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7대 종교계 방북단이 2011년 9월 23일 백두산 천지를 관람했다.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남측 7대 종교계 방북단이 2011년 9월 23일 백두산 천지를 관람했다.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일곱 무지갯빛을 선보이다”

근세기에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와 같이 평양은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린다.”고 1921년 2월 조선총독부의 평안남도지사 시노다 지사쿠가 총독에게 공식 보고한 후, 서울 사랑의교회가 2005년 5월 개최한 ‘성서학 학술심포지엄’에서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지칭한 것이 확대돼 불리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아이러니 속의 옛 별칭으로까지 재해석된 지명들은 2011년 9월, 남측 7대 종단 대표자들의 평양행에서도 이야깃거리로 오갔다.

그때 평양의 절들을 비롯해 1980년대 말부터 평양에 새로 건립된 장충성당과 신학원, 봉수·칠골(반석) 교회와 2003년 건립된 러시아정교회의 정백교회에 대한 종교시설 방문이 거론됐다. 1994년 10월 개건한 단군릉을 비롯한 민족유산에 대한 방문 코스는 공동 또는 종교별로 이루어졌다.

남측 7대 종교계의 평양방문은 이명박 정권의 2010년 5·24조치 후, 특단의 조치였다. 남과 북의 11개 종교단체 대표들이 2011년 9월 평양에 총집결한 것은 63년 만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1948년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출발점이다. 1945년 해방 공간에서 발행돼 신익희가 사장을 맡고, 최남선 등이 활동한 《자유신문》(1947.6.21.)에서는 “북조선의 제정당 단체, 공동준비위(共委) 참가를 활발 준비”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반세기를 지나서 이뤄진 남측 7대 종교의 합동 방북단은 공동과 개별 교류를 가졌다. 불교와 원불교는 북측의 조선불교도련맹, 개신교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가톨릭은 조선카톨릭교협회(구 조선천주교인협회), 천도교는 조선천도교회, 유교를 대표한 성균관은 조선유교협회, 대종교 등 한국민족종교협의회는 단군민족통일협의회와 각기 짝을 이뤘다. 평양 방문 행사를 주관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1989년 5월 결성된 북측의 조선종교인협의회(KCR)와 짝을 이뤘다.

이때 7대 종단 대표들의 평양행은 일곱 빛깔 무지개를 선보인 것과 같다. 1996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종교인 북경회의’는 반쪽이었다.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와 함께 평양에서 개최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종교인모임’은 완전한 모둠체를 이뤘다. 남북교류 역사상 최초로 열린 평양 남북종교인모임에 대한 현장과 종교간 교류의 이모저모를 다시 살펴본다.

분단 후, 7대 종교계의 만남

남북 종교계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교류를 시작한 후, 1996년 2월부터 개별과 함께 합동으로 만나 공식 활동을 가졌다. 중국 등 제3국에서의 만남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개성과 평양·금강산에서 직접 교류를 시작했다.

그간 종교간 개별 교류는 인도적 지원에 기반한 공동사업을 토대로 의식 등 종교활동을 포함했다. 종교 연합 성격의 합동 교류는 종교활동보다 연대사업과 관광에 비중을 두었다. 이런 측면에서 2011년 9월 남측 7대 종단 대표자들의 합동 방북은 종교 교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남북교류가 중단된 가운데, 7대 종단 대표의 평양 방북은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언) 초청으로 2011년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이루어졌다. 김희중 한국천주교 대주교를 방북단 대표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주원 원불교 교정원장, 최근덕 성균관장, 임운길 천도교령,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단 등 24명이 동행했다.

그해 9월 21일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에 들어간 종단 대표단은 모란봉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 9월 22일 오전 9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접견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오후 2시 평양시 고려동포회관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북남종교인모임’을 개최하고, 7대 종단이 함께하는 남북종교인 교류를 정례화하는 데 합의했다.

