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을 해석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1장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모두 32장으로 구성된 금강경 중에서 1장을 유독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머지 31장엔 부처님의 말씀이 들어있고, 제1장이 유일하게 부처님의 소소한 일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오직 1장이 전부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1장의 비중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나머지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1장에 부처님의 행동을 통해서 모두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 실천하는 게 낫다' 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은 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데서 금강경 제1장을 높이 평가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달라이라마 일상

이번에 개봉한 영화 <선라이즈 선셋> 또한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직접 출연해 그의 평범한 일상을 관객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서구에서 달라이라마는 불교 아이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붓다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끊임없이 달라이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호소해왔습니다.

달라이라마의 말이나 생각은 책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 출판되고 있고, 그의 일대기 또한 장 자끄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이름께나 알려진 거장들의 관심을 달라이 라마가 한 몸에 받는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라이라마를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종교인도 이런 호기심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달라이라마 개인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불교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 경지는 무엇이고, 불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은 무엇이고, 이런 의문이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돼온 것입니다. 그런 호기심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영화 <선라이즈 선셋> 또한 나왔습니다.

그런데 달라이라마의 일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역동적이었습니다. 금강경 1장에서 묘사된 부처님의 일상은 그림처럼 고요한 이미지였습니다. 천이백 제자들과 더불어 밥을 빌러 바루를 들고 줄지어 떠나는 모습은 정적인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일상은 꽤 시끌벅적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차이는 부처님이 생존했던 시대는 단순하고 간단했는데 반해 현재는 모든 게 복잡하고 급하게 흘러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벽 3시 잠에서 깬 달라이라마는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헬스기구 위에서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꽤 충격이었습니다. 커다란 타월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70대 노인이 러닝머신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뜻밖이었습니다.

친절과 여유, 내면의 평화 잃지 않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로 BBC를 즐겨본다는 달라이라마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느 방송사의 토크쇼에 출연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어했습니다. “저 날은 얼굴 표정이 왜 저렇게 굳어있지?” 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물론 종교 지도자다 보니까 5시간이나 이어지는 법회에서 꽤 긴 법문을 하고, 티벳 망명정부가 들어선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로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의 주요 일과지만 나머지 다른 시간은 이렇게 텔레비전도 보고,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도 하는 등 일반인과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달라이 라마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의 장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엄청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분단위로 시간을 계산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친절과 여유,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잃지 않는 모습은 달라이라마가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 같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도 짜증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내내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미소와 평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사람들을 위해서 베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벳에서 달라이라마는 보살의 화현으로 여겨지는 데 그 평가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일상을 보면서 예전에 누군가 그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종교를 한마디로 말해보세요, 라고 하자 달라이라마는, 내 종교는 친절, 이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정말 그의 말처럼 달라이라마의 일상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친절과 여유였습니다.

다큐멘터리계의 전설 비탈리 만스키 작품

달라이라마의 일상을 소개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선라이즈 선셋>은 러시아 출신의 감독 비탈리 만스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러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의례 유럽이나 미국 감독일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서구에서는 최근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돼있고, 특히 달라이라마에 의한 티벳 불교에 대한 관심은 엄청난 수준이기에 의례 그런 나라 사람일 줄 알았는데 러시아라서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감독의 이력을 읽고 나자 조금 수긍이 갔습니다. 지금까지 30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 칸 국제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차례의 수상경력도 있는 비탈리 만스키는 다큐멘터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습니다. 이 대가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달라이라마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달라이라마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로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의지처가 되고 있는데, 그가 갖고 있는 어떤 면이 이런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하는 그런 단순한 궁금증에서 이번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가졌던 호기심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고, 이 영화를 통해서 호기심의 많은 부분이 해소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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