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에 있어 민주주의 정착과 한반도 통일이란 난제를 한평생 화두로 삼고 살다 간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金大中)이다. 여타한 수식어로 이 인물을 묘사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한 뒤 1955년부터 지난해 서거에 이르기까지 겪은 풍파 속에서 남긴 어록들을 정리한 《김대중어록 - 역사의 길》이 최근 출간됐다.

서거 1주기를 맞아 고인의 뜻을 기리고 유지를 잇고자 출간된 《김대중어록 - 역사의 길》은 김대중 대통령의 사무친 영혼의 말씀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 민생과 복지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 큰 울림을 함께 나누고 싶은 취지로 기획됐다.

이 책에 수록된 어록은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30여 권의 저서와 강연, 연설문 등을 정진백 한국사상문화원장(전 월간사회평론 창간 책임자)이 일일이 검토하여 가려낸 글귀다. 통일, 평화, 민족, 민주, 자유, 경제, 역사, 사상, 정치, 예술, 여성, 신념, 고난, 인내, 신앙, 봉사, 사랑, 이웃, 가족 등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민족적, 세계적인 관점과 지향점에 이르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폭과 깊이를 엿볼 수 있다.

▲ 엮은이 정진백 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어록전에서 이번에 출간한 어록집을 설명하고 있다.
엮은이는 서문을 통해 시대를 불문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에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맥이 있고 인간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와 사상의 흐름을 따라 진행하다보니 그것은 마치 장강만리長江萬里를 달리는 심사였다. … 짐작하겠지만 이 책에는 위대한 역사적 과업에 대한 과학적인 법칙이 있다. 또한 역사를 통해 제기된 난감한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해답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켜주는 인간주의의 덕목이 있다.”

《김대중어록 - 역사의 길》은 총 여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엮은이는 시대사적 구분법으로 어록들을 편집했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의 온기가 채 가지 않아 2009년의 어록을 맨 처음에 배치했다고 엮은이는 밝혔다. 표제는 ‘좋은 나라를 이룩하려면’이다. △1955년부터 71년까지의 어록은 ‘도전의 시기, 불굴의 웅지’로, △1972년부터 82년까지는 ‘고난의 가시밭길, 사선을 넘어’로, △1983년부터 97년까지는 ‘민중의 함성, 전진하는 역사’로, △대통령 임기 기간인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명예혁명, 국민의 정부’로, △2003년부터 2009년까지는 ‘다시 처음처럼,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하여’로 각각 표제를 삼았다.

또 이 책은 한 편의 긴 글이지만 한 단락 자체로도 사상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급적 세세하게 구분하여 가독성과 공감대를 높일 수 있도록 편집돼 있다. 이는 다방면에 걸쳐 방대하게 형성된 김대중 대통령의 활동 폭과 그 사상적 깊이를 담보하는 것으로, 그의 사상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지도이자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록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마지막해 신년초에 한평생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평하는 부분도 있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이 간접살인 다름아니다는 지론도 나타내고 있다.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폭넓은 사상체계만큼 불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부분도 적지 않게 실려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원효를 무애도의 실천인으로 묘사하는 한편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게를 장대한 인권선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원효는 철저하게 율법주의, 형식주의를 배격하는 무애도(無碍道)의 실천인이었습니다. 한 여성의 제도를 위해서 그(요석공주)와 동침하고 승려로서는 치명적인 파계를 했으며, 필요하면 포항 바닷가에 가서 생선도 먹고 서라벌 시내의 주사(酒舍)에도 출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법도에 맞고 불법의 진수에 합치했습니다.”

“부처님은 2천여 년 전에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하독존’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장대한 인권선언입니까. 이 세상 우주 만물 중에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 우주가 바로 나다. 이러한 선언인 것입니다.”

지은이 김대중, 엮은이 정진백/도서출판 서예문인화/18,000원

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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