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은 고고학자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인정하는 곳이다. 근처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글에도 이곳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로 기록돼 있다. 룸비니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불교성지 중의 성지인 룸비니에는 한국의 대성석가사를 비롯해 태국, 인도,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불교사원과 독일의 불교사원 등 여러 나라의 불교사원이 건립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의 불교사원도 다른 나라의 불교사원과 함께 순례자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쉐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방글라데시 수상은 7월 27일 열린 내각회의에서 네팔 룸비니개발신탁(Rumbini Development Trust)과 방글라데시 정부가 맺은 불교사원 건립 협정 초안을 승인했다. 룸비니개발신탁은 네팔 정부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룸비니를 복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방글라데시 불교사원은 룸비니개발신탁이 관리하는 불교사원 보호지구에 건립될 예정이다.

칸다커 안와룰 이슬람(Khandaker Anwarul Islam) 방글라데시 장관은 네팔에 불교사원을 짓는 의의와 그간의 추진 과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외무부를 통해 룸비니에 불교사원을 짓고 싶다는 의향을 네팔 정부에 밝혔고, 부지를 할당받았다.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는 자국의 불교유산을 소개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2015년에는 남아시아와 태평양 연안 국가의 불교유산을 성지로 개발하기 위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United Nations World Tourism Organization)와 함께 수도 다카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룸비니에 불교사원 건립을 추진해 온 매쉬피 빈테(Mashfee Binte) 네팔 주재 방글라데시 대사는 불교를 매개로 방글라데시와 네팔 간 유대를 증진하는 외교활동을 펼쳐 왔다. 많은 이들은 룸비니에 불교사원을 건설하면 방글라데시의 불교유산이 네팔과 더 깊이 연결되고, 이웃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솜푸라 사원이 모델…600만 달러 소요

룸비니에 들어설 방글라데시 불교사원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솜푸라 사원(Sompura Mahavihara)이 모델이다. 건립에는 약 600만 달러가 소요될 예정이다.

현재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이 지역은 고대 팔라왕조(750〜1174)의 불교통치자들이 지배한 곳이었다. 팔라왕조는 7세기부터 12세기까지 벵골지역을 통치했다. 팔라왕조 시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사원이 건립됐는데, 이슬람과 힌두교 지배를 거치면서 파괴됐다. 현재 그 유적이 방글라데시 곳곳에서 발굴되고 있다.

▲ 솜푸라사원 유적(By Abdulmominbd, from wikipedia)

8세기에 건립된 솜푸라 사원 유적은 라즈샤히(Rajshahi) 지역에 있다. 1922~23년 처음 발굴된 이후 1934년까지 발굴이 이어졌다. 솜푸라 사원은 주거시설을 갖춘 교육기관으로, 인도대륙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북쪽에 45개, 그리고 동, 남, 서쪽에 각각 44개 등 총 177개의 방으로 이루어졌다. 방은 넓은 정원을 둘러싼 형태로 배치되었으며, 중심에는 십자형 탑이 있다. 면적은 11헥타르(0.11km2)에 달한다. 티베트인은 이 사원을 신성하게 여겨 9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이 방문했다. 팔라왕조의 고승으로서 티베트와 수마트라에 대승과 금강승불교를 전파하고, 티베트 사르마(sarma, 新譯)학파를 형성한 아티샤 디팡카라 스리즈나나(Atiśa Dīpaṃkara Śrījñāna, 燃燈吉祥智, 982~1054)도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슬람국가 방글라데시, 고대엔 불교교육·연구 중심

방글라데시의 불교역사는 아소카대왕시대(서력기원전 269~232)에 시작됐다. 위에 언급한 팔라왕조는 벵골과 비하르를 중심으로 한 인도 북동부 지역을 지배했다. 팔라왕조 시기 이 지역에 많은 사원과 탑이 건립되었다. 7~8세기에 설립된 마하스탄가르의 거대한 고쿨 매트(Gokul Madh)나 당 현장이 “700여 명의 승려가 공부하고 있다.”고 《대당서역기》에 기록한 바수 비하라(Vasu Vihar) 사원 등이 포함된다. 팔라왕조는 8세기 후반 인도철학의 거장 샨타락시타(Śantaraksita, 寂護, 680~740경)와 밀교 대수도승 파드마 삼바바(Padmasambhava, 蓮華生上師, 8세기 경) 등을 티베트에 불교 사절로 파견하기도 했다. 당시 수도인 파탈리푸트라는 한때 마가다국의 수도였고, 불교가 흥했던 도시이다. 지금은 퍼트나라고 부른다.

고대에 방글라데시 지역은 유명한 불교승원대학만 10여 곳이 넘을 정도로 불교교육과 학문연구의 중심지였다. 날란다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위크라마실라대학은 유명하다. 그러나 1000년경 이슬람이 벵골지역에 침략해 대다수 주민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킨 후 이슬람은 이 지역의 역사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세기에 힌두계의 세나왕국으로 대체되었으나, 13세기에 접어들어 다시 이슬람왕국으로 바뀌었다. 16세기에는 무굴제국이 건국했고, 이 지역은 상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후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종교 문제로 힌두교 지역은 인도에 편입되고 이슬람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었는데, 정부가 정치적으로 우세한 서파키스탄에 치우친 정책을 펴 내란이 일어났다. 그런데 서파키스탄과 대립하던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였고, 1971년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국명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로 ‘벵골의 땅’, 또는 ‘벵골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방글라데시는 무슬림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 솜푸라사원의 부조(Kazi Rashed Abdallah. from wikipedia)

불교인구 치타공에 집중…소수 종교로 핍박 받아

역사 속에서 방글라데시 지역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하지만 현재 소수 종교인 불교는 이곳에서 핍박받고 있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한다. 불교인구는 주로 제2의 도시인 치타콩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은 종교 차별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 2조는 코란의 첫 구절인 ‘Bismillah ar rahman ar rahim(알라의 이름 안에서, 자비와 지혜를)’으로 시작된다. 비록 4조 2항에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는 이슬람이다. 하지만 국가는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며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의 자유도 명시했지만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이후 무차별적인 종교차별 사건이 지속됐다. 대규모 학살이 13차례나 자행됐으며 사찰과 불상이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25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1997년 방글라데시 정부와 줌머족 간에 ‘CHT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암암리에 탄압받거나 토지를 약탈당하고 있다.

줌머족은 치타공 산악지대에 주로 거주하며 불교를 믿는 차크마 등 11개 소수민족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방글라데시의 종교 탄압과 인권 침해를 피해 우리나라에 정착한 줌머인도 있다. 이들은 재한줌머인연대를 결성하고, 한국시민사회와 함께 방글라데시 현지에 살고 있는 줌머족의 인권 보호와 사회문화적 발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줌머인의 민족·문화·종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희망이 되어줄 룸비니의 방글라데시 불교사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재세 시 방문했다는 전승이 내려오는 방글라데시에는 아직도 불교의 맥이 남아있다. 부처님오신날에 해당하는 부도 푸니마(음력 4월 15일. 남방불교권의 웨삭에 해당)에는 방글라데시 대통령과 수상이 봉축 메시지를 발표한다. 화려했던 불교역사와 전통을 언급하고 다종교 문화와 조화를 강조하면서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한다. 부처님오신날에는 불교사원 주위에서 장이 열리는 풍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룸비니에 건립되는 방글라데시 불교사원이 룸비니를 찾는 외국 순례자에게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 불교의 연을 이어가는 불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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