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은 산속에 있다’는 진부하지만 일반화된 인식은 역사 속에서 불교가 겪어온 우여곡절의 편린이다. 신라 말 도참설(圖讖說)이 대두된 이래, 풍수·지리적 근거 틀 속에서 사찰은 심산구곡으로 파고 들어갔다. 고려시대의 사찰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풍수·지리적 근거를 존중하였고, 고려를 이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역대로 탄압을 겪으며 더욱 깊은 산중에 은익 함으로써 불교사찰은 산중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사찰은 숲이 우거진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이 고착되어왔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산중의 사찰은 신앙과 더불어 다방면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며 정착되었다. 경사가 완만한 널찍한 산중에 터를 잡고 사정에 따라 규모를 늘리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하면서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공간을 향유해왔다.
일주문을 통해 일단 진입하면 불교계에 입성한 것이며, 그 영역 내에서 다양한 예불대상과 교리를 접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미타전의 아미타불, 명부전의 지장보살, 원통전의 관음보살, 응진전의 나한신앙, 여기에 신중, 칠성 · 산신 · 독성의 성속(聖俗) 복합신앙까지 불교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경건한 신앙심을 북돋우고, 불교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신비감과 더불어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신행(信行)을 위해 찾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절문을 나서게 한다. 이처럼 자연 속에 어우러진 불교사찰은 한국인 전통정서로 자리 잡음으로써 우리나라 산하山河의 일부로 착각될 정도이다.

교리를 바탕으로 한 구조체계 외에 사람들의 정서를 감화시키는 요소들은 불교사찰이 지니는 별미이다. 한 사찰은 지고한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여기에 걸 맞는 오랜 유물 · 유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림잡아 수백 년은 된 듯 한 불단과 불상, 불화, 다양한 불교공예품들은 그간의 손때를 그대로 간직한 채 맞이하며, 이를 대하는 사람들 태도 역시 마치 신앙의 일부인양 경건하다.
웅장한 목조건축은 물론, 사찰 내 요모조모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주변의 자연환경도 그렇거니와, 자연과 매 시대 유행을 달리하면서 당시로서 문명의 이기랄 수 있는 것들이 스님들의 재치와 어우러져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곳곳의 멋스러운 조경이라든가, 대웅전 앞뜰과 우물 주변에 옹기종기 얹어놓은 돌들과 이름도 모를 들꽃들이 앙증맞게 갖춘 모양새, 자연조건에 순응한 가운데 발휘한 소박한 재치는 아! 하는 감탄사를 절로 연발시킨다.
초의의순 스님의 다도(茶道)도 이러한 환경에서의 일상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소이(所以)이며, 낭만이었다. 불교사찰은 이처럼 소소한 즐거움과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이렇듯 불교사찰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갖가지를 향유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요구된다. 우리가 접하고자 하는 불교사찰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일정을 세우고 장거리를 왕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다보니 계획은 자연스레 다음 기회로 미뤄진다. 신행을 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사찰방문은 부담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불교사찰들이 상당수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간혹 전통사찰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목조의 한옥양식을 답습한 사찰건물이 들어서기도 하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부득이 상가형태의 건물 층간에 세를 내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구색을 갖추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고 제약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공간이다 보니 삭막한 경우가 허다하다. 도심의 콘크리트 벽체를 두른 사각형 구조의 사찰은 왠지 어색하고 낯설며, 불교사찰이 지닌 기존의 장점은 퇴색하고, 어색하고 어설픈 자태로 사람들에게 생경함을 줄뿐이다. 이러한 시선을 의식하여 포교당 형식의 소규모로 설립되거나 또는 시내 외곽에 신설되는 정도로 포교활동이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성은 결국 고래의 전통과 인식에 안주하여 포교적인 측면을 소홀히 했다는 책임소재가 따른다. 새삼스럽지만 불교 교단의 발전을 위한 자성이 요구된다. 주어진 여건 내에서 불교사찰이 지닌 장점을 살리고 새로운 시스템 개발을 통해 신도들이 용이하게 신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를 위한 다각적인 공간 활용 방안의 강구가 절실하다. 이러한 고민은 변화하는 시대에 불교가 어떻게 교단을 유지하고 성장을 도모할 것인가에 대한 원천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우선 현대인들의 생활 면면을 살피고, 신도들의 신행에 일차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