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교인 DMZ(비무장지대) 400㎞ 생명 평화 순례단’. 불화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실천불교승가회 상임지도위원 퇴휴 스님. 사진 제공 실천불교승가회.
‘4대 종교인 DMZ(비무장지대) 400㎞ 생명 평화 순례단’. 불화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실천불교승가회 상임지도위원 퇴휴 스님. 사진 제공 실천불교승가회.

스님,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을 비롯하여 4대 종교인들이 2024년 2월 28일부터 3월 21일까지 23일간에 걸쳐서 ‘DMZ(비무장지대) 400㎞ 생명 평화 순례’를 거행했다. 파주 순례자 학교를 시작으로 파주 오두산 전망대, 임진각,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400㎞를 오직 도보로 침묵 순례 기도가 이어졌다.

성당이나 공소, 교회, 마을회관, 만해마을 등에서 4대 종교 성직자들이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 법회, 미사, 예배나 기도를 돌아가면서 봉행하였다. 때로는 교회나 성당에서 목탁을 치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기도와 법회를 하기도 하면서 모든 종교인이 함께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익숙지 않은 광경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상대 종교를 존중하면서 모두가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서로서로 합장을 자연스럽게 하는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종교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성당이나 교회의 한 공간인 십자가 아래서 4대 종교 성직자들이 잠을 자고 때로는 씻을 곳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몇 차례는 대중탕에서 목욕하기도 하였다. 가족 간에도 같이 목욕하기 어려운데 가장 이질적으로 생각되던 이웃 종교 성직자와 종교인들이 서로 등을 밀어주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면 놀라운 광경일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강력한 살상 무기가 밀집된 지역이다. 세계에서 군사력이 10위 안에 드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죽이겠다고 동족을 향하여 가공할 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또한 지구상의 곳곳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고, 심지어 3차 세계 전쟁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럴 때 종교인들이 가장 종교인다운 방법인 기도로 전쟁의 암운을 몰아내 보자고 시작한 순례였다.

남북이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일촉즉발의 상황인 남북 접경지대 DMZ와 가장 가까운 곳을 따라서 400㎞에 이르는 길을 각자의 종교적인 방식으로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참회하는 마음과 함께 침묵의 기도로 이어진 순례의 행렬이었다.

이번 기회에 꼭 소개하고 싶은 일본인 스님이 있다. 이번 생명 평화 순례에 전 일정을 함께한 일본의 묘법사(妙法寺) 소속의 잇코 스님과 오니시 스님이다. 그동안 잇코 스님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행한 해악을 참회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묘법사를 창건한 후지 스님의 평화 유훈을 실천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접경지인 철원에서 13년째 오직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 정진하고 있는 분이다. 눈물이 나도록 감사한 스님들이다.

이번 순례를 통하여 얻은 가장 확실한 것은 우선 내 자신이 평화를 얻었다는 것이다. 또한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는 볼 수 없었던 우리 국토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그동안 전 일정을 함께했던 분이든 또는 일부 구간만 참여했던 분이든 무수한 길벗들과의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부처님이 돕고, 하늘이 돕고, 밟고 지나온 땅이 돕고, 대자연이 돕고, 곳곳의 무수한 인연들이 도와서 행복한 평화 순례 길이 되었다. 물론 평화의 길은 걷기만 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의 힘을 모아 이뤄낸 작은 희망의 빛이 곳곳에서 울림이 되어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하여 진정한 평화가 이뤄지길 서원하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아쉬우면서도 부러운 점은 가톨릭은 10여 년 전 파주에 거대한 규모의 민족화해센터인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건립하여 본격적으로 평화와 통일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독교장로회, 예수장로회, 감리교, 성결교 등이 접경지역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교회나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거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원불교는 북한 지역을 관장하는 평양 교구장을 임명하여 통일과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가톨릭과 개신교, 원불교는 통일 이후까지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불교계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번 생명 평화 순례에 가톨릭이나 개신교는 조직적인 인적 참여와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불교의 경우, 조계종 종단의 전담 기구에 대한 협력 요청에 조직적 답변을 듣지 못했다. 전담 기구인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또는 언젠가 현실이 될 통일 이후를 대비한 적극적인 역할과 노력을 촉구한다. 일제강점기 기미년 독립선언 시 만해와 용성 스님께서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불교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불교계의 통일에 대한 노력과 준비가 없이 통일된다면 통일된 조국에서 불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는지 끔찍한 일이다.

불자들의 서원과 정진과 노력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가 앞당겨지길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기도 올립니다.

2024. 3. 24.
실천불교승가회 상임지도위원 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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