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어라”

 

지난 5월 20일 오후 6시, 40여명의 불자들이 봉화 축서사에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 모인 대중들은 조계종 포교원이 간화선 대중화를 목표로 서울 봉은사 시민선방에서 처음 실시한 ‘간화선 초심자들을 위한 수행프로그램(이하 간화선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다.
이날은 3월 14일부터 시작된 간화선프로그램의 마지막 10주차 교육시간으로 봉은사가 아닌 축서사 선원에서 철야 참선 실수가 예정돼 있었다. 지금까지의 공부를 점검하고 특히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으로부터 한국불교 전통의 수행법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먼저 지난 10주간 강의를 진행한 동국대 선학과 황수경 강사의 마지막 강의로 시작됐다. 주제는 ‘수행공동체-조계종도의 길’로 지난 9주간의 수업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화두참구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거나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화두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합니다.”
오후 9시, 드디어 간화선 초심자들의 지도를 위해 무여 스님이 선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님의 얼굴에는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엷은 웃음이 머물고 있었다.
“불교는 인간이 발견한 최상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만난 여러분이나 나나 최고의 행운이라는 것은 조금도 과한 표현이 아닙니다. 부처가 되는 여러 가지 길 가운데 화두참선만한 것이 없습니다. 확고한 신념과 불같은 정진으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참다운 진리를 체득하시길 바랍니다.”
스님이 참가자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스님은 이어 화두참구의 방법과 주의할 점 등을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었다.
“의심하세요. 화두는 생각하는 것도 염하는 것도 아닌 오직 의심입니다. 화두는 간절하면서도 쉼 없이 들어야 합니다. 간절하지 않거나 의심이 약해지면 번뇌와 망상이 일어 우리의 불성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됩니다. 흉내만 내고 성의 없이 건성으로 한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잡을 수 없는 게 화두란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열심히 정진하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게 화두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오직 의심’과 ‘無’와 ‘이뭣고’에 온 몸을 내던질 것을 당부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 참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공부를 하며 궁금한 점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화두를 들다가 상기가 되면 어떻게 하나요.”
“참고 견딜만 하면 무시하려 애쓰세요. 상기는 누구나 있을 수 있습니다. 상기는 자기를 제대로 못 다스려 생기는 겁니다. 그렇기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화두를 들되 약간 느슨하면서도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십시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기증세 사라질 겁니다. 분명한 것은 결단코 화두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상기현상’, ‘공부점검’과 같은 수준급 질문서부터 다리 아플 때는 어떻게 하는냐는 참선자세의 문제까지 참가자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잇따랐다. 그렇게 11시가 훌쩍 넘도록 질문세례가 계속됐고 스님은 확실하고 명쾌한 답변은 초심자들의 ‘무명’에 등불을 밝히기에 충분했다.
빠듯한 일정 탓에 주최 측은 몇 차례 중단을 시도했지만 참가자들의 열기와 무여 스님의 자상함으로 인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자정 무렵 모든 의문을 던지고 답변을 얻은 뒤에야 참가자들은 화두를 들고 면벽수행에 들어갔다.
이날 축서사 철야정진은 50분의 화두참구와 10분의 행선을 반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어둠과 적막감이 안개처럼 드리운 깊은 산사, 5월을 무색케 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지만 축서사 선원 안은 밤이 깊을수록 그 수행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생사진로 벗어남이 예삿일이냐, 척량골 바로 세워 부닥쳐 보리라. 사무치는 뼈 속 추위 겪지 않고서, 코를 쏘는 매화향기 어찌 맡으리.’ 참가자들의 표정에서는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엿보였다.
5월 21일 오전 8시, 그렇게 밤새도록 미동도 않고 모두들 망부석이라도 된양 화두와 씨름했던 이들은 지난밤 가행정진의 열기를 뒤로하고 둥글게 모여 앉았다. 지난 10주간의 수행담과 내면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직장인, 개인사업가, 교사, 주부 등 직업도 다르고 선방 수좌 못지않은 ‘베테랑’ 선객부터 ‘생초보’ 입문자까지 그 수준도 달랐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마쳤다는 기쁨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밤 공부에 큰 진전을 경험했다’는 이야기에 다들 부러운 시선을 쏟아냈고 ‘아직도 뜬구름’이라는 말에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지난 과거를 반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면 함께 눈물을 훔치며 진심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정진에 대한 열정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참가자 모두 한결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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