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근대 통도사의 선승(禪僧)이자 시승(詩僧)이었던 구하 천보(九河 天輔, 1872∼1965) 스님이 1932년 4월 7일 통도사를 출발해 8월 28일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간의 행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여행록(旅行錄) 혹은 관상록(觀賞錄)이다. 물금역을 출발해 서울역을 거쳐 철도편으로 금강산으로 간 스님은 장안사에 머물며 금강산을 꼼꼼히 기록했다.

경승 유람으로 일관한 유학자들의 기록과는 달리, 이 책은 수행자의 시각에서 금강산을 수행의 근원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의 본문 격인 ‘금강산 가는 길과 볼거리〔金剛山路程及觀賞〕’는 크게 노정(路程)과 관상시(觀賞詩)로 나뉜다. 노정에는 통도사에서 출발해 금강산 장안사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과 금강산에서의 관상, 귀로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스님은 특히 금강산 내 각 사찰에 대해 관련 이야기, 구조와 정취, 소장 유물과 부속 암자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금강산 곳곳을 수행자의 눈으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묘사했다.

관상시에는 금강산에서 본 선인들의 관상시와 이에 화답한 스님의 시가 들어 있다. 스님은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금강산 곳곳의 자연환경을 찬탄했다. 승가의 일상적 모습과 사찰의 고요한 정취 등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관상시는 조선불교 시승의 맥을 이은 스님의 풍부한 시학과 한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난다. 이 시들은 “근대 승려의 시문 창작과 활용 방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근대 한문학의 자취를 이어 줄 소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하 스님은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끈 고승이다. 13세가 되던 1884년 천성산 내원사로 출가한 스님은 1886년 경월 도일(慶月 道一)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899년 통도사에서 수선 안거를 시작했고, 내외 경전을 두루 섭렵했다.

1908년 명신학교, 1932년 입정상업학교(지금의 부산 해동고등학교), 1934년 통도중학교(지금의 보광중학교)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10년부터 15년간 통도사 주지를 맡아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끌었다. 임시 정부에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등 불교계 독립 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행적을 남겼다.

최두헌 옮김 | 지만지한국문학 | 290쪽 | 2만 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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