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白龍城)은 1912년 5월 26일 범어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朝鮮臨濟宗 中央布敎堂) 개교식을 주도하였다. 이 개교식은 13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리에 종료되었다.32) 백용성은 임제종의 조선선종 중앙포교당의 포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한용운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로 가담하기도 하였는데,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는 1921년 오성월, 송만공, 김남전 등과 함께 선학원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33) 1931년 선학원 재건 당시에는 송만공, 한용운 등과 함께 일반 대중에게 설법, 강화 등의 행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34)

백용성 스님이 비구승 127명과 함께 조선 총독과 일본 내무성에 제출한 건백서.
백용성 스님이 비구승 127명과 함께 조선 총독과 일본 내무성에 제출한 건백서.

백용성의 정법 수호와 항일운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1926년 5월과 9월 127명의 비구승과 함께 조선 총독과 일본 내무성 앞으로 제출한 ‘파계 생활 금지’에 관한 건백서(建白書)였다. 당시 불교계에 풍미했던 대처식육(帶妻食肉)의 현상은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192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일본 유학생 간에 현저히 증가하게 되었다.35) 이것은 단순히 일본 유학생들에게만 국한된 왜색화(倭色化)의 경향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전통을 말살하고, 청정 비구승의 수행풍토를 저해하는 당시 불교계 최대의 위기 상황이었다. 당시 백용성의 건백서는 “재가신도와 출가 대중의 구별이 엄연히 있는데, 근자 출가 대중 가운데 함부로 대처식육하는 마속들이 발생, 청정도량을 더럽히고 있으니 하루속히 시정토록 해달라”는 탄원서였다. 비록 일제의 미온적인 태도로 그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백용성의 노력은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이상 임제종 주도 인물들은 단순히 이회광과 원종의 매종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불교계를 독자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의지는 10여 년 이후 선학원 설립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임제종운동이 미완으로 끝난 이후 사찰령(寺刹令)에 기초한 일제의 탄압은 심화되었고, 왜색화(倭色化) 역시 당시 불교계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한국불교가 지닌 존립과 정체성의 기반마저 위협을 받고 있었다. 한용운, 오성월, 백용성 등 임제종운동의 주도 인물들은 불조(佛祖)의 정맥(正脈)을 잇는 정법구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정법구현운동은 이른바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한 것이고, 그것은 청정 비구승의 수행을 강조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의 정법 구현 의지는 왜색불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불교계의 항일운동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임제종운동은 “조선불교는 임제종이므로 일본의 조동종과 병합될 수 없다.”는 논리로 한용운, 박한영 스님을 비롯한 민족불교의 선구자들이 ‘매교(賣敎)’라고 맹렬히 비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선학원의 설립 역시 임제종운동에 참여했던 핵심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36) 이와 같이 당시 선종수좌대회는 총독부와 결탁된 30본산 주지들의 회합체인 30본산 연합사무소와는 성격을 달리하며 조선불교계의 독자성을 천명하였다.

<선종수좌대회회록>은 대회 순서만 보더라도 창립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다.

一. 개회開會(歸依三寶)

一. 개회사開會辭

一. 회원점고會員點考

一. 임시집행부선거臨時執行部選擧

一. 선서문봉독宣誓文奉讀

一. 준비위원회경과(참구원경과)보고準備委員會經過(參究院經過)報告

一. 의안사정위원선거議案査定委員選擧

一. 준비위원회 제안에 대한 토의準備委員會提案에對한討議

1. 선종종규제정禪宗宗規制定 2. 종정회규칙제정宗正會規則制定 3. 종무원원칙 제정宗務院院則制定 4. 선의원회규칙제정禪議員會規則制定 5. 선회법규제정禪會法規 制定 6. 선원규칙제정禪院規則制定 7. 승려법규제정僧侶法規制定 8. 포교법규제정布敎法規制定 9. 신도법규제정信徒法規制定 10. 참구원정관수정급시행세칙제정參究院定款修正及施行細則制定 11. 재단확장기성회조직財團擴張期成會組織의 건 12. 중앙에 모범선원설치 문제 13. 의제급의식衣製及儀式에 대한 문제 14. 기관지창간機關紙創刊에 관한 문제

一. 임원선거任員選擧

一. 기타사항

一. 폐회

선리참구원 성립 경과 보고(1935년).
선리참구원 성립 경과 보고(1935년).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는 종헌(宗憲)인 조선불교선종종규(朝鮮佛敎禪宗宗規)와 각종 법안을 제정하였다.

선종의 정체성과 체계성을 지니고 있는 조선불교선종 종규는 종명(宗名), 종지(宗旨), 본존(本尊), 의식(儀式), 선원(禪院), 승려급신도(僧侶及信徒), 선회(禪會), 종무원(宗務院), 종정(宗正), 선의원회(禪議員會), 재정(財政), 보칙(補則) 등 12장 29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선회, 선의원회, 종무원은 수좌들의 수행을 외호하는 사판(事判)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근간이 되었다. 이른바 ‘선종’의 크고 작은 공적인 현안을 의결하고 결정하기 위한 조직이다. 특히 선회는 제반 법규를 제정하고, 종문(宗門)의 일체 사항을 의결하기 위해 선의원회를 두기도 하였다.37) 이러한 선회, 선의원회, 선종종무원은 선리참구원과 함께 선종의 외적 권익 주장과 보호, 내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효율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선종수좌대회는 이들 각 조직의 법과 원칙을 제정하여 체계화하였다.

