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불교미술이 순수 회화로 확장된 예술 세계가 열린다.

갤러리 채율(대표 이정은)은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정윤영 작가의 11번째 개인전 ‘레이어드 컬러’를 전시한다.

정윤영 ‘유기적 두께’,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paper, 127×48cm, 2023.
정윤영 ‘유기적 두께’,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paper, 127×48cm, 2023.

정윤영은 불교미술과 서양 회화를 접목시킨 독특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학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졸업 후 1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식물을 통해 바라보는 생명력’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다. 석·박사 과정에서 서양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같은 평면 회화 작업일지라도 한국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고민을 깊이 있게 녹여내기 위해 조형 실험을 거듭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에서도 비단 겉면에 동양화 안료를 뭉근하게 녹이듯이 안착시키는 ‘스며듦’이라는 형식과 캔버스 표면에 서양화 안료를 축적하듯이 포개어 쌓아 올리는 ‘집적’의 형식을 함께 적용했다.

많은 이들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슬로건 아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융합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애쓰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전통을 단편적인 소재나 혹은 표피적인 재료로만 가져오거나 주제만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에 머물기도 한다.

정윤영 ‘유기적 두께’,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paper, 127×48cm, 2023.
정윤영 ‘유기적 두께’,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paper, 127×48cm, 2023.

정 작가는 전통 미술 전공자로서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해 왔다. 정 작가는 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좋은 질문은 때때로 좋은 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교 미술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 탓에 동시대 미술계에서 현대미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쌓아가는 데 장점도 있었고, 단점도 있었어요. 종교성을 벗어나 저는 전통이란 것이 단순히 ‘낡고 고루한 옛날의 것’이 아닌 ‘이어져 왔고, 이어져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통 불화의 기법과 현대적 서양 회화의 기법을 동시에 유지하면서도 전통이 가진 철학적인 시대성을 현대적인 색감의 추상 회화로 표현하고자 한 이번 전시 출품작들이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겠지요.”

정윤영 ‘유동하는 Oil’,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canvas 40×30cm, 2023.
정윤영 ‘유동하는 Oil’, water color, gouache, acrylic, pigment powder on silk layered canvas 40×30cm, 2023.

정 작가의 작품 안에는 고려 불화의 전통적인 채색기법인 배채법과 배접 방식을 서양 회화의 방식에 접목시켜 풀어낸 식물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식물이라는 존재와 작품을 만들어가는 시간 사이의 관계는 다층적인 색채의 겹으로 구성돼 있다. 색채의 중첩으로 만들어진 화면에는 이전에 남겨진 붓질이 스며들고 다음 것 위에 얹혀 이어지는 상태로서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남아있는 상태에 덧붙여지고, 지속되고 있는 과거이자 현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에 담긴 절개된 꽃의 단면, 잎의 줄기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와 색감이 서로 겹쳐지는 과정은 결국 생명의 지속성과 전통의 지속성을 함께 의미한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 화면에 부드럽게 스며든 색과 유기적인 형태, 식물의 줄기나 꽃의 단면을 연상시키는 작품, 식물의 외양 너머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생명력에 관한 사유 담은 30여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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