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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전후 불교계 독립운동
2021년 03월 23일 (화) 16:11:59 권유정 .

“아재, 혹시 최근에 <독립신문> 보았소?”

“<독립신문>? 갑자기 신문은 왜?”

“얼마 전에 민족대표들 법원 결심공판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왜 듣는 사람 속 시원하게 말한 스님 한 명 있잖아요.”

“아, 조선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 그 스님 말이지? 이름이 뭐더라. 한… 누구였는데.”

“한용운 스님! 그 스님이 독립운동을 한 이유를 글로 썼대요. 종이로 70장 가까이 된다는데 그걸 하나는 재판소로 보내고 하나는 밖으로 내보냈다나 봐요.”

“아니, 감옥에 있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

“끈처럼 종이를 꼬아서 몰래 밖으로 내보낸 걸 신문사에 갖다 준 것이라네요. 근데 그 글이 아주 기가 막혀요.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아까부터 국밥집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정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 그 글이 실린 것이 어느 신문인가요?”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하는 <독립신문>에 실렸습디다. 마침 내가 몇 부 가지고 있는데, 한 부 가져갈 테요?”

젊은 사내가 의자에 올려둔 신문 뭉치에서 <독립신문>을 찾아 한 부를 건네자 정우는 공손히 받아들고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저희 숙부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실 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우는 몇 수저 뜨지 않은 국밥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신문을 들고 곧장 근처 청룡사까지 단숨에 달려가 숙부가 머무는 방의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귀국해 청룡사에 은신하던 중 갑자기 열병으로 앓아누운 숙부가 누구보다 반가워할 소식이었다.

정우는 숙부 머리맡에 앉아 국밥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신문을 펼쳐 글을 찾아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따라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사체(死體)와 같고 평화가 없는 사람은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이다. …”

말없이 듣고 있던 숙부의 눈가가 조금씩 붉어지더니 글을 다 읽고 나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정우는 그 모습에 짐짓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정우 자신도 가슴 한복판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어느 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1919년 11월 4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한용운 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 일명 <조선 독립의 서>.

이것이 바로 한용운 스님이 감옥에서 일본인 검사에게 보낸 진술서인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이다. 흔히 <조선 독립의 서>로 불리는 이 글은 조선이 독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한 명문이다.

독립운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용운 스님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불교계의 항일운동은 1919년의 3·1운동 이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조직적이지는 않았으나 스님들이 개별로 참가했다.

그 가운데 강원도 건봉사 창기 스님이 여주 의병대장 민용호의 비밀편지를 운현궁에 전달하다가 붙잡혀 한성재판소에서 재판받은 기록이 있다. 하지만 당시 불교계 항일운동은 전체라기보다는 개인 참여에 국한됐고, 1919년 3월1일을 계기로 비로소 불교계 독립운동가의 면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3·1운동에 참여한 불교계 대표는 널리 알려진 대로 만해 한용운 스님과 백용성 스님이다. 특히 만해 스님은 최린과 3·1운동을 협의한 뒤 불교계 참여를 독려하며 직접 부산 범어사 오성월 스님 등을 찾아가기도 했고, 2월 28일에는 <독립선언서> 1만 장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기다리던 중앙학림(현 동국대학교 전신) 학생 10명에게 건네 3월 1일 오후 2시 이후 시내 일원에 배포하도록 했다. 이후 불교계의 독립운동은 만해 스님의 제자들에 의해 서울에서 해인사, 범어사, 통도사, 동화사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독립선언식을 끝내고 만세 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체포된 만해 스님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하면서 독립과 불교계를 위해 노력하겠노라는 다짐한 짧은 인터뷰 기사가 사진과 함께 1921년 12월 2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했다.이처럼 불교계 항일독립운동은 3·1운동을 기점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특히 중국 상해에서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가 발표된 다음부터 더욱 적극적인 투쟁으로 이어졌다.

   
▲ <동아일보> 1921년 12월 24일자 ‘지옥에서 극락을 구하라’ 기사.

이십이일 오후에 경성감옥에서 가출옥한 조선 불교계에 명성이 놉흔 한룡운(韓龍雲) 씨를 가회동으로 방문하였는데 … (중략) … 장래는 엇지 하려느냐 물은즉 “역시 조선불교를 위하야 일할 터이나 자세한 생각은 말할 수 업다”고 하더라. - <동아일보> 1921년 12월 24일자 3면 ‘지옥에서 극락을 구하라’ 일부 발췌

아등(我等)은 기(起)하엿노라. 대한의 국민으로서 대한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야 1천 년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대한 불교를 일본화와 멸절(滅絶)에 구하기 위하야 아(我) 7천의 대한 승니(僧尼)는 결속하고 기하엿노니 시사보국(矢死報國)의 이 발원과 중의경생(重義經生)의 이 의기(義氣)를 뉘 막으며 무엇이 막으리오. 한번 결속하고 분기(奮起)한 아등은 대원(大願)을 성취하기까지 오직 전진하고 혈전(血戰)할 뿐인저.

-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 일부 발췌

 

1919년 11월 15일 범어사 오성월 주지 스님을 비롯한 12인이 불교계 대표 이름으로 상해에서 발표한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독립운동에 나선 불교계의 각오가 어떠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 선언서는 오랜 시간 동안 제목과 내용만 알려져 있다가 우리말 원본이 프랑스에서 발견되면서 범어사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발표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은 1970년 2월 28일자 〈동아일보〉에 전문과 함께 소개되었다.

   
▲ <동아일보〉1970년 2월 28일자에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가 발견된 배경과 내용, 선언서 전문이 소개됐다.

이 선언서는 당시 파리 주재 외국 사절에게 전달된 것으로 불도의 자비에 어긋나는 일본의 횡포를 규탄하며 임진왜란 등 위기 때마다 일어나 나라를 지킨 한국불교계가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불교계는 상해 임시정부와 교감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성 임시정부 국민대회 취지서 발표 때 25인 대표로 박한영, 이종욱 스님이 참여한 것을 비롯해 만해 스님의 지시로 지방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중앙학림의 젊은 스님들은 인사동 신상완의 집을 본부로 새로운 독립운동 전개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신상완, 백성욱, 김법린, 김대용을 상해로 밀파했고, 이들 가운데 김법린과 김대용은 임정 국내 파견원으로 귀국해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건봉사 정남용 스님은 지하 항일단체인 대동단(大同團) 활동에 적극 개입했고, 월정사 송세호 스님은 청년 항일독립운동단체인 ‘대한민국 청년외교단’에서 활동했다. 송세호 스님은 임시정부 재무부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백초월 스님은 한국민단본부라는 항일비밀단체를 조직하고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했는가 하면, <혁신공보>를 간행해 독립의식 고취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불교계 독립운동가의 항일운동은 국내외에서 지속되었다. 이러한 항일운동의 밑바닥에는 불교계의 희생과 지원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문에서 볼 수 있는 불교계 독립운동의 관련 기사는 일제의 억압에 고뇌하고 저항하던 당시 불교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일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좋은 자료다.

권유정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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