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밝은사람들연구소 ‘제19회 학술연찬회’ 종합토론 모습. 밝은사람들연구소 유튜브채널 동영상 갈무리.

밝은사람들연구소(소장 박찬욱)와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와심리연구원(원장 윤희조)은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를 주제로 11월 21일 서울 안국선원 법당에서 개최한 ‘제19회 학술연찬회’를 12월 한 달 동안 연구소 유튜브채널에서 공개한다.

연구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학술연찬회를 개최하기 어려워지자 11월 21일 청중을 초대하지 않고 각 주제발표를 녹화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는 발표 주제는 △이필원 동국대학교 교수의 ‘번뇌, 알아야 끊을 수 있다’(초기불교)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대승불교의 번뇌론 유형과 그 사상체계’(대승불교) △오용석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의 ‘물고기의 꿈, 그리고 깨어남’(선불교) △박찬국 서울대학교 교수의 ‘서양철학에서는 번뇌 망상이란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가’(서양철학) △이유경 분석심리학연구소 소장의 ‘번뇌의 분석심리학적 이해’(심리학) △종합토론이다.

박찬욱 밝은사람들연구소장은 “행사 당일 실시간 중계하는 방식을 택하는 학회가 많지만 우리는 주제발표 동영상에 PPT를 삽입해 시청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며, “이번 학술연찬회에서는 ‘번뇌’에 대해 살펴보았다. 학술연찬회가 마음의 밭을 가꾸는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2006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 ‘밝은사람들 학술연찬회’를 개최하고, 논의되는 내용을 연찬회 전 ‘밝은사람들 총서’로 간행하고 있다.

이번 학술연찬회 책자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운주사 펴냄)는 시중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의. happybosal@hanmail.net

다음은 연찬회 유튜브 동영상 주소와 밝은사람들연구가 배포한 연찬회 발표 요지.

■ 이필원 ‘번뇌, 알아야 끊을 수 있다’유튜브 동영상 보기

불교를 심리학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불교가 마음의 구조를 해명하고, 마음의 작용 방식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번뇌가 자리한다. 번뇌 혹은 (불건전한) 정서는 마음의 작용이다. 대표적으로 탐진치의 삼독을 말하기도 하며, 6수면(睡眠, anusaya), 혹은 십결(十結, saṃyojana)을 언급하기도 한다. 번뇌의 특성에 따라 낄레사(kilesa, 오염)라고도 표현하며, 아사와(āsava, 누출, 漏)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번뇌는 이지적 번뇌[無明, avijjā]와 정서적 번뇌[갈애, taṅhā]로 크게 구별되기도 한다.

초기경전에서는 번뇌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언급이 중요하게 기술된다. 이는 번뇌 발생의 메커니즘에 대한 올바른 앎이 번뇌를 대치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번뇌의 발생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① ‘접촉→느낌→갈애’이고 ② ‘접촉→느낌→인지→생각→망상’의 과정이다. 두 가지 패턴 모두 공통적인 것은 번뇌는 대상과의 부딪힘[觸, phassa]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는 번뇌를 해결하는 방식은 결국 부딪힘의 순간 발생하는 느낌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가 ‘번뇌는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혹은 ‘끊어야 하는가 보듬어야 하는가’라는 양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재권 ‘대승불교 번뇌론의 유형과 그 사상체계’유튜브 동영상 보기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번뇌란 인간의 심신을 어지럽히거나 괴롭히며 오염시키는 정신작용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인간은 심리작용의 일종인 온갖 번뇌에 의해 다양한 업을 짓고, 그 결과 현실적으로 실존적인 괴로움의 과보를 받거나 생사유전의 미망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 범부들은 ‘나’라는 존재와 이 ‘세계’가 다양한 인연에 따라 생멸하고 변화해가는 연기적인 존재 그 자체에 지나지 않음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범부들은 생사유전(生死流轉)의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습관적으로 허덕이며 살게 된다. 요컨대 인간 존재의 심연에 잠복한 가장 근본적인 무지로 인해 번뇌와 부정적인 업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은 실존적인 괴로움의 그물망에 휩싸여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불교는 연기적인 실상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괴로움이나 그 생사유전의 미망의 세계를 벗어난 열반이나 해탈을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번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사상구조가 가장 핵심적인 요체라 여겨진다. 결국 불교는 초기불교에서 아비다르마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 이르는 그 사상적 전개 과정에서 번뇌의 문제나 그 수행론적인 해결방식에서 교리적으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 오용석 ‘물고기의 꿈, 그리고 깨어남’유튜브 동영상 보기

선은 번뇌를 끊어야 할 대상 혹은 닦아야 할 실체로 간주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반대로 마음이 가진 속성을 이용해 새로운 번뇌, 수렴된 번뇌로서 알 수 없는 ‘그것’에 몰두할 것을 제시한다.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수록 수행자의 자질구레한 번뇌는 수렴되고 선지식은 선문답, 법문 등을 통해 수행자의 집착을 일격에 부수는 계기를 선사한다. 그러나 선이 붓다가 선언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출발했듯이, 우리 역시 선에서 제시한 절대적인 명제인 무심과 자비의 관계에서 출발할 수 있다. 즉 타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반응하고 돕는 행위가 무심 자체이고, 깨달음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무심을 번뇌가 끊어진 청정심으로 추상화하여 추구하는 것은 무심을 절대화시키는 행위일 뿐 무심의 실천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불교에서 번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부정해야 할 것은 아니다. 번뇌는 우리 중생의 상태를 반영하는 하나의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이용해 자비로 나아갈 수 있다. 자비의 실천이 무심이다