한편 당시 선종수좌대회는 선종의 종무와 제반 사업을 관장하기 위해 전국 선원의 단일 기관으로 중앙종무원을 설치하였는데 재단법인의 운영 및 관리까지도 담당하였다.

제1장 조 직

제1조 본원本院은 조선불교선종종규朝鮮佛敎禪宗宗規 제15조 및 제16조에 의하여 조직함.

제2장 직제職制

제2조 본원은 원장 및 부원장副院長 각1인式을 치置함

一. 원장은 본원을 대표代表하야 제반 사무를 통할하며 각부 사무를 재결裁決함

二. 부원장은 원장을 보좌하며 원장이 유고할 때는 이를 대리함

제3조 본원은 서무부庶務部, 재무부財務部, 교화부敎化部를 두어 종무宗務를 통리統理함

제4조 각부에 이사 1인부원 약간인을 둠.

제5조 각부 이사는 부원을 지휘감독하며 종무를 분장함

제6조 각부원은 이사의 지휘를 받아 부무部務에 종사從事함

제3장 직무

제7조 서무부庶務部의 주요 되는 사무는 아래와 같음.

1. 일반 외교문外交文에 관한 건

2. 원내부원院內部員의 임면任免 및 기타인사에 관한 건

3. 종정, 선의원, 원장, 이사, 선회원의 선거사무에 관한 건

4. 선회禪會 소집에 관한 건

5. 승니僧尼 및 사찰선원에 관한 건

6. 원의院議 개최에 관한 건

7. 승적僧籍에 관한 건

8. 의제衣制에 관한 건

9. 선의원회禪議員會에 관한 건

10. 문서왕복에 관한 건

11. 기밀에 관한 건

12. 인장印章 보관에 관한 건

13. 원보院報에 관한 건

14. 사회사업에 관한 건

15. 전각호前各號에 속한 통계의 조제문서調製文書의 보관 및 타부他部에 속하지 아니한 일체에 관한 건

제8조 교화부敎化部의 주요한 사무는 아래와 같음

1. 포교 및 교육에 관한 건

2. 일체 의식에 관한 건

3. 포교사布敎師의 양성 및 그 임면任免에 관한 건

4. 신도信徒에 관한 건

5. 도제교양徒弟敎養에 관한 건

6. 고시考試와 법계法階에 관한 건

7. 선전宣傳에 관한 건

8. 징계와 포상에 관한 건

9. 편집編輯에 관한 건

10. 학회學會 및 도서관圖書?에 관한 건

11. 고적古蹟과 보물寶物에 관한 건

12. 앞의 각호에 속한 통계의 조제調製와 문서보관의 건

제9조 재무부財務部의 주요한 사무는 아래와 같음

一. 원비院費 및 각 선원의 예산預算, 결산 및 지출에 관한 건

二. 회계장부 및 재산, 물품 등의 보관에 관한 건

三. 재단에 관한 건

四. 선원 및 승니 재산僧尼財産에 관한 건

五. 산림 및 토지에 관한 건

六. 영선營繕에 관한 건

七. 신도의 의무금義務金 및 특지손금特志損金에 관한 건

八. 소작小作에 관한 건

九. 앞의 각호에 속한 통계의 조제調製 및 문서보관에 관한 건38)

인용문은 <조선불교선종종무원원칙> 가운데 일부분이다. 우선 서무, 재무, 교화부를 두고 이사의 지휘 하에 종무(宗務)를 관리하였다. 이것은 1922년 창립한 선우공제회 본부의 조직과 사무를 계승한 것이다. 선우공제회 역시 본부를 선학원에 두고 사무집행을 위해 서무, 재무, 수도부의 이사 3인과 서기를 두었다.39) 또한 공제회 제반 사항을 의결키 위하여 공제회에 의사부(議事部)를 설치하였다. 이밖에 선우공제회의 유지 방침의 원칙이나 운영방침 등은 사단법인을 만들기 위한 준비였고, 급기야 1934년 재단법인 인가를 받아 선종 종무원이 그 운영과 관리를 계승한 것이다. 그 직무를 대체로 살펴보면 서무부는 종정을 비롯한 선의원과 원장, 이사, 선회원의 선거사무, 선회소집 등의 소임을 맡았고, 재무부는 선원의 예·결산, 선원과 승니, 재산 등 전국 선원과 재단법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주] -----

32) <布敎堂의 盛況>, 《매일신보》 1912. 5. 28.

33) 선학원(1986), <朝鮮佛敎禪學院本部創建上樑文>, 《禪學院略史》, 7쪽.

34) 老婆(1931), <禪學院日記抄要>, 《禪苑》, 28~29쪽.

35) <佛敎月旦>, 《佛敎》 제4호, 경성 : 불교사, 1924, 61쪽.

36) 오경후(2006), <선학원운동의 정신사적 기초>, 《선문화연구》 창간호, 한국불교선리연구원.

37) 禪宗中央宗務院(1935), 《朝鮮佛敎禪宗首座大會會錄》, 경성: 중앙인쇄소, 23~24쪽.

38) 禪宗中央宗務院(1935), <朝鮮佛敎禪宗宗務院原則>, 앞의 자료, 38~41쪽.

39) 삼보학회, 《韓國近世佛敎百年史》 제2권, 삼보학회, 1965, 9~16쪽.

선학원백년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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