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로 승격이 예고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사진 제공 문화재청.
국보로 승격이 예고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사진 제공 문화재청.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5월 3일 밝혔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고려 후기 금동약사불상으로는 유일하다. 단아하고 정제된 당시 조각 경향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 불상 중 예술적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고려 후기 불상 중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정확히 보여줄 뿐 아니라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 비례감이 알맞은 신체, 섬세한 의복의 장식 표현 등 14세기 불상조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불상과 함께 국보로 지정 예고된 복장유물 발원문은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다. 발원문에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조성됐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어 이 불상을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었다.

발원문을 지은 이는 백운(白雲) 스님인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즉 《직지》를 편찬한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같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발원문은 스님의 행적을 밝힐 수 있는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발원문은 가로 길이가 10미터가 넘는다. 이 발원문에는 왕족과 군부인(郡夫人), 무관, 일반 백성 등 1117명에 달하는 시주자와 발원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 발원문에 담긴 인원으로는 가장 많다. 이로써 불상 조성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 등 몽고식 이름도 보이는데, 역사기록에서 찾을 수 없는 14세기 중엽의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화재청은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 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로 지정하기에 예술·역사·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발원문’ 중 백운화상 서명 부분. 사진 제공 문화재청.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발원문’ 중 백운화상 서명 부분. 사진 제공 문화재청.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경국대전 권1~2’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경국대전 권1~3’,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경국대전 권4~6’ 등 현존하는 판본 중 인쇄 시기가 앞서고 내용·서지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경국대전》 3종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또 조선의 대표적인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도(天象列次分野圖)’와 서양에서 도입된 천문도인 ‘황도남북양총성도(皇道南北兩總星圖)’를 좌우에 배치하고 일월오성도(日月五星圖)를 더해 비단에 그린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 병풍’과 정조(1752~1800)가 원손시절부터 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한글로 쓴 편지 14통을 모은 ‘정조어필 한글편지첩’,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전인 1910년 3월에 쓴 유묵 5점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사람이 깊은 사려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는 뜻의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날마다 고상하고 청아한 말을 소통하던 분”이라는 뜻의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 “황금 백만 냥은 하나의 아들을 가르침만 못하다”라는 뜻의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이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의 ‘지사인인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 ‘세심대(洗心臺)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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