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의 ‘짧은 글 깊은 울림’

 

명·청대 선승 운서주굉(1535~1615) 스님의 ‘죽창수필(竹窓隨筆)’에 실린 글을 가려 뽑아 옮긴 책이다. ‘죽창수필’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 창가에서 붓 가는 대로 적은’ 지혜의 글 142편을 담은 것이다. 글 하나 하나가 한 페이지를 못 다 채울 정도로 짧고 간결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삶의 본 모습과 인생의 참뜻에 대한 선지식의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붓 가는 대로 적으면서 주로 힘써 수행할 것을 권하되 소재나 주제는 어느 곳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역사 속의 인물이나 당대의 사람에 대한 일화와 기담에서부터 지은이 스스로의 경험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것에서 글감을 취했다. 깨달음이 담긴 짧은 이야기도 있고, 관행으로 여겨온 구습에 대한 비판도 있으며, 수행자들에 대한 경책, 바른 수행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가까운 산은 푸르스름한 것이 마치 남색인 것 같고, 멀리 보이는 산은 거무스레한 비취빛인 것이 마치 남색에다 청대를 물들인 듯하니, 그렇다면 과연 산의 빛깔이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산색은 다름이 없다. 다만 시력에 차이가 있어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차츰 멀어질수록 푸른빛이 비취빛이 되고, 먼 곳으로부터 차츰 가까워질수록 비취빛이 푸른빛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푸른빛은 그럴만한 인연이 모여 푸르고, 비취빛은 그럴만한 인연이 모여 비취빛이 되니, 비취빛이 환(幻)일 뿐 아니라 푸른빛도 또한 환이다.”

존재는 다름이 없는데, 겉보기가 다르다고 호들갑떠는 것을 꾸짖는 글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덧없는 욕심을 통렬히 나무라는 글도 나온다.

“부음을 들으면 사람은 누구나 크게 놀란다. 이것이 비록 세상의 상정(常情)이기는 하지만,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 또한 세상의 상사(常事)여서 이제까지 아무도 이를 비켜간 사람이 없으니 무엇이 새삼 놀랄만한 일이겠는가. 다만 헛되이 살다 부질없이 죽어가면서 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놀랄만한 일이건만, 이 일에는 오히려 태연하여 전혀 놀라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철저히 깨닫기를 권하여 “깨달은 뒤에 말할 줄 모를까 염려 말라”거나 “스님이 무엇이기에 부모에게 절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부처가 되고 나서 부모의 귀의를 받아도 늦지 않다”는 말도 적잖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생명 존중을 모르는 세태를 나무라는 글도 자주 등장한다.
책을 옮긴 연관 스님은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을 지내다 그만두고 실상사 수월암에서 경전 번역에 전념해온 학승. 도법·수경스님과 실상사를 지키며 생명평화 및 생태운동을 한 공로로, 두 도반 스님과 함께 제6회 풀꽃상을 받았다.(연관 스님 옮김 | 운서주굉 선사 지음 | 호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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