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일소(答一笑). 한자 그대로 “답을 물으니 한번 웃는다”는 뜻이다. 스승의 웃음에는 담백하고 청정(淸淨)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笑’ 한 글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맑은 웃음 한번 짓기 위하여, 수십 년간의 팽팽하고 치열한 긴장이 있었다면 어찌할 것인가? 생손가락을 불에 태우는 연비(燃臂)의 고행이 동반된다면? 세속적인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고독한 수행의 길을 택한 칼날 같은 정신이 담겨있다면?

그러므로 열일곱 선승(禪僧)들의 가르침을 문답 형식으로 인터뷰한 <답일소—선지식에게 물었다>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선 ‘할’ 소리가 들린다. 숨을 멎게 할 듯한 선방의 고요한 떨림이 보이며, 한국불교 전통 선풍(禪風)의 얼음장 같은 수행정신이 느껴진다. 상원사 의정 스님, 보문선원 대허 스님을 비롯한 열일곱 분 스님들은, 저자의 질문에 답하며 각자의 치열했던 수행과 그로부터 단련된 선지식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답에서 참된 지혜를 길어올리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40여년간 깊은 산골에서 서너 평의 토굴을 짓고 생식만을 해왔던 스님, 매년 100일 동안 문 밖 출입을 일체 하지 않고 폐관정진해 온 스님, 한 차례도 산문을 나서지 않고 6년 동안 묵언정진한 스님, 노동이 곧 수행이요 수행이 곧 노동이라며 오래도록 선농일치 사상을 실천하는 스님…. 산문(山門) 안의 그 철저한 수행담을 읽으면서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로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무릇 몸으로 실천한 가르침보다 더욱 절실한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불교 관련 에세이집, 선사들의 일화집 등을 출간해 온 저자 문윤정은 언제부턴가 선승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싶다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가의 가풍이란 워낙 자신의 살림살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기에 쉽지 않았다고. 저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어 열일곱 선승들의 푸른 옥 같은 말씀을 「현대불교신문」의 지면 위에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의 소산이 바로 <답일소>이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선승들의 지혜의 빛은 강렬하여 눈이 부셨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세상의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어떤 스님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여쭈었고, 어떤 스님에게는 사랑을 여쭈었고, 어떤 스님에게는 가난의 고난을 여쭈었고, 어떤 스님에게는 죽음의 고통을 여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선승 열일곱 분께 말이다. 자, 책을 읽을 이유는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 박성열 기자 

문윤정 지음 / 한걸음 더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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