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불교신문>에 기고한 칼럼에 “대한불교조계종을 임의단체”라고 두 차례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아 비구니 중앙종회의원 정운 스님 징계 동의안을 중앙종회 제219회 정기회에 발의했다. 중앙종회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12일 속개된 정기회에서 “소명절차가 필요하다”며, 징계동의안을 다음 회기로 이월했다.

총무원은 “누구보다 종헌·종법을 준수하고 종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현직 중앙종회의원 신분임에도 본인의 의정활동과 관련한 내용을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칼럼을 통해 마치 사실인양 공표했다.”며, “종도와 국민을 현혹케 하고, 이로 인해 종단과 승가의 위의가 훼손되어 징계에 회부한다.”고 동의안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정운 스님 징계 동의 배경에는 자승 전 총무원장이 “조계종을 임의단체”라는 표현을 해종으로 규정하고 대처하라는 뜻을 중앙종회에 전달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승 전 총무원장은 11월 1일 중앙종회의 불교광장 4개 계파 대표들과 회동해 중앙종회 의장단 인사를 비롯해 상임분과위원장 배정을 사실상 지시하고, 이 자리에서 정운 스님에 대한 처분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조계종을 임의단체”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은 밑바탕에는 전국비구니회가 제218회 임시회에서 중앙종회에 ‘명사추천권’을 달라고 요구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국비구니회가 중앙종회의 권한을 넘어서는 명사 추천권을 가지려 성급하게 정관을 개정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정운 스님이 소신을 갖고 쓴 칼럼이 ‘해종행위’라는 자승 전 총무원장의 해괴한 잣대에 걸려들면서 종단적 문제로 확산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총무원이 정운 스님 징계동의안을 제출한 것이 알려지자 교계의 비판이 잇따랐다.

전국비구니회는 9일 정운 스님 징계동의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전국비구니회는 입장문에서 “(조계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모으고 부처님 사상에 입각해 그 근거를 제시하는 등 사회의 변화를 리드해가는 진보적인 종단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한 사람의 실수에 대한 가혹한 징계가 자칫 성차별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징계동의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민주연합노조 대한불교조계종 지부(지부장 심원섭, 이하 조계종 민주노조)도 11월 4일 ‘비구니 종회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추고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종단을 위해 과감한 혁신을 해달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주노조는 “칼럼의 취지는 ‘전국비구니회’에 비구니 명사 추천권한을 부여해 달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시대 흐름에 맞게 비구니의 위상과 역할, 책임을 부여해달라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대한불교조계종도 국가법상으로 임의단체로서 인정을 받는다고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이 무엇이 종단을 폄훼했고,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노조는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여성성직자 위상이 높다고 자랑해왔지만 내부적인 현실은 비구 중심으로 종단이 운영되는 체계”라며 “승가공동체로서 수레바퀴처럼 비구, 비구니가 평등한 가운데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중앙종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대승네트워크도 11일 낸 성명에서 징계동의안 철회를 촉구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대한불교조계종’을 임의단체라 칭하여 종단을 폄훼한 것이라는 징계 사유는 명분을 찾기 위함이고, 진짜 이유는 비구니 스님들의 권리 찾기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징계 추진은 차별 없는 세상을 추구해야 하는 종단이 오히려 성 평등과 공의적 질서를 추구하는 사회적 흐름과 시대정신에 반하는 행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또 “정운 스님의 징계 추진은 언로를 차단해 민주적 통합 기능의 상실을 초래하게 하는 것”이라며, “종단은 주요 의사 결정에 종도들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종단의 안정과 변화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평등불교연대(이하 성불연대)도 10일 성명을 내 징계 동의안 폐기를 촉구했다.

성불연대는 “종단의 현 상황은 소통이나 화합도 아니며, 성 평등이라는 사회적 흐름에도 위배되며, 인간존중의 시대정신도 역행한다.”며 징계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성불연대는 “비구니의 무한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면서도 권리 요구는 묵살하고, 목소리를 내는 비구니에게는 해종 행위라며 처벌하고 낙인찍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이제는 전국비구니회를 종법으로 인정하고 비구니 참종권을 확대하면서, 비구니승가와 권한과 책임을 동일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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