■ 박찬국 ‘서양철학에서는 번뇌 망상이란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가’유튜브 동영상 보기

인간은 끊임없이 번뇌에 시달리면서 번뇌에서 벗어난 상태를 지향한다.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번뇌는 부나 명예, 인기, 이성의 사랑에 대한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면서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번뇌를 해결하려는 길이다. 이에 반해 번뇌에서 벗어나는 다른 길은 세간적인 가치들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거나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는 길이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키르케고르, 하이데거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주요한 흐름은 이 후자의 길을 대변한다. 이러한 흐름에서는 인간은 자기중심주의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통해서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철학적 흐름에서 지속적으로 인간과 함께 신적인 존재가 문제되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신적인 존재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이성과 사랑을 구현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서양철학의 주요한 철학자들이 번뇌와 망상이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고찰한 후,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토대로 하여 번뇌 망상의 구체적인 양태들과 번뇌 망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고찰했다.

■ 이유경 ‘번뇌의 분석심리학적 이해’유튜브 동영상 보기

우리의 개별적 삶은 궁극적으로 인격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심적 문제와 신경증적 증상들은 인격 발달의 장애로서 간주될 수 있다. <번뇌>가 비록 정신 수련 및 수행에서 생겨나는 탐욕, 혐오, 망상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성인기 삶의 과제를 해내면서 발생하는 걱정, 공포, 불안, 공황 상태 등과 같은 심적 부담과 증상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종교적 태도에서 비롯된 <번뇌>가 특수의 다른 심리적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종교적 태도는 가능한 외부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들이고 기도와 명상 등으로 내향화에 이르게 함으로써, 의식을 너머 그 배후에 있는 정신 영역에 주목하는 것이다. 의식의 배후 영역은 심층심리학적으로 무의식적 정신이다. 의식이 외부에 리비도를 적용하지 않으면, 저절로 무의식적 정신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서 일종의 의식과의 불일치 상태에 이른다. 이는 의도적으로 만든 일종의 의식과 무의식적 정신 사이의 알력으로, 의식은 긴장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런 상태의 보고가 <번뇌>이므로, <번뇌>의 상태는 증상적이다.

<번뇌>는 정신분석 및 치료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성인기 신경증적 증상 기술과 같은 것이다. 신경증은 무의식적 정신의 활성화에 의한 의식과의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기 신경증은 사회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완수하고 있음에도 생활 전반의 불만족과 자기 자신의 불일치를 호소한다. 이는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청년기 신경증과는 구분된다. 청년기의 삶의 과제는 인격의 실현보다는 사회적 역할을 완수하면서 기능과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기에 이르게 되면 저절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식적 태도가 형성된다. 성인기 신경증으로 정신분석 및 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은 <번뇌>의 해결을 원하는 양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흔히 무의식적 정신이 의식을 방해하는 신경증적 증상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적으로 무의식은 의식의 무질서한 부산물이 아니라, 의식의 기초가 되는 정신 영역이다. 정신의 구성요소들로서 무의식적 정신은 전체성을 고려하는 자가 조정을 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격의 실현을 이끄는 작용을 한다. 성인기 신경증적 증상들을 자아의식의 일방적 태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특별히 성인기에 이르면 자아와 의식은 사회적 역할에 동일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착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에 대해 무의식적 정신의 조정적 간섭이 생겨난다. 이를 의식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야기하는 증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성인기 신경증적 증상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자아의식의 태도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동양 종교의 수련에서 <번뇌>의 원인이 자아라고 하는 점과 일치하게 된다. 성인기 신경증의 치료는 자아와 의식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신경증적 증상은 소위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요구하는 내면의 요청이다. 신경증적 증상에 의하여 인격발달의 장애를 해결할 기회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층심리학적 정신분석 작업은 <번뇌>의 해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종교적 태도는 가능한 의식 중심의 태도를 완화하고, 무의식적 정신을 신성(Numen)으로서 끌어들여 인격의 변화를 꾀하려 하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적 정신분석 작업 또한 활성화된 무의식적 정신을 가능한 의식과 연결하여 새로운 의식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정신이 정신의 전체성을 고려한 보상적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분열된 인격을 통합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는 종교적 태도에서 내향화에 의하여 주도적인 의식의 태도를 희생하면서 신성을 경험하고 궁극적으로 신성과 통합하려는 작업과도 같다. 모든 성인이 신경증에 걸리지 않듯이, 신경증적 증상을 겪지 않는다면, 자아의식을 개선할 정신분석 및 치료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성인기 신경증은 신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종교 문제를 나타내며, 정신분석 및 치료는 그에 대한 현대인들의 종교적 태도에 상응하는 것이다.

■ 종합토론유튜브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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