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의 첫 불교 작품 ‘진진묘(眞眞妙)’. 진진묘는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다.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 × 24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장욱진 화백의 첫 불교 작품 ‘진진묘(眞眞妙)’. 진진묘는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다.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 × 24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기의 생활은 자기만이 하며 자기의 생활을 그 누구의 생활과도 비교하지도 않았으며 때문에 창작 생활 이외에는 쓸데없는 부담밖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승려가 속세를 버렸다고 해서 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과 함께하여 그 뜻을 펴고자 하려는 또 하나의 생활이 책임 지워진 것과 같이 예술도 그렇듯 사는 방식임에 지나지 않으리라.” - 장욱진 <예술과 생활>, 《신동아》, 1967. 6.

장욱진 화백(1917~1990)은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 특히 불교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한, 한국미술사의 새 장을 연 화가로 평가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종달)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관장 이계영)은 9월 14일부터 내년 2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회고전에는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1920년대 학창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장욱진 화백이 6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 270여 점이 관객과 만난다.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는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 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반월(半月)·목(木)>(1963),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 작품을 살펴본다. 장 화백만의 독창적인 한국적 모더니즘이 창출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발상과 방법 :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에서는 ‘까치’, ‘나무’, ‘해와 달’ 등 장 화백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의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본다. 장 화백의 마지막 작품 <까치와 마을>(1990)과 한국전쟁 직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린 《국제신보》 <새울림> 삽화 56점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심우도, 1979, 종이에 먹, 66.5 × 43.4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심우도, 1979, 종이에 먹, 66.5 × 43.4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부 ‘진(眞) 진(眞) 묘(妙)’에서는 회화와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 화백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불교를 주제로 한 장 화백의 작품은 1970년대부터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경전의 도상을 그대로 빌려오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과 요소를 강조하고 변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교를 주제로 한 첫 작품인 <진진묘>(1970)와 해학성이 돋보이는 <심우도>(1979), <무제>(1979), 1975년 김철순과 협업했지만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목판화집 《Zen: Wisdom of Asia》를 별도 제작한 단행본 《선(禪) 아님이 있는가》 등이 공개된다.

이중 <진진묘>는 부인 이순경 여사의 초상이다. 장 화백이 직접 붙인 작품명 ‘진진묘’는 이 여사의 법명이다. 불교를 주제로 한 장 화백의 첫 작품이 부인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장 화백에게 ‘가족’은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존재이다. 동물을 그려도 ‘동물 가족’을 그렸던 장 화백은 소중한 인연이었던 가족과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다.

3부에서는 장 화백이 1970년대부터 그리기 시작한 먹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이 먹그림들은 장 화백의 간결하고도 응축된 작품들이 예술이라는 개념에서 ‘깨달음의 과정’이자 ‘깨달음의 표현’이었으며,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불교적 사상과 개념으로 추구된 ‘절제’와 ‘득도’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이번 회고전을 준비하며 일본에서 새로 발굴한 장 화백의 첫 가족 그림인 1955년 작 <가족>도 만나볼 수 있다.

닭과 아이.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3×31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닭과 아이.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3×31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4부 ‘네 번째 고백,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나무와 가족>(1982), <닭과 아이>(1990) 등 1970년대 이후 장 화백의 노년기 작품을 살펴본다.

장 화백은 평생 730여 점의 유화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8할에 이르는 580여 점이 그의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다. 이 시기 그의 그림은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시공간을 초월한 그의 말년 작들은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應無所住〕’ 모든 집착을 떠난 경지, 차별과 대립을 초월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상태인 《금강경》의 핵심 사상 ‘무상(無相)’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화백의 초기작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사물의 속성을 추출하여 본뜬 ‘추상(抽象)’의 작업 결과였다면, ‘무상(無相)’의 작업으로 이어진 그의 만년작들은 갈수록 깊어진 성찰과 내면세계가 생략과 압축, 시공간의 초월로 이어져 창출된 한국적 모더니즘의 결과물이다.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장 화백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도상과 이미지를 관찰하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을 도상으로 표현하는 디지털 기반 참여형 워크숍 ‘나의 진지한 고백’과 장 화백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보는 워크숍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 성인을 위한 작품 감상프로그램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10~20대 청년기, 30~50대 중·장년기, 60~70대 노년기로 재구성해 그가 추구했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돼 변모해 나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장욱진 예술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며, “장욱진의 조형 언어와 행적을 미술사적으로 규명함으로써, ‘동심 가득하고, 작고, 예쁜 그림’이라는 단편적인 평가를 넘은 장욱진 예술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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