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열반 이후 여러 불보살과 함께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던 불사리.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사리 기획특별전(5월 3일~21일)을 전후해 사리에 대한 불교계와 국립중앙박물관 불교계(조계종 등)의 견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 주목된다. 불교계는 ‘신앙의 대상으로 사찰에 봉안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유산으로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꽃 속에 피어난 숭고한 정신, 불사리와 장엄’ 기획특별전이 지난 5월 21일 막을 내렸다. 이번 기획특별전은 문헌으로만 알려졌던 황룡사 사리를 처음 공개하는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의욕이 엿보인 자리였다.
그러나 특별기획전은 불교계에서 ‘불사리는 전시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불사리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전시회보다는 불사리 자체에 더욱 주목하는 양상으로 비쳐졌다.
불교계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기획전에 앞서 이미 가평 현등사와 삼성미술관 리움(Leeum) 간의 ‘사리장엄구 소유권 논쟁’으로 사리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불교계와 국립중앙박물관의 갈등은 이미 예견됐다.
문화재청이 지난 3월 15일 현등사가 제출한 ‘사리가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 조회와 관련, “사리는 문화재가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해, 불교계에서 일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리와 사리장엄구 일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불교계의 사리반환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이번 기획특별전 자체를 불교계가 수용할 수 없었다. 특히 불사리를 아무런 의례(儀禮)도 없이 다른 문화재와 동일하게 취급, 전시했다는 점이나 불교계 항의 공문에 대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말로 일관하는 등의 문제 해결의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갈등을 고조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불교계 항의 공문의 회신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공공기관이므로 불교적 의례를 행하지는 않았지만 관내 최고의 인력에 의해 시종일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보다는 공개의 의미에 무게를 두었다.” 등 불교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불사리 역시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에 귀속된 문화재로서 국가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리는 앞으로도 박물관의 수준 높은 보존관리 환경 하에서 영구히 보존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불교계는 ‘사리는 경배의 대상이지 전시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점유하고 있는 사리는 대부분이 현존하는 사찰의 석탑이나 목탑 혹은 부처님의 복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것들이며, 국가가 강제로 수습해 간 것들이란 점에 주목하고, 원래의 소유주(사찰)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리 등 매장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일괄 국가에 귀속되어 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0년 발간한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사리장엄구』‘한국 불사리장엄구 목록’에 따르면 현재 문헌에 기록이 남아있거나, 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224개로 이중 22개는 해외에 소장돼 있다. 국내 224개의 사리구 중 사리가 함께 발견된 것은 40개로, 일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리구만 30여개에 달한다.
가장 많은 소장처는 단연 국립박물관. 이곳에는 경주 감은사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 1과와 청동사리기를 비롯해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 15과, 전 흥복사지 삼층석탑 사리 4과 등 총 18곳에서 발견된 사리가 보관돼 있다. 삼성문화재단에도 ‘현등사 사리’ 등 6곳에서 출토된 사리가 있으며, 이밖에 개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사리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사찰에 봉안된 경우는 많지 않다. 화엄사, 월정사, 건봉사, 통도사 등 일부사찰 뿐이다. 특히 통도사의 경우, 지난 2000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사리 2과를 대여해 사자목 앞 석탑에 봉안하기도 했다.

 

오종욱 | 월간 선원 편집실장, gobaoou@hanafos.com


사리란

사리는 범어로 Sarira를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원래 죽은 사람의 시신, 또는 유골(遺骨)또는 정골(淨骨)이라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소리나는 대로 사리라(舍利羅)라고 하다가 사리(舍利)로 정해졌다. 사리는 육바라밀을 닦은 공덕으로 생기거나, 또 계정혜로 수행해서 생기는, 매우 얻기 어렵고 제일가는 복전이 된다고 한다.
사리는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화장하는 풍습을 지닌 인도에서 유래됐다.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학문이나 덕이 높은 인물이 사망하면 그의 은혜나 덕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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