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에 활동한 조각승 단응(端應) 스님이 숙종 10년(1684)에 조성한 보물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조성 이후 337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 특별전을 위해 사찰 밖으로 나들이를 했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영향으로 불교미술이 크게 쇠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조선시대 불교미술이 미술사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 못지않게 성보 조성이 활발했다. ‘승장(僧匠)’으로 불리는 승려 장인이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며 다채롭고 화려하며 수준 높은 성보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들 승장의 활동은 매우 활발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후기 승장만도 조각승 1000여 명, 화승 2400여 명에 이른다. 전국 사찰에 남아있는 옛 불상과 불화가 대부분 이 시기에 조성됐다. 조선 후기는 이를테면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르네상스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불교미술을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인 승려 장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특별한 만남이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내년 3월 6일까지 관내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의 승려 장인’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화승 화련(華蓮) 스님이 영조 46년(1770)에 조성한 국보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도화서 화원이나 관청 소속 장인이 세조 4년(1458)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국보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에 활동한 조각승 단응(端應) 스님이 숙종 10년(1684)에 조성한 보물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붓의 신선’으로 불렸던 18세기 전반의 화승 의겸(義謙) 스님이 영조 5년(1729)에 조성한 보물 ‘해인사 영산회상도’ 등 국보 2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총 145건의 성보문화재가 출품됐다. 출품된 성보 조성에 관여한 승려 장인은 모두 366명에 이른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사찰 15곳 등 국내외 27개 기관이 협조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제2부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중 ‘화승의 스튜디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은 △제1부 ‘승려 장인은 누구인가’ △제2부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 △제3부 ‘그들이 꿈꾼 세계’ △제4부 ‘승려 장인을 기억하며’ 등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승려 장인은 누구인가’는 일반 장인과 구별되는 승려 장인의 특징과 성격을 살펴보는 공간이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분야의 승려 장인이 있었다. 그중 중심에는 불상을 조성하는 조각승(彫刻僧)과 화승(畫僧)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협력하며 불상과 불화를 조성했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으며 조성 기술을 전했다.

조선 전기 불교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광해군 14년(1622)에 조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조각승 현진(玄眞) 스님이 응원(應元), 수연(守衍), 옥명(玉明), 법령(法玲), 명은(明訔), 청허(淸虛), 성인(性仁), 보희(普熙), 인균(印均), 경현(敬玄), 지수(志修), 태감(太鑑) 등 여러 스님과 협업해 조성한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조선 후기의 성보 제작방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제2부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은 승려 장인의 공방과 작업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화승의 스튜디오’와 ‘조각승의 스튜디오’를 연출해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영조 51년(1775) 조성된 보물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4점과 그에 해당하는 초본을 나란히 비교 전시해 밑그림이 불화로 완성되는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또 컴퓨터 단층 촬영(CT) 결과를 활용해 기존에 소개된 적 없는 불화 초본과 목조 불상의 내부 구조를 공개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제2부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 중 통도사 팔상도와 초본.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 대표적인 조각승과 화승의 중요 작품을 집중 조명한 제3부 ‘그들이 꿈꾼 세계’.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제3부 ‘그들이 꿈꾼 세계’에서는 조각승 단응 스님이 숙종 7년(1681) 처음으로 수조각승이 되어 조성한 ‘공주 마곡사 영산전 목조석가여래좌상’과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화승 의겸 스님이 조성한 ‘해인사 영산회상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화승 신겸(信謙) 스님이 순조 28년(1828)에 조성한 ‘의성 고운사 사십이수관음보살도’, 화련 스님 등 12명의 화승이 조성한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등 대표적인 조각승과 화승의 중요 작품을 집중 조명했다.

3부에서 소개한 불상과 불화는 좀처럼 함께 모이기 어려운 명작이다. 특히 불상과 불화의 형식을 조화시킨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이번 전시를 위해 조성 이후 337년 만에 처음으로 사찰 밖으로 나들이를 했다.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그간 보수도 경내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봉안돼 있는 대장전에서 진행할 정도였다.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도 서울 나들이는 이번이 처음이다.

▲ 조선 후기 불·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vakki)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를 함께 전시한 제4부 ‘승려 장인을 기억하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제4부 ‘승려 장인을 기억하며’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로 나아가는 불교미술의 새로운 면모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포함해 조선 후기 불·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vakki)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를 함께 전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렵게 느낄 수도 있는 불교미술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현대인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인다.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성파 스님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전문가를 인터뷰해 불교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켰다. 도입부 영상 ‘손으로부터’는 나무와 돌, 비단과 삼베 같은 평범한 재료가 승려 장인의 손끝에서 불상과 불화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3부에서 소개되는 실감 영상 ‘화엄의 바다’는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를 선재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알기 쉽게 풀어냈다.

민병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조선시대는 불교미술이 쇠퇴한 시기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불교미술 전통이 이어져 다양한 작품이 조성된 시기였다.”며, “15곳에 이르는 사찰의 도움 없이는 이번 특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특별전이 조선의 승려 장인과 이들이 만들어낸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