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 화합된 몸은 늙음이 오고 그리고 죽음으로 돌아간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으라.” 육신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당부이다. 수행자도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생사의 경계를 넘어 열반에 이르려는 원력이 있기에 범부와는 다르다. 불교에서의 죽음의 의미와 스님들의 여법한 열반의 참된 뜻을 되돌아본다.

열반이란 무엇인가. 단지 부처나 고승의 죽음을 열반이라 하지 않는다. 『잡아함경』에서 열반의 참뜻을 묻는 동료 수행자에게 사리불 존자는 탐진치 삼독의 불길이 완전히 소멸된 세계라고 말한다. 삼독,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은 소견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으뜸 원인이다. 모든 생명이 인연의 그물에 의해 한 몸 한 생명임을 부정하는 전도된 사상에서 이기적 탐욕이 생기고,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미움과 분노의 불길이 솟는다. 삼독이 커지면 사회는 반목과 불화, 전쟁의 세계로 혼탁해진다. 그러므로 지옥은 삼독의 총체적 모습이고, 그러한 지옥은 우리의 의식과 사회의 너머에 멀리 있는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다.
따라서 개인 존재와 사회의 무지와 탐욕을 극복하는 삶이 바로 열반이고 참된 삶의 의미일 것이다. 열반은 육신을 벗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로 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늘 자유와 평등, 평화를 염원하면서도 그 세계를 가꾸는 전제 조건인 탐진치 삼독의 소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 최근 세계의 패러다임인 생명 평화 상생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과 몸짓에 큰 전환을 가져야 한다.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연기적 삶으로의 큰살림을 차려야 한다.
부처님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 수행하셨으며 마침내 35세에 열반을 성취하셨다. '이제 번뇌와 번뇌의 흐름이 멎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셨다. 생사는 생명의 존재론적인 문제이며 나아가 탐진치 삼독이 부침하는 현실이다. 생사를 우리 삶에 적용시켜 보자. 존재의 근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무상의 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탐욕과 미움의 윤회를 밤낮으로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삶은 목숨의 연명이고 습관은 될지언정 참생명의 길은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열반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마다 삼독의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가면서도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큰 자비심을 나누어야 한다.
대승경전은 이렇게 말한다. 부주생사(不住生死) 부주열반(不住涅槃)이라고, 생사에 지배 받지 않지만 그렇다고 열반에도 안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지혜와 청정심과 평화를 갖는 일은 우선이다. 부주생사가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그런 삶을 이웃과 함께 할 때 마침내 우리는 부주열반의 길을 가는 큰 사랑의 보살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신 경지가 열반이다. 그 후 45년간 인도사회의 신분제도를 부정하시고, 부족의 물싸움을 중재하시고,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교화하시고, 전쟁을 말리시고, 입적의 순간까지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에게 설법하신 모든 일들이 바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은 큰 자비심이다.
이렇듯 열반은 무지와 욕망을 떠나는 일이며, 이웃과 함께 지혜와 자비를 나누는 일이며, 늘 현재에서 구현하는 청정 자유 평등 평화의 삶이다. 정치인도 노동자도 그 누구도 무상한 생명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고 중생이 곧 부처라면 현재의 삶에서 언제나 열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편집실 | iseonwon@iseonwon.com


죽음, 그 아름다운 여정

진정한 수행자는 생명의 바다를 뛰어 넘는 곳에 있는 열반(涅槃)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정진을 게을리 않는다. 비록 육신의 생명은 마감하지만 생명을 넘어선 곳에 자리한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의 죽음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취봉 스님(1898~1983) | 어느 날 아침 목욕재계로 몸을 깨끗이 한 취봉 스님이 시자를 불렀다. “이보게, 향합(香盒)에 남아있는 '마지막 향'을 갖고 오게.” 스님은 상좌와 함께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 앞에 갖고 온 향을 올리고는 지극한 마음으로 3배의 예를 올렸다.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것이다. 그날 이후 스님은 곡기(穀氣)를 끊었다. 뼈와 힘줄이 드러날 정도로 법체가 무너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는 당신이 지닌 몇 안 되는 용품을 남김없이 사중(寺中)으로 되돌렸다. 남은 것은 승복 한 벌이 전부였다. 갈아입을 옷조차 없었다. 상좌들이 빨래를 할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좌선을 했다.

홍법 스님(1930~1978) | 홍법 스님은 젊은 나이에 열반했지만, 남긴 영향력은 크기만 하다. 홍법 스님은 시은(施恩)을 갚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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