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기원댄스 비디오의 한 장면.
합격 기원댄스 비디오의 한 장면.

노란 가사를 걸친 한 스님이 사찰 입구에서 절을 올린다. 사찰 경내의 고즈넉한 모습이 화면에 보이고 새소리도 들린다. 검은 승복의 스님들이 두 줄로 늘어서 조용히 법당으로 향한다. 노란 가사의 스님이 경건한 모습으로 법당에 들어선다. 그는 두 줄로 합장하고 선 스님들 사이를 걸어온다. 한 순간 음악이 갑자기 빠른 템포로 바뀌자 노란 가사의 스님이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춤추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스님들도 이윽고 함께 춤춘다. 빠른 음악에 맞춘 일사분란한 동작들은 흡사 K-팝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사찰이라는 종교적 공간에서 일반적인 금기를 깨고 한바탕 벌어지는 강렬한 춤판이 참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이런 느낌은 이 비디오의 배경이 고야산이라는 것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온다. 고야산은 히에이산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가 아니던가. 서기 816년, ‘고보 다이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쿠카이(774~835) 스님이 여기에서 진언밀교를 창시했고 에도 시대(1603~1868) 전성기에는 2000곳이 넘는 사찰이 지어졌다. 일본 전국에 4000개가 넘는 말사를 거느린 진언종의 총본산 곤고부지와 그 밖의 중요 성지도 이곳에 있다. 현재는 117개의 사원과 상점들로 사찰 단지가 조성되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50여 개의 사찰에서 ‘슈쿠보(宿坊)’라고 하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비디오에서 노란 가사를 입고 등장하는 류신 타키야마 (瀧山隆心) 스님은 진언종 스님이면서 또한 무용가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철학에 자극을 받았던 그는 감성과 감각의 세계를 깊이 체험하기 위해 예술과 춤을 선택한다. 교토 조형 예술 대학의 무대 예술 코스를 졸업한 후, 세속의 무대가 아닌 밀교에서 즐거움을 찾겠다는 뜻을 갖고 출가하고 그곳에서 종교무용을 만난다.

“철학에서 즐거움을 구할 것인가, 예술에서 즐거움을 구할 것인가, 생활에서 즐거움을 구할 것인가. 저는 밀교에서 위대한 즐거움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아집을 넘어서 춤을 통해 ‘발고여락(拔苦與樂)’, 즉 자비의 정신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고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을 추구한다. 기존의 경건한 승무와 달리 전자댄스음악을 동반한 스님의 춤은 길거리 댄스, 현대무용, 종교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 자체를 표현, 전달한다. 이 비디오에서도 ‘Sutra Remix’라는 제목의 전자음악이 사용된다.

위 비디오에 나오는 검은 승복의 스님들은 실은 고야산 고등학교의 학생들이다. 사실 이 ‘합격기원댄스’ 비디오는 모리나가제과회사가 수험생들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의 홍보물이다. 일본에서는 1월부터 2월까지 대학입시를 치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대학입시 준비는 혹독하며 수험생의 3분의 1 정도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을 정도이다. 제과회사는 수험생을 위해 약 340개의 과자 패키지를 준비해서 고야산의 에코인 사찰에서 호마(護摩)의식을 통해 과자에게 행운을 축원한 후 트위터로 응모했거나 직접 사찰을 방문한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호마의식은 힌두교에서 유래하여 자이나교나 밀교, 신토 등에 유입된 종교의례로 화로가 있는 호마단(護摩壇)을 놓고, 호마목(護摩木)을 태워 불 속에 곡물 등을 던져 모든 신들과 불보살에게 공양하며, 재난을 제거하고 행복을 가져올 것을 기원하는 행법이다. 호마의식에서 태우는 나무는 번뇌를 상징하고, 타오르는 불은 지혜를 나타낸다. 즉, 지혜로써 번뇌를 불사른다는 의의를 지니는 것이니 이 의식을 치룬 ‘축복의 과자’를 받는다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류신 타키야마 스님의 또 다른 ‘발고여락’ 수행은 ‘고야산 댄스 프로젝트’이다. 참석자들은 실력 수준에 관계없이 불교수행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의 종교 무용을 배우게 된다.

춤을 추는 스님도, 그가 구제하려는 중생도 모두 춤을 통해 위대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를. 이 우주의 움직임도 어느 신의 춤이라는 신화가 떠오른다. 그 신의 춤도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함이라던가. 유튜브에서 ‘Ryushin Takiyama’로 검색하면 사찰 경내를 무대로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침잠하는 그의 춤을 직접 볼 수 있다.

하여 | 영어번역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