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찰총서》는 1993년부터 14년에 걸쳐 총 21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다. 이 작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 신대현이란 이름 석자. 신대현은 20여 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샅샅이 뒤졌다. 1천여 곳의 사찰은 물론 폐사지도 둘러 보았다. 사찰연구가를 꼽을 때 첫 번째로 거명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 신대현이다. 그는 사찰에 대해서는 달인이다. 《전통사찰통서》 뿐이 아니다. 그는 《한국의 사찰현판》 《한국의 사리장엄》《한국의 옥기 공예》 등 절집과 관련된 대부분의 분야를 연구하고 집필한 전문가다.

신대현이 또 한권의 사찰이야기를 펴냈다. 20여년 바지런히 돌아다니고 연구한 결과다. 《우리 절을 찾아서-역사 속의 우리 사찰 이야기》는 ‘불교 기행’으로 분류된다. 근데 이 책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로 출간된 책들과는 뭔가 읽는 맛이 다르다.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신대현은 관촉사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관촉사 불상은 두 가지 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우선 거대한 크기이다. …또 하나는 신체비례의 파격이다. …신라불상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섬세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신라에 비해 조각 면에서 현저하게 퇴보한 결정적 증거로 즐겨 인용되곤 한다. … 고려의 불상을 자세히 보라. 비까번쩍한 ‘꽃미남’은 아니지만 준수하고 튼실한 장년의 정겨운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비좁은 법당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사람들이 격의 없이 바라봄으로써 부처님의 덕을 느껴보라는 의미다. 그러려면 불상을 팔등신 미인마냥 조각해서는 안된다.…관촉사 불상은 고려 불교조각이 퇴보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불교사 더욱 대중화되어 갔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신대현의 눈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정감이 넘친 따스함으로 사찰의 구석구석을 훑고, 파묻힌 이야기를 끄집어 내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 배열한다.

신대현이 보는 사찰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주변 경관이 멋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많아야 한다. 건축물이나 그림, 조각 등에서 미적인 기준을 넉넉히 충족하는 ‘작품’이 많다는 건 그 사찰의 격을 높이는 전제조건이다. 두 번째로 그 절에서 머물렀던 인물 중 수행과 교화에 남달랐던 분들이 많으면 이 역시 사찰의 아름다움에 한 층 격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사찰의 역사가 한국불교사(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에)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일 터다.” 아름다운 사찰의 기준이 바로 세워지도록 돕는 글이다. 외명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사찰의 활동성까지 꿰뚫은 지적은 누구나 고개 끄덕여진다.

“(내소사의) 마당은 전부 5단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 각 단마다 축대가 아주 나지막하고 겸손한 사람마냥 얌전히 쌓여 있어 사람들은 마치 계단을 하나 밟고 올라가듯이 쉽게 넘어가면서도 자신이 어느새 대웅전 앞에까지 화 있다는 것을 잘 알아 차리지 못한다.”

신대현이 찾아낸 사찰의 이야기는 주목하지 않았던 사소한 것, 아니 읽어내지 못한 것을 찾아낸 즐거움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사찰의 문화, 우리 문화가 절집 내 공간에 숨겨졌음을 읽어내 전하는 그가 부럽다.

그의 상상력의 진가는 역사에 대한 그의 꿈과 맞닿아 있어 보인다. “장구한 역사 중에는 역사와 신화가 한데 섞여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역사는 지혜를, 신화는 꿈을 선사한다. 이 둘이 서로 대립되는 불편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신화와 역사를 굳이 구분해서 나누려는 것도 사람들의 얄팍한 앎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사천왕사지에는 당군을 격파하기 위한 방책과 전술을 연구하던 기구, 일종의 국방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 … 신라는 사신이 사천왕사에 가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래서 사천왕사 맞은 편 자리에 급히 절을 짓고 여기를 사천왕사라고 거짓으로 둘러대기도 했던 것이다. (이 절은 나중에 망덕사가 된다.) 사천왕사를 보여주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설치된 비밀기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는 따끔한 지적은 그의 불교, 사찰 사랑이 묻어난다. “사학계에서 말하는 바, 개태사나 관촉사 모두 후백제를 멸망시킨 위업을 기념하기 위한 사찰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얼마나 해괴한 주장인가. …무엇보다도 그런 파괴의 정서에 자비를 퇴고 가치로 내건 불교가 나섰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상대에 대한 살육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적 대찰을 지었다는 주장이 정설인 양 통용되고 있는 게 작금의 학계다. 이런 몰염치하고 비이성적인 해석을 교과서에 실어서는 안 된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내려온 천년 고찰 48곳을 통해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를 소개한다. 신라를 대표하는 경주 사천왕사로 부터 강릉 굴산사지, 영광 불갑사, 보은 법주사, 여주 신륵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의 아름다운 사찰과 그 이유를 설명하고,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놓는다.

《우리 절을 찾아서》는 신대현의 풍부한 감정이입으로 엮어진 불교현장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이야기로 봐도 되겠다. 《우리 절을 찾아서》은 꼭 봐야 하겠다. 사찰야기를 이렇게 쓸 만한 인물이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가 널리 읽혔지만, 불교 사찰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우리 절을 찾아서》은 유 교수의 답사기 보다 더 재미있고 풍부한 우리 절집이야기다.

신대현/도서출판 혜안/15,000원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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