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7일 평양 법운암에서 열린 ‘남북 공동단청 및 개금불사 입재법회’. 사진 출처 《평불협 20년 자료집》(2012년).
2003년 8월 7일 평양 법운암에서 열린 ‘남북 공동단청 및 개금불사 입재법회’. 사진 출처 《평불협 20년 자료집》(2012년).

“단청, 붉고 푸른 옷을 입히다”

단청(丹靑)은 ‘붉고 푸른 그림’이란 뜻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그린 문양, 또는 그러한 문양으로 의장하는 일을 일컫는다.

불교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김성동의 1978년 작 중편소설 <만다라>에는 “대웅전 처마 끝의 금박 단청이 눈부시다.”라는 표현이 있다. 궁궐이나 사찰 등 목조건축물에 그려진 화려한 단청에는 근대까지 천연안료를 주로 썼지만, 요즘 단청 공사에는 화학물감인 ‘에메랄드그린〔洋綠〕’이 쓰이기도 한다. 서양에서 온 녹색이라 하여 양록으로도 불리는 에메랄드그린을 사용하면, 초록색이 쨍하게 느껴질 정도로 칠감이 눈부시다.

목조 건축물에 단청을 하는 것은 크게 건물의 미화적 측면과 목재 부식 등을 방지하는 내구적 효과에 목적이 있다.

단청은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다섯 가지 채색 방식이 있다. 가칠단청과 긋기단청, 부재 끝부분에만 머리초 문양을 장식하는 모로단청(머리단청), 금문이나 당초문을 얼기설기 넣은 얼금단청(금모로단청), 비단에 수를 놓듯 모든 부재를 여러 문양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고 금박 도금줄을 넣는 금단청 등이다.

북측의 단청 문화는 분단으로 1950년대에 단절됐다. 남측과 달리 북측의 평양은 한국전쟁 때 90% 넘게 파괴되어 다시 건설된 뒤 회색빛 도시로 변했다. 2013년 이후 평양의 콘크리트 도시 건물들은 대규모 도색작업을 통해 탈바꿈됐다. 그 후 평양을 방문한 남측의 아무개 기자가 칠 작업이 덜된 건물들을 가리키며 “뒤쪽에는 칠을 안 했습니까?”라고 북측 해설봉사원에게 질문하니, “기자 선생은 넥타이를 등 뒤에도 맵니까.”라고 반문하여 폭소를 자아낸 바 있다.

평양의 인민대학습당, 만수대의사당, 인민문화궁전, 금수산 태양궁전, 평양대극장, 국가선물관, 옥류관, 흥부초대소, 주체탑, 개선문, 릉라도경기장, 묘향산의 제1, 2 국제친선전람관 등 북측의 기념비적 건물과 조형물들은 석재와 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하여 건립됐다. 특히 묘향산의 제1 국제친선전람관과 보현사 만세루, 평양 동명왕릉 전시관(재실), 정릉사, 광법사, 대성산성 남문, 개성 영통사, 강원도 고산군 석왕사 대웅전, 통천군 용추사 대웅전 등은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은 대규모 조선식(한옥) 건물로, 채색(단청)한 것이 유명하다.

‘북조선의 색’으로 불리는 단청은 2003년 8월 ‘남북(북남) 공동시범 단청사업’으로 본격화됐다. 남북교류에서 가장 종교적인 사례로, 불교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첫 문화교류로 꼽힌다. 그때의 남북 교류 현황과 주요한 내용을 살펴본다.

조선의 빛깔을 찾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열린 남북교류에서 2003년은 남북불교 교류 최고의 한 해였다. 남북 공동 단청불사 작업을 비롯하여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과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에 관한 협의서 체결, 6·15와 8·15 및 10·3 남북 공동 행사, 홍가사(紅袈裟) 지원 등 가장 불교적인 내용의 교류가 진행됐다.

특히 남북 공동 단청불사 사업은 기존의 교류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일회성 교류의 범위에서 벗어나 장기체류방식의 기술 협력과 안료(물감)·인적 교류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교류가 추진되기까지는 신법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이하 평불협) 회장과 양산 조계종 사회부장, 학담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 상임집행위원장, 도각 조계종 남북교류위원장 등 남측 인사들과 조선불교도련맹(이하 조불련)의 황병대 부위원장, 심상련 서기장 등 북측 인사,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들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남북 공동 단청불사 사업은 2002년 2월 초 금강산에서 열린 금강산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 남북불교회의에서 상정된 첫 의제였다. 그해 8월 26일 조불련은 남측 민추본에 ‘사찰 및 민족문화재 단청사업’을 위한 재료 지원 및 기술교류를 제안했다. 또 10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민추본, 평불협 대표단이 조불련과 회동해 북측 59개 사찰에 대한 단청재료 지원과 기술교류에 대해 협의했다. 이때 황병준 조불련 부위원장은 “북과 남이 합심하여 민족문화재인 사찰을 조선의 색으로 다시 입히는 것은 역사적인 불교 사업인 동시에 조국통일을 앞당기고, 6·15 공동선언의 리행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평양 법운암을 시범사찰로 지정하고, 처음 단청작업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11월 26일부터 12월 3일까지 평불협 대표단이 방북해 조불련과 북한사찰 단청불사 추진 및 개금불사에 대해 합의했다. 이후 12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조불련 대표단(황병준 부위원장, 한성기 국제부장)과 조계종 총무원(양산 사회부장, 지일 사회국장)이 북측 59개 사찰과 민족문화재에 대한 단청불사 추진에 관한 합의서를 최종 체결하면서 남북 공동 단청불사 사업이 성사됐다.