9월 23일에는 국내선 고려항공을 이용해 삼지연공항을 거쳐 백두산 천지를 관람했다. 9월 24일 오전에는 평양의 조불련 중앙위원회 청사, 장충성당, 봉수교회 등에서 종교별 상봉과 의식을 개최하고, 7대 종단 수장들은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견학했다. 그날 저녁 8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조선신보》의 그해 9월 23일 기사에는 “북과 남의 11개 종교단체 대표들이 22일 평양에 총집결하여 북남 사이의 적대와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하여 앞장에서 노력할 것을 선언하였다.”고 보도됐다.

북측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남측 7대 종교 대표들. 2011년 9월 22일 평양 만경대의사당.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북측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남측 7대 종교 대표들. 2011년 9월 22일 평양 만경대의사당.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9월 22일 오전 9시경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남측 7대 종단 대표단의 담화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대표단 일행의 평양 방문을 고마운 마음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열렬히 환영한다. 우리는 북남관계가 대결상태에 놓여 있는 때에 대용단을 내려 북행길에 오른 여러분들의 숭고한 애족의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환영 인사했다.

이 자리에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인사들과도 회동했다. 이어 오후 2시부터 평양시내 고려동포회관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북남종교인모임’을 통해 6·15공동선언 지지와 북남종교인들 명의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날 모임에서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은 “북남 사이의 내왕과 접촉을 가로막고 대결을 고취하는 온갖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한 전 민족적 운동을 벌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과 남의 종교인들이 자주 만나고 대화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가자.”고 강조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남과 북의 종교인들이 가는 길이 곧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의 길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 공덕들이 쌓이면 평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기본연설을 했다. 이어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 최근덕 성균관장, 심상진 조선불교도련맹 위원장,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강철원 조선천도교회 부위원장, 임운길 천도교 교령의 순서로 연설했다.

또 남북종교인들은 이날 모임에서 채택·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민족 앞에 조성된 현 난국을 타개하고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려는 일념으로 평양에서 공동모임을 가졌다고 지적하고,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 수호 △북남 공동 선언의 지지와 실천 △종교인·각계각층의 단합 도모의 입장을 밝혔다. 이 성명은 북측의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와 남측의 한국천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 원불교, 유교 성균관,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공동명의로 채택됐다.

남북종교인들이 처음 채택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북남종교인들의 공동성명’에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하나의 핏줄을 이어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외세의 침입과 강제로 인해 이 땅은 갈라졌고, 우리 민족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오고 있다. 오늘 분열의 비극을 가시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온 겨레의 열망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북과 남의 종교단체 대표들은 민족 앞에 조성된 현 난국을 타개하고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려는 일념으로 평양에서 공동모임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우리는 북남 사이의 적대와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하여 앞장에서 노력할 것이다.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북남 사이 대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민족 자신이다. 우리는 민족 내부의 반목과 불신, 긴장과 대결을 걷어내고 전쟁위험을 제거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오늘날의 현 대결 국면을 가시기 위한 출로도 다름 아닌 북남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리행하는 데 있다. 북남 사이의 모든 문제들을 민족공동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온 민족의 힘과 지혜를 모아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해내외의 모든 종교인들과 각계각층의 단합을 적극 도모해 나갈 것이다. 민족의 대의 앞에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계급과 계층, 북과 남, 해외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북측 종교인협의회와 남측 종교인평화회의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례적인 모임을 가지며, 모든 종교인들의 단합을 실현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을 적극 벌여 나갈 것이다. 이를 계기로 각계각층의 래왕과 접촉, 협력사업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나라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민족사의 갈피마다에는 참다운 애국의 넋과 마음, 뜨거운 피와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친 유명 무명의 수많은 인사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이 남긴 고귀한 자국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해내외의 온 겨레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전 민족적 대오에 한 사람같이 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고 발표했다.

남측의 7대 종단 대표들은 2011년에 이어 2015년 두 차례 방북했으며, 두 차례 모두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 발표한 바 있다.

