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선원에서 수행을 시작한 지 사흘째였던 것 같습니다. 저녁 명상을 하려고 숙소를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때 난 기력이 없었습니다. 하루 8시간씩 수행을 하는데 먹는 건 부실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기운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하시선원은 수행자를 위해 최선의 식사를 준비해주었지만 입이 짧아 다른 나라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숙소 로비를 지나 출입문을 열고 나갔을 때 누런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정말 많은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애완견이 아니라 시골에서 묶어놓고 키우는 똥개하고 비슷한 개였지만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태국이나 라오스 등 동남아에서 이런 개가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녔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법당 안으로 들어와 누워있기도 하고 기차역이든 어디든 사람 옆에서 순하고 얌전하게 그냥 누워있기만 했기에 난 덩치만 컸지 그냥 순한 개로 생각하면서 방심한 채 지나갔습니다.

▲ 낮에는 선원 곳곳에서 자다가 저녁 무렵부터 몰려다니는 개들.

그런데 개를 스쳐 지나가고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뒤에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덩치가 산만했지만 무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나도 개에게 관심 없고, 개도 나에게 관심 없다는 암묵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개가 이런 신뢰를 깨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온 것입니다. 어떤 의도로 짖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덩친 큰 개의 아는 척은 무척 부담스럽고 반갑지 않았습니다.

내가 돌아보자 개도 짖는 걸 멈추었습니다. 개는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개를 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갔습니다. 근데 개가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누군가 있나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너무 빠르게 걸으면 개가 달려들 것 같아서 명상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여기는 명상하는 사람들만 있고 개도 그 모습에 익숙할 것이라고 나름 머리를 짜내면서 아주 천천히 걸었던 것입니다. 근데 개는 좀 전보다 더 큰 소리로 짖었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또 뒤돌아봤습니다. 내가 돌아보자 개도 멈춰 섰고 짖는 것도 멈췄습니다. 개는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개를 노려봤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힘이 없어 보여서 만만하게 본 건가, 낯선 사람이라고 짖는 건가, 그냥 걸어가면 따라와서 다리를 물겠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난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가방에서 먹을 걸 내놓으라고 그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진에게 갈취당하는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숙소에서 다른 수행자들이 나왔고, 그 모습을 보자 개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달아났습니다. 누군가 개를 쫓아준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 모습이 보이자 스스로 달아난 것을 보면 내게서 먹을 걸 빼앗으려 했거나 아니면 기운 없어 보이는 나를 만만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봤던 착한 개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이후 개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됐습니다. 혼자 걸어갈 때나 밖에서 행선을 할 때는 개를 피해 다녔습니다.

야성이 남아있는 개와 거만한 까마귀

마하시선원 개들은 정말 유별난 면이 있었습니다. 짖을 때는 늑대 시절의 습성이 남아있는지 하울링을 하면서 짖었으며,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정말 요란스럽게 짖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제재하는 이도 없었고, 이곳은 그야말로 개들의 세상이었습니다. 개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인 여자수행자 명상홀 주변만 해도 다섯 마리의 무리가 있고, 세 마리가 한 팀인 무리가 있고, 혼자 다니는 개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행선을 하면서 보니까 무리가 구별됐습니다. 혼자 다니는 개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고 다섯 마리가 한 팀인 개들은 너무 설쳐서 마주칠까 무서웠습니다. 또 개들은 낮에는 바닥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거나 늘어져 있는데 해가 지려고 하면 더 설치는 게 느껴졌습니다.

마하시선원 개에 대해 불만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보다 뒤늦게 온 수행자인데 어느 날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곳 개들은 너무 사나운 거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는 미얀마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좀 뜻밖이었습니다. 난 마하시선원이 개를 너무 관대하게 대해서 개들 세상이 돼버렸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수행자의 말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매년 1000명의 사람이 광견병으로 사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미얀마에서, 마하시선원에서 만나는 개를 우리나라 개처럼 생각해서 쓰다듬거나 가까이 가는 것은 주의해야할 듯싶습니다.

▲ 마하시선원의 까마귀는 많은 데다가 극성스러웠다.

그런데 개만 이렇게 유별난 게 아니었습니다. 이 동네는 까마귀도 진짜 별났습니다. 한 번은 낮에 명상홀 마당에서 행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고요와 햇빛을, 그리고 바람을 느끼면서 나름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누군가 머리를 탁 치면서 지나갔습니다. 까마귀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면서 내 머리를 친 것입니다. 이제는 개뿐만 아니라 까마귀까지 주의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공주 학림사 선방에서 수행할 때 까마귀 소리만 듣고 있었다 싶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들은 것도 아닌데 지금 까마귀가 싸우고 있구나, 이런 걸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도 까마귀는 유난히 악을 쓰면서 울었습니다. 성격이 보통이 아닌 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는 행선을 하다가 보니까 누군가 나무에 작은 봉지를 걸어두었는데 한 까마귀가 그것을 부리로 계속 쪼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다른 까마귀들도 와서 함께 쪼았지만 봉지는 꼼짝을 않았습니다. 인내심 없는 까마귀들은 포기하고 날아가고 처음의 그 까마귀만 남아서 계속 봉지를 뜯으려고 애썼습니다. 마침내 봉지를 뜯었는지 과일들이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포기하고 갔던 까마귀들이 날아오고 그 중 가장 힘이 센 것 같은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들을 협박해서 못 먹게 하고 혼자서 과일을 먹었습니다. 열심히 봉지를 뜯었던 까마귀도 힘 센 까마귀 때문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행선을 하면서 그 까마귀가 얼마나 열심히 봉지를 뜯었는지 알고 있기에 허무하고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세계도 일하는 사람 따로, 놀고먹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물계에서도 이런 걸 목격하게 되니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은 약하지만 인내심 많은 까마귀가 좀 더 차지하는 게 옳을 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동물세계에서도 정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정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고, 이런 약육강식이 당연한 자연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선시간에 밖에서 수행을 하다보면 주변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망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성실한 수행자들은 명상홀 안에서 수행을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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