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로금풍(體露金風)이 지나갔을 길을 달렸다. 만추(晩秋)의 바람에 번뇌와 망상이 나뭇잎 날리듯 사라진 채 정법만 온전히 들어났을 길이다. 그 길 끝자락에 지장선원(주지 덕정 스님)이 앉아 있다. 지장선원은 화암사(신흥사 말사)에서 10년 남짓 수행에 매진하던 원정 스님(1997년 열반)이 기도 도량을 서원하며 상자 스님들과 함께 지역 불자들의 후원을 받아 1984년 개원한 도량이다.

 

영동고속도로 현남IC를 빠져나와 속초 방향으로 달렸다. 지장선원은 양양군 양양읍에 앉아 점봉산(點鳳山)을 마주하고 있다. 양양[襄(오를 양), 陽(해양)] 즉, ‘해가 떠오른다’는 지역 이름 탓일까. 지장선원 가는 길은 겨울 초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관동대학 양양캠퍼스 정문이 보였다. 이제 지장선원과는 지근(至近) 거리다. 그렇게 많이 떠 있던 구름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어 불어온 한 줄기 바람, 산문에 들기 전 속세의 봇짐인 번뇌·애욕·탐욕을 버리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잠시 후 지장선원 표석이 보이더니, 이내 주차장과 함께 경내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한 여성 불자가 보였다.
지장선원은 완만한 평지가람이다. 단아한 연못 주변에 가지런히 쌓아 올린 축대를 기점으로 하단부와 상단부로 나누어졌다. 하단부에는 연못과 요사, 주차장 등이 있다. 연못 중앙에는 아기자기한 석탑을 세웠다. 그리고 상단부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무량수전이 오른편에, 최근 단청을 끝낸 염불전이 왼편에 앉아 있고, 대웅전 맞은편에 5층 석탑이 서있다.
대부분 ‘지장(地藏)’을 절 이름으로 사용할 경우, ‘지장전’이 있기 마련이고 또 관례적으로 ‘삼성각’ 혹은 ‘산신각’ 등이 있기 마련인데, 지장선원에는 그렇게 이름 지어진 전각이 없다. 오직 대웅전, 무량수전, 염불전만이 경내 상단부에 앉아 있을 뿐이다. 또 다섯 분의 아미타 부처님이 봉안된 반면 지장보살은 협시로만 대웅전에 모셔졌다.
덕정 스님(지장선원 주지)은 “은사 스님(원정 스님)은 기도·수행도량을 열겠다면 이곳에 터를 잡으셨고, 말년에는 사부대중과 함께 염불정진에 힘썼다”며 “은사 스님의 뜻을 받들어 다른 전각보다는 염불전이 절실했고, 또 대중 스님을 비롯해 신도들이 경내 어느 곳에서든 염불수행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아미타 부처님을 곳곳에 봉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지장선원은 덕정 스님의 은사 스님이 열반한 1997년부터 10년간 지장선원 사부대중의 정성이 모이고 모여 이룩된 것이다.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 단아함과 간결함에서 이곳 사부대중의 굳건한 신심을 느끼게 한다. 경내에 우뚝 서있는 5층 석탑 역시, 지장선원을 향한 어느 신도의 애틋함에 크게 감동 받은 어느 노(老) 거사의 희사로 2005년도에 세워졌다.
그러나 덕정 스님은 지장선원의 불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지장선원에 염불행자들이 가득하고, 염불도량으로 자리매김할 때가 불사의 성료 시점”이라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요사에 마련된 총 9개의 방에 염불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들이 주석하고, 온종일 그 스님들을 중심으로 염불행자의 정진이 계속될 때 지장선원의 불사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지장선원이 염불도량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은, 원정 스님이 대구 염불선원에 주석하셨던 수산 큰스님의 법문에 크게 깨치고, 염불행자를 서원하며, 강릉·양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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