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사 감로도(1890)의 풍속장면 가운데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데, 이번호에서는 그 중 ‘담배를 피우는 기생들과 희롱하는 선비들’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장면은 조선후기 풍속화 가운데 신윤복 작의 야금모행(夜禁冒行)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이 두 그림을 통해 중세 남성중심 사회의 사치노예였던 기생(妓生)들의 매춘 여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감로도의 풍속장면과 풍속화 야금모행에 등장하는 빨간 옷(홍의: 紅衣)을 입은 남자에 주목하도록 하자. 이 사람은 지금의 별정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별감이며, 그 중에서도 궁궐 안에서 소임을 맡았던 대전별감이다. 궁궐 내에서 임금의 비서 역할을 담당했으므로, 지금의 청와대 직원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후기 한양에서 대전별감은 신분상 중인(中人)에 해당하며, 대전별감이라는 공식적인 직업 외에 한양 기생들의 기부(妓夫: 기생 서방) 노릇을 했다.
야금모행의 장면을 해석해 본다면, 별감이 양반을 떠나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의를 입은 별감은 담뱃대를 물고 있는 기생을 관리하는 기부이다. 기부는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그날 밤을 손님에게 대여하였다. 이 그림은 고객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풍속화 야금모행을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감로도의 풍속장면 또한 별감이 등장하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기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희롱하는 장면이 아니라 기생들의 매춘 행위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 기생은 신분상 천민으로서, 모두 관에 소속된 관기(官妓)였다. 이들은 관기로서의 역할 이외에 기방(妓房)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때 기방의 운영권을 갖고 있던 존재가 다름 아닌 별감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기부(妓夫) 즉 기생 서방 혹은 기둥서방이라 부르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TV사극에 나오는 기방을 떠올리며, 조선후기 기방이 꽤나 화려했을 것으로 상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기방에는 1명의 기생만이 있었고, 이에 기생의 이름을 따서 기방의 이름을 지었다. 난홍이집, 산홍이집 등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TV사극에 등장하는 기방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권번(券番: 요정)의 모습들이다. 즉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 통치에 의해 이식된 ‘일본식 게이샤 문화’이며, 우리는 마치 그것이 조선후기 기방의 풍경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 기방에서는 술을 마시고 기생의 노래를 들으며 노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다면 매춘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풍속화 야금모행에서와 같이 기방 밖에서 행해졌다. 기생은 남성중심 사회의 산물이며, 사치노예이다. 지금까지 사치노예가 없었던 시대는 없었고, 사치노예의 절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기녀제도는 중세사회의 남녀불평등이란 근원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기생이 제공하는 향응의 종류는 표면적으로는 춤과 노래이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가장 갈구하는 것은 성(性)이었다. 우리가 살펴본 야금모행과 감로도의 풍속장면은 바로 ‘성’의 매매 현장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매춘의 문제에 대해 말해줄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왜일까? 매춘은 존재했으되, 매춘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야금모행을 그린 혜원 신윤복은 비속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이는 곧 그가 바로 그 금기를 건드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교문화의 표상이었던 조선후기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욕(人慾)의 돌파구를 삼았던 것을 아닐까.

 

김문경 | 前 백양사박물관 학예연구원, 97do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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