 선어록을 강의하는 선원이나 수행단체는 기원정사 불천강경법회(不千講經法會), 동현학림, 금강선원, 강남포교원, 안국선원, 우곡선원, 무심선원 등이다.
선어록 공부는 선어록 해설과 설법을 통해 사람들이 자칫 빠져 있기 쉬운 삿된 견해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갖추도록 이끌어주고, 이를 토대로 반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선 체험을 지도해 주는 특징이 있다. 깨닫는 일이야 학인이 주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언하대오(言下大悟)를 유발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어록 공부는 이제 참선 수행자들의 인기있는 공부 방편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을 넘어 본래의 조사선으로

넓은 의미에서 조사선은 선종의 여러 조사들이 전한 선을 가리킨다. 여래선이 혜능선사의 남종 창립 이전 중국에 전래된 인도불교의 선법을 가리킨다면 조사선은 육조혜능 선사가 세운 선법을 가리킨다. 언설과 이론, 사변을 중시하는 여래선과 달리 조사선은 언어 문자를 초월하여,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격외도리를 말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조사선의 장자 유파인 간화선은 송대의 대혜종고 선사가 확립한 화두선으로서, 현재 조계종이 봉대하고 있는 수행법이다.
조계종은 최상승 수행법이라고 일컫는 간화선법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어오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출재가 수행자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선방에서 조차 제3수행법을 공공연히 묵인하는가 하면, 간화선을 버리고 남방수행법을 찾는 스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사선의 한 방편으로 확립된 간화선 일변도에서 벗어나,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문득 깨닫는다는 ‘언하변오(言下便悟)’를 가능하게 하는 선문답과 지도점검 등 조사선의 공부과정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선(禪)을 공부해 본성을 깨닫기로 결심하는 ‘발심’,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가 법을 묻는 ‘참문(參問)’, 선지식의 대답을 듣고 생긴 의문을 해결하려는 ‘참구(參究)’, 참구의 결과 해답을 얻어 선지식을 찾아가 답을 확인하는 ‘감변(勘辨)’과 ‘인가(印可)’ 등 전통 수행체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사선의 수행법은 좌선, 관법 등 특별한 능력의 습득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교육법인 문답법이라는 데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선원의 활성화에 발맞춰 이제는 간화선 수행의 제반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올바른 조사선의 수행법과 문답법, 점검체계 등을 바르게 파악, 시대에 맞도록 질적인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부족한 선지식의 공백을 대신할 수 있는 수행체계의 확립과 대중화의 노력은 한국 간화선이 극복해야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김성우/현대불교신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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