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 참 아름답고
그대는 홀로 어디로 떠나 돌아보지 못하나
봄이 오니 산 밭에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니
꽃벌 인연은 한번 만나고 한번은 이별이라네
안타깝구나 화려하던 꽃 바람에 나뒹굴고
우습다 뜬구름 같은 인생 무엇을 집착하랴

탐진치 삼독은 주야로 흐르는 눈물과 같으니
사바세계 부처님은 자비로운 깊은 마음일세
산 깊은밤 소나무가지 부엉이 눈크게 뜨고
삼경종 울리니 초승달은 살며시 얼굴 감추네
알지 못해 꿈 속 님을 걸음마다 그리워하고
아미타아미타 부처님이시여 그쪽가면 무엇이 즐거운가요
향기로운 이슬에 우담바라 꽃송이 활짝 피었네

- 함현 스님의 <우담바라 꽃송이 활짝 피었네>

함현 스님.
함현 스님.

수좌 함현 스님(서울 도솔선원 주지)이 선배 수좌인 연관 스님(1949~2022)을 보내며 쓴 <우담바라 꽃송이 활짝 피었네>이다. 스님은 이 글에 곡을 붙였다.

조계종 도솔선원 무디따 합창단은 다음달 3일 오후 6시 은평문화예술관에서 이 곡 등 17곡의 함현 스님 노래를 발표한다. 무디따(Mudita)는 ‘함께 기뻐하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이다.

함현 스님의 노랫말 짓기는 이번이 처음 아니다. 스님이 문경 봉암사 주지를 지낸 후 청주 관음사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다. 써서 걸었던 글을 본 작곡가 추천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스님이 작사한 20곡의 노래를 담은 음반 <천년의 향기>를 출시했다. 2020년에는 음반 <무디따>를 펴냈다. 스님은 지금까지 70여 곡을 만들었다. 찬불가 보급을 통한 포교를 위해 도솔불교합창대회도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 개최했다.

스님은 “40여 년 전 출가 후 최근까지 참선수행을 했다. 염불수행을 발심하고 지난 겨울 도심 포교원인 도솔선원에서 ‘무문관’ 폐관정진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스님은 도솔선원 내 수평 남짓 거처를 걸어 잠그고 안거 수행을 했다. 매일을 스스로 가둔 공간에서 참선과 염불에 매진했다. 스님은 연관 스님의 임종을 함께 하면서 염불수행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했다.

“연관 스님은 의식을 잃은 가운데 염불소리가 들리자 입을 움직이며 함께 ‘아미타불’을 염했다. 연관 스님은 염불을 하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갔다. 여느 선지식 못지않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떠올렸다.

스님의 신곡 <우담바라 꽃송이 활짝 피었네>는 연관 스님을 보낸 그날 밤 쓰였다.

수좌 중에도 구참으로 꼽히는 스님은 “나는 염불승”이라고 했다. 정토경전을 독송하고 행주좌와 쉼 없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포교원인 도솔선원을 개원한 것도, 글을 써 곡을 붙여 찬불가를 만든 것도, 신도들로 합창단을 운영하는 것 등 모두 부처님 제자로서 밥값을 하기 위한 일”이라고 했다. 스님은 “(수좌인) 내가 염불을 한다니까 이제는 ‘함현이 놀지 않고 수행한다’면서 도반들도 좋아한다”며 웃었다.

한편, 중국 선종 가운데 법안종 영명 연수(904~975) 선사는 “참선만 하고 정토수행을 하지 않으면 열에 아홉은 길을 잃는다. 중음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 그것을 따라가리라”고 했다. 선사는 “참선도 하고 염불수행도 했다면 ‘뿔까지 달린 호랑이’와 같다”고도 했다

함현 스님은 “저출산으로 인구가 주는데다가 탈종교화로 점점 불자가 줄고 있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부처님 법을 만나고 출가를 한 것인데”라고 했다. 이어서 “내가 부처님 밥을 먹고 살면서 손 놓을 수는 없지 않느냐? 스님들이 더 열심히 포교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포교방법으로 사찰 합창단 운영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합창단을 운영하면 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청주 관음사 주지 소임을 하면서 경험했다고 했다. 스님은 “불자가 아니라도 노래하러 절에 오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불교음악인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노래 잘하는 사람 찾기가 힘들다. 불교계 안에서 밥벌이가 안 되니 음악인들이 이직을 타종교로 한다”고 했다. 이어서 “합창단 운영은 당연히 돈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스님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 있다. 대형사찰에서 불교음악인을 키워야 한다. 여력이 된다면 불교 혼성 중창단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세수 고희 즈음인 스님은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이제 그만 쉬시고 기도나 하시라’ 권유를 받고 있지만 ‘(합창단 운영 등) 100살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이제 70여 곡 만들었는데 108곡까지는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스님은 “1980년대 중반까지 사중 살림이 어려웠다. 봉암사 주지가 쌀을 구하러 다니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사찰들이 2000년대 호황을 맞았다. 이후 저출산 탈종교화로 절집이 다시 어려움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집마다 애도 없고 그나마 하나 낳더라도 종교가 없다. 스님들은 뭘 하고 있나. 스님들이 포교할 고민을 않는 것 같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불교계 기자도 20년만 지나면 취재거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평생을 선방 등 산중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다. 다른 스님들이 ‘밥도 못 끓여 먹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도솔선원 개원한 지 3년이 됐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도솔선원 무디따 합창단은 다음달 3일 찬불가 신곡발표회 주제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희망의 노래’로 정했다. 도솔선원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상자와 유가족 등 우리 사회의 빠른 쾌유와 위로의 의미를 담아 ‘함께 아파하자’는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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