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군수리 사지 중문 기단석 근경. 사진 제공 문화재청.
부여 군수리 사지 중문 기단석 근경. 사진 제공 문화재청.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백제시대에 조성된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석이 새롭게 확인됐다. 특히 중문 기단석은 부여지역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가구식 기단의 부재인 것으로 추정돼 백제사찰 중문 복원의 기초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12월 14일 보도자료를 내 “부여 군수리 사지를 발굴 조사하던 중 군수리 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문지와 남회랑지의 기단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수리 사지는 1935년부터 이듬해까지 이루어진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발굴조사 때 금동제 불상과 기와, 전돌 등이 출토되면서 백제사찰지임이 밝혀졌다. 이후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011년도 등 두 차례 금당지와 목탑지, 동편 일대를 발굴조사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목탑지 남쪽에서 발견된 기와무더기 인근을 중문지로 추정했을 뿐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이번 조사에서 중문지는 목탑지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서 확인됐다. 이곳에서는 기단석과 기와무더기가 발굴됐다. 중문지 기단석은 중문 남동쪽 모서리에 놓였던 것으로, ‘ㄱ’자 형태로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地臺石)이다. 발굴조사팀은 발굴된 기단석 윗면에 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서리 기둥석〔隅柱石〕을 끼우고 그 위에 갑석을 얹은 가구식(架構式)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중문의 전체 규모는 동서 약 14m로 추정했다.

부여 군수리 사지 중문지와 남회랑지 전경. 사진 제공 문화재청.
부여 군수리 사지 중문지와 남회랑지 전경. 사진 제공 문화재청.

남회랑지에서도 남쪽에 놓였던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 일부를 확인했다. 회랑은 중문 동쪽으로 10m 정도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했는데, 기단의 폭은 중문보다 좁았다.

목탑과 금당의 기단이 벽돌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쌓아서 조성한 것인데 반해 중문과 남회랑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 기단이다. 중문과 남회랑 서쪽 기단은 사찰이 폐사된 후 개설된 백제시대 도로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사지 정비·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백제 사비기 사찰문화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군수리 사지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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