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동아시아에 속한다. 동아시아는 아시아의 동쪽, 한반도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등이 속해있다.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공업국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성장했고,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들이 가장 많이 위치해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분모는 한자, 대승불교, 선불교, 유교와 성리학, 도교, 율령제도 등이다. 이중에서도 불교는 동아시아 문화의 근본이 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동아시아에서의 불교, 아니 불교가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다.

석길암 금강대학교 HK교수가 쓴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불교에 의해 불교에 의한 불교를 위한 동아시아 문화와 문화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천착했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불교저널〉에 1년간 연재한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의 원고를 뼈대로 살을 더했다. 연재와 더불어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학술진흥재단 지원을 받는 등 기획력과 성과를 평가받은 성과물이다.

석길암은 이 책을 기획하면서 불교가 만들어낸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석길암은 불교가 흥할 때, 불교문화가 대중과 밀접했을 때 사회정치 문화가 발전해 나라가 강성해지고, 유교를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정치가 발전했을 때 나라의 기운이 쇠락하는 것을 확인했다.

석길암은 동아시아를 접근하는 방법으로 지역적 개념 보다는 문화적 개념을 중시했다.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를 보여주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골 사람들은 그 의미를 다안다. 나라마다 읽는 방법은 다르지만 뜻은 하나로 인식한다. 또 동아시아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권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당나라 때 번성한 대승불교 문화는 국력과 문화적 파워를 바탕으로 주변 지역에 전파하고, 결국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했다. 그 문화는 현재도 형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북방으로 전파된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했을 무렵,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문화적 개념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중국의 통일왕조에서 낙양과 장안을 기점으로 불교는 점파되었고, 불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문화적 종합체의 성격을 띤 종교로서 전파되었다. 붕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 지역은 불교를 수용하면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또 불교의 변형을 촉진했다. 기원전후에 시작한 불교의 전파는 11세기에 들어서야 일단락하고 동아시아를 전반적으로 변모시켰다. 그 결과는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를 탄생으로 이어졌다.

동아시아 불교문화 네트워크는 한자와 함께 이루어졌다. 한자와 접합된 불교는 동아시아라는 문화, 동아시아라는 사상, 동아시아라는 사회를 하나로 묶었고, 이 둘은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 같은 것이었다.

불교의 중국 유입은 단순한 종교 유입이 아닌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의 이질적 두 문화의 만남이자 융ㅎ화의 과정이었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출발점이었다. 선종과 성리학의 발생이 그러하듯이 동아시아 문화의 대부분은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에서 기인한다. 인쇄술의 발전이나 다양한 보살신앙의 양상 역시 그렇다. 의례와 예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석길암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현상의 원인을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 불교와의 만남을 계기로 형성된 동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석길암은 불교가 전파되면서 동아시아에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변용에 집중한다. 기원 전후에 전래된 불경이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 즉 역경이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핀다. 또 역경승과 구법승이 단순한 종교적 구도자가 아니라 인도와 중국 두 문화를 통합하는 문화 사절이었고, 최신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를 이용해 만든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해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였음에도 왜 서양과 같은 인쇄혁명이 우리나라에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서 동아시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는지, 출가수행자가 탁발을 해서 음식을 얻도록 한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불교의 숨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해석하고 전달한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학술서일 것 같지만 학술서는 아니다. 대중들이 요구하는, 불교를 새롭게 바라보는 측면의 실용서이다. 학술서과 대중서의 경계에서 문화적 접근으로 불교와 동아시아 역사를 훑어 알려지지 않은 불교의 가치를 재발견토록 안내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괜찮겠다. 목차를 보고 가장 눈에 띠는 주제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다. ‘역경이 세상을 바꾸다’, ‘동아시아 인쇄문화와 불교’, ‘보살을 방편을 상징하고 나한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오 마이 갓 그리고 시껍했네’ 등등 주제는 개별적이면서 이어지고, 따로 봐도 좋고 연이어 봐도 좋겠다.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는 불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리게 한다는 데서 의미 있는 책이다. 현대 우리가 믿는 관음신앙 등 보살신앙이 나놀 수밖에 없던 동아시아 사회문화의 역사, 불교가 사회발전에 미친 영향, 인도에서 거의 사라진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올 수 있었던 힘, 아무도 몰랐던 불교의 가려진 이야기들을 캐낸 지은이의 내공이 느껴진다.

◎석길암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원효 대사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한국불교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2006년 제21회 불이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및 「불교평론」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원효의 보법화엄사상연구」(박사학위논문), 「금강삼매경의 성립과 유통에 관한 연구」, 「지눌의 돈오와 점수에 대한 화엄성기론적 해석」, 「대승기신론 지론종 찬술설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석길암/불광출판사/15,000원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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