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묘 정전의 가칠단청.

가칠단청(假漆丹靑)은 무늬 없이 석간주(石間硃)*나 뇌록(磊綠)** 등으로 바탕칠만 하는 가장 단순한 단청을 말한다. 장식 효과보다는 목재를 습기와 병충해로부터 보호하여 목조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단청 본래의 목적에 치중한 단청이다. 일반적으로 기둥 부분은 붉은색 계통의 석간주를 칠하고 나머지 부분은 푸른색 계통의 뇌록 등 최소한의 색상만으로 칠하기 때문에 소박하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에 겸양과 절제의 유교적 가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많이 세워지다보니 유교단청으로 대표되는 가칠단청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화려한 단청과는 달리 종묘나 성균관, 향교, 사당 등 유교적인 건축물에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단청을 시공하는 절차에서 맨 처음 칠하는 단계를 가칠이라 하는데 얼굴화장에 비유하자면 기초화장 전에 파운데이션을 바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파운데이션이 피부를 보호하고 기미나 주근깨, 살결의 색 등을 커버하듯이 가칠은 목재가 터지고 갈라져서 보기 싫은 부분을 카무플라주(camouflage, 의도적으로 감추는 일) 하는 기능을 한다.

화려함을 배격한 가칠단청이야말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아닐까?

* 석간주: 붉은빛을 띠는 단청의 기본이 되는 바탕색 안료.

** 뇌록: 단청에서 옥색을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초록색 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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