9월 23일 백두산 천지를 관람한 7대 종단 방북단은 9월 24일 평양 장충성당을 찾은 김희중 대주교 일행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성경과 주석 성경을 선물하고, 약식 예배를 가졌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봉수교회에 예배를 가지는 등 부문별 종교모임이 진행됐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조불련 청사에서 심상진 위원장 등과 예불하고 환담했다.

이때 3박 4일간 남측 7대 종교지도자들이 평양에서 보여준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의 행보는 공존과 상생을 기조로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후 행보에서 본다면, 2011년 9월 남측 7대 종단 대표자의 평양행은 아이러니한 역사의 또 다른 장면으로 남게 됐다.

2011년 9월 22일 평양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린 북남종교인모임. 가운데 빈 자리는 북측 장제언 KCR의 자리이다.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2011년 9월 22일 평양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린 북남종교인모임. 가운데 빈 자리는 북측 장제언 KCR의 자리이다. 사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거룩한 이름보다 동포 돕기

해방과 분단 정국에서 평양의 불교는 정릉사, 중흥사, 금강사 등 사찰 대부분이 사라지고, 영명사, 광법사, 법운암, 동금강암이 명맥을 유지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평양부》(1932. 7.)에는 평양 불교광제회가 명패를 내걸고 활동한 건물과 일본불교의 진언종 국태사가 건립돼 종교활동을 펼친 것이 수록돼 있다. 또 1945년 12월 26일 조선불교도련맹의 창립 맴버로 참여한 공락문 대사가 1935년에 창건한 모란봉 룡화사는 근현대사의 평양 거점 사찰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2015년 하반기에 모두 철거돼, 절터는 확장 개보수한 만경대유희장 시설로 편입됐다. 이외에 천도교에서도 몇 개 동의 양옥 건물로 건립해 평양종리원을 운영한 것을 알 수 있다.

평양에서 시작된 종교계 성자들의 슈룹(우산의 우리말)은 1996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가톨릭, 기독교, 불교, 원불교 대표자들이 ‘남북종교인모임’을 처음 개최하고, 북측의 큰물 피해 돕기라는 명분으로 우비(雨備)의 첫 모양이 펼쳐졌다. 특히, 2011년 9월 2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 담화 자리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우회적으로 평가한 말은 교류사의 이슈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주는 사람은 겸손하게 주고, 받는 사람은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는 사람은 사정해서 주고, 받는 사람은 당당하게 받아야 하는데, 지금 남쪽 정부가 주는 사람이 큰소리치고, 받는 사람은 비굴하게 받아 가라는 것인데, 이는 잘못됐다고 본다. 종교인으로서 성경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모금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우리가 요즘 서로들 정중하지 못하다. 따뜻하지 못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원에 있어 정중하고 따뜻하고 깊은 애정과 사랑이 담긴 ‘사랑의 선물’처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이 되고, 남북 협력관계가 돼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라고 불편한 입장을 피력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2010년 11월 15일 ‘이명박 정부에 대북 인도적 지원 창구를 열어 달라’는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1년 6월 15일 개성을 통해 어린이 영양제를,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는 10월 13일 개성 봉동역을 통해 빵공장 지원 밀가루 40톤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10월 12일 개성 봉동역을 경유해 밀가루 100톤을 전달했다. 천태종은 10월 31일 ‘영통사 낙성 6주년 및 의천 대각국사 910주기 열반재 남북합동법회’를 개최하면서 밀가루 40톤을 지원했다. 한편,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10월 13일 금강산 신계사 복원 4주년 합동법회를 리규룡 조선불교도련맹 서기장, 류인명·김진삼·리영호 책임부원 및 전국신도회 등 남북측 30여 명과 봉행하고, 11월 12일부터 16일 평양을 방문해 정릉사, 보현사, 성불사 등을 참배했다.

이처럼 2011년 당시 불교는 남북교류를 선도했다. 그 사이에 이웃 종교와 공동 또는 연대를 통한 남북 종교의 만남은 교류의 새로운 트랜드가 됐다. 당시에 원-원 전략은 지금까지도 겉모습으로, 실제로 각기 추진하고자 하는 속내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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