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가을의 마지막 달이다. 그래 모추(暮秋)고 만추(晩秋)다. 국화 만개하니 국월(菊月)이다. 24절기로는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든다. 명절로는 구월구일(귀일) 중구(重九)가 있다.
9월이 되면 농촌에서는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 따기도 해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등 밭작물에 대한 파종과 수확이 겹쳐 이래저래 농민들에게는 바쁜 나날이다.
그러므로 일반 농촌에서는 중구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많다. 간혹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 대한 천신(薦新)을 한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것은 보다 민간적인 풍습이다. 전라남도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시제는 10월에 한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기려 한다. 특히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의 가을 문화는 국화를 감상용만이 아닌 식용으로도 애용한다. 3월에도 보았던 이른바 화전(花煎)놀이가 그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이라는 단자를 만들어 먹는다. 국화전은 봄의 진달래 화전과 함께 가을의 미각을 대표한다. 봄의 진달래 화전은 율무를 많이 쓰는 반면, 가을의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많이 쓴다.
또 여름철에는 과일화채를 즐기듯 가을에는 국화화채를 즐긴다. 국화꽃에 꿀물을 타 만드는데, 녹말을 섞기도 한다. 술에 국화를 넣은 국화주도 담는다. 국화가 만발할 때 꽃을 따서 술 한말에 꽃 두 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 두면 되는데, 그 향기가 일품이다.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어렵지 않게 국화주를 즐길 수도 있다. 화전, 화채, 술 등에 모두 쓰이는 국화는 재래종인 감국(甘鞠)이어야 향기도 좋고 오랫동안 싱싱하다고 한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 관련 있다. 그가 이날 국화꽃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다.
먹는 것과 관련하여 덧붙이면 가을은 물고기 맛이 제일 좋은 계절이다. 가을의 민물고기는 시절음식으로는 으뜸이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가장 특효가 있다는 토하젖도 이때 냇가나 도랑에서 건지는 민물새우로 담는다. 값이 비싸 도시사람들은 거의 먹어보지 못하는 이 토하젖은 이때 담은 것이 진짜다. 가을에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야 말로 계절의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다. 또 서늘해지면 잡히는 바다 전어와 준치도 이 시기의 별미다.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어 단풍이 든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서 장만해 온 술과 음식을 들면서 단풍놀이를 한다. 일종의 가을소풍이다. 문인들은 술에 곁들여 시를 짓고 풍월을 읊는 등 주흥을 다지기도 한다. 이를 등고(登高)라 했다. 지방마다 벌어지는 각종 시회(詩會), 계회(契會)는 주로 이때 개최된다.
예를 들면 전라남도 구례군 상동면 좌사리라는 마을에 가면 산록에 방호정(方壺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여기에서는 매년 3월 15일과 9월 15일, 두차례에 걸쳐 시회를 갖는다.  시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방호정계의 회원들이다. 계원들은 주로 이 일대의 문인들이나 전라북도에까지 걸칠 정도로 그 범위가 넓다. 이들은 모여 회장이 내거는 운자(韻字)에 맞추어 글도 짓고 음식도 먹으며 가을 한 때를 즐긴다.
옛날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2-3개 마을에 하나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부보다 먼저 세금을 받는 이들이 바로 무당이었던 것이다.
구월의 불가 풍속은 특별한 것이 없다. 중구일에 자손 없는 이의 제사 지내고(無後祭) 방생가는 경우도 있으나 이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역사 기록에는 신라 때 충담사가 3월 3일과 9월9일에 삼화령 미륵세존에 차를 올렸다고 하고, 역시 신라 때 지혜스님이 꿈에 선도산 성모의 현몽에 따라 봄과 가을의 마지막달인 3월과 9월의 10일에 점찰법회를 설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오늘에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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