2003년 2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조불련과 남측의 민추본, 평불협 대표단이 단청불사에 대해 세부사항을 협의했고, 이어 3월 초 국내에서 민추본과 평불협이 공동사업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 그해 3월 11일부터 15일까지 학담 민추본 상임집행위원장을 단장으로 법경 민추본 사무처장,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6명의 실사단을 파견해 북한사찰과 문화재에 대한 단청 현황조사 및 실행 합의서를 체결했다. 4월 1일 신법타, 학담, 미산 등은 남측의 단청불사추진위원회 구성에 관해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를 공식화했다. 이어 5월 27일 북한사찰 단청불사를 위한 단청안료 및 도구 1차 지원을 추진하고, 6월 5일 통일부에 북한사찰 단청불사 협력사업 사업자 및 사업 승인을 받았다. 그해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호텔에서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학술 토론회’를 가졌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때에 시작한 조선의 빛깔 찾기는 2003년 8월 7일 오전 11시 평양시 룡악산 법운암에서 ‘북남(남북) 공동 단청 및 개금불사 입재 법회’로 본격화됐다.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의 사회와 리영호 책임부원의 집전으로 진행된 입재 법회에는 남측 대표단과 조불련 임원, 사찰 주지, 평양시 불자 등 사부대중 130여 명이 참여했다. 내각 직속의 문화보존지도국 리의화 부국장(차관급)이 인사말을 한데 이어, 남측 공동대표 신법타 평불협 회장이 “지금은 비록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민족문화의 온전한 계승과 발전이 제약되어 있지만, 남측에 있는 문화재도, 북측에 있는 문화재도 모두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남북 공동 단청불사 협력사업을 시작으로 남북불교계가 앞장서 문화적 측면은 물론이고, 남북불교 교류 활성화에 기여해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길을 앞당기자.”라고 축사를 했다.

이날 법운암 입재 법회에는 북측에서 리의화 문화보존지도국 부국장, 황병준 조불련 부위원장,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 한성기 조불련 국제부장,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 정영호 조불련 교육부장, 평양시 불자 등이, 남측에서 학담 민추본 집행위원장, 미산 조계종 사회부장, 도후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석왕사 주지, 설송 희방사 주지, 혜자 도선사 주지, 장곡 선본사 주지, 김준웅 단청장, 박영석 단청기술자, 정인악 평불협 이사장, 임대윤 대구시 동구청장, 주호영 변호사, 이준성 삼화페인트 과장, 이환래 민추본 기획홍보국장, 주준하 평불협 학생대표, 김성호·김헌영·김성룡 개금전문가 등이 참가했다.

평양 법운암에 대한 남북 공동 단청불사 시범사업은 김성룡 단청수리기술자 등 남측 6명과 북측 만수대창작사 소속의 화가와 노무인력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2003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됐다. 이들은 불상 개금불사도 함께 진행했다. 그 후 북측 문화보존지도국의 지도 하에, 조불련과 해당 사찰, 각 시·도 인민위원회는 단청작업 대상 사찰에 대해 2008년까지 보수와 수리, 단청작업을 수행했다.

조선의 빛깔로 덮다

2003년 10월 3일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에서는 특별한 불교행사가 열렸다. 남측 평불협에서 보현사와 평양 광법사에 붉은 가사(紅袈裟) 100벌을 전달했다. 이날 신법타 평불협 회장은 홍가사를 불단에 올린 다음, 청운 최형민 보현사 주지에게 전달했다. 1991년 10월 30일 미국 LA 관음사 보현회가 조불련에 홍가사 100벌을 전달한 이후, 두 번째 가사 전달이었다.

‘금강산의 붉은 승려’가 근세기의 상징이었다면, 2003년 10월 보현사에서 전달한 홍가사는 북측 붉은 승려의 상징이 됐다. 묘향산 용주봉의 사리탑과 팔만대장경보존고, 그리고 붉은 승려 등 북한 삼보사찰의 위상을 가진 보현사 법당은 조선의 빛깔로 가득 채워졌다.

그해 6·15 민족통일대축전 3돌 남북 공동 행사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의 유행으로 남과 북에서 따로 열렸다. 하지만 8·15 민족대회는 남측 대표단 340명이 평양을 방문한 가운데 열렸다. 8월 17일 불교는 평양 광법사, 기독교는 평양 봉수교회, 천주교는 평양 장충성당, 천도교는 평양 청우당에서 각각 남북 공동으로 예식을 진행했다. 8월 21일에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 남과 북의 대표선수들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동시 입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동시 입장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간 남북교류에 있어 보조역할에 만족했던 불교계가 이 시기부터 선봉에 나서게 됐다. 2003년 1월 14일 남측 조계종과 조불련이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에 대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 교환하였으며, 11월 9일부터 23일까지 금강산 신계사 터에 대한 남북 공동 시·발굴조사를 처음으로 진행했다. 또 2월 27일 남측 천태종은 북측과 개성 영통사 복원에 관한 약정에 합의하는 등 본격적으로 북녘 사찰의 복원 시대가 개막됐다.

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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