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관음의 전설은 지난 호에 언급한 ‘위음(魏蔭)의 전설’ 외에도 또 다른 전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왕사양(王士讓)이란 사람에 얽힌 전설이다. 전설에 의하면, 안계 서평(西坪) 요양(堯陽)이란 곳에 왕사양이란 선비가 있었다. ‘요양’은 현재의 서평진(西坪鎭) 남암촌(南岩村)이다. 어떤 기록에서는 왕사양(王士讓)을 ‘왕사량(王士諒)’이라고 하며, 청나라 옹정(雍正) 때 십년간 부공(副貢)을 관직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평생 동안 기이한 꽃과 풀을 수집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요양의 남산(南山)자락에 서재를 짓고 ‘남헌(南軒)’이라 이름붙이고 그 주변에 작은 화원을 일구어 여러 가지 희귀한 꽃과 풀들의 모종을 수집하여 재배하였다.
왕사양이 관직에 있을 때 청나라 건륭(乾隆) 원년(1736년) 봄에 휴가를 내어 고향의 친지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고향의 남암산 자락을 유람하다가 우연히 황무지 텃밭 층층이 쌓인 돌 틈 사이로 맑은 향이 간헐적으로 은은히 퍼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그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 형태가 아주 독특한 차나무를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특이한 차나무를 발견한 왕사양은 몹시 기뻐하며 곧바로 자신의 화원에다 옮겨 심었다.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세심하게 관찰해보니 차나무의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를 뿐 아니라 가지와 찻잎도 다른 차나무에 비해 매우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듬해 봄이 오자 왕사양은 춘차(春茶) 채적시기에 맞춰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어보니 그 차의 모양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냄새가 꽃처럼 향기롭고 맛이 아주 순후(醇厚)하였다. 그는 속으로 “이 차는 분명히 귀이한 차다.”라 생각하며 자신이 만든 이 차를 정성을 다해 포장한 뒤 아무도 모르게 깊숙이 보관하였다.
건륭 6년(1741년)에 왕사양이 황명을 받들어 황제가 있는 북경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자신이 만들어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차를 떠나는 길에 함께 가지고 북경으로 가서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있던 방포(方苞)란 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방포란 자는 원래가 고가의 물건을 잘 식별하기 유명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고급 차를 잘 감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그를 ‘차선(茶仙)’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방포는 왕사양이 선물한 차의 향기를 맡자말자 곧 비범한 차임을 감지하고 다시 포장을 하여 이내 곧 공품(貢品)의 형식과 예(禮)를 갖춰 건륭황제에게 바쳤다.
건륭황제는 평소 차를 무척 좋아하였으며 차를 우릴 때 사용되는 샘물에까지 조애가 깊어 천하를 다 돌아다니며 온 세상의 유명한 샘물의 서열까지도 스스로 직접 정할 정도로 차 애호가이자 다도전문가였다. 건륭은 방포에 의해 공차(貢茶)로 올라 온 왕사양의 차를 마셔보고는 “진정 ‘가품(佳品)’이로구나 !”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즉시 어명을 내려 왕사양을 불러 오게 하였다. 건륭황제가 왕사양을 직접 만나보고는 “이 차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 온 차인가?”하고 물었다. 이에 왕사양은 이 차를 발견하고 만들게 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조목조목 아뢰었다.
왕사양의 세심한 보고를 다 듣고 난 건륭은 다시 차를 꺼내어 세심하게 차의 외형을 관찰하였다. 그리고는 손대중으로 찻잎의 외형적 긴밀도와 무게 등을 측량해 보고는 말하기를 “이차가 발견될 때 마치 관음보살의 모습과도 같이 신비스러웠고 그 무게가 쇠를 든듯하니 ‘철관음’이라 이름하대 발견해서 이 차를 만든 곳이 ‘남암(南岩)’이니 이름 앞에 지명 두 자를 덧붙여 ‘남암철관음’이라 하자.”라고 하였다.
이 전설을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안계철관음’은 곧 관세음보살께서 차를 하사하시고, 황제께서 이름을 하사한 차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적 배경의 영향 때문인지 왠지 철관음을 마실 때면 특유의 난화향(蘭花香) 운치 위에 또 다른 고풍스러운 운치가 물씬 배어나는 듯하다. 따끈한 철관음 한 잔을 마주하고 찻잔 속에 이는 운무(雲霧)를 보노라면 산에 있지 않아도 나 자신이 어느덧 운무에 뒤덮인 깊은 산속 계곡을 거닐고 있고, 산사(山寺)에 있지 않아도 맑은 청향 찻물 속에서 어느덧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듯 하는 착각과 느낌이 들어 지난 업보가 씻어져 내리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순간적이지만 잠시 세상풍파의 온갖 시름을 잊어본다.

박영환/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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