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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연기에 대한 명백한 이해… “나는 깨달았다”
김영식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2020년 08월 31일 (월) 13:51:44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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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의하는 깨달은 사람이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의 본질이 무아(無我)와 연기(緣起)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자기 삶에 적용하여 생로병사에 걸림이 없게 되며, 이에 관련한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게 된 사람이다. 나는 지금 그렇다.

용감하게 자신이 깨달았다며 ‘커밍아웃(?)’한 인물.

저자 김영식은 1962년 서울 출생, 대학 자퇴 후 기독교를 믿다가 교리가 종교적 체험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결혼하고 회사를 창업하며 평범하게 사는 와중에도 삶의 진리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09년 회사의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고 물러나 집에 은둔하며 화두 들고 정진했다. 2011년 남은 생을 진리 탐구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충분 단양 시골로 이주해 소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고된 육체노동의 일상에 살며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며 수행을 생활화하던 중 어느 순간 공부가 완전히 끝나 있음을 알게 됐다.

그의 개인적인 이력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그는 본인을 깨달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근거로 ‘명백함’을 든다. 구구절절 자신의 깨달음의 인가를 구하지 않으며 “질문과 간절함이 사라진 곳에는 명백함이 남았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는 명백함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생각 끊기’를 제안한다.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가 생기면 2초간 생각을 멈추었다가, 생각이 계속되면 허용하고 다시 2초간 멈추는 것을 지속하라고 한다. 흡사 축구에서 상대의 공격이 계속될 때 흐름을 끊기 위해 공을 바깥으로 차내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끊는 방법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개발해도 좋다.

이렇게 “생각을 멈췄을 때, 뇌가 변화한다.”고 한다. “몇 시간을 고민하던 문제가 툭 떨어져 나갔을 때 큰 상쾌감을 느끼는 것”과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무아지경에 들게 되어 경쾌한 느낌이 드는 ‘러너스 하이’라는 마라톤의 체험”을 비교해 알기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생각을 끊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며, 생각으로 이어진 ‘생각의 세계’를 벗어나면 고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생각이 길게 멎어 있게 되거나, 한 생각이 끝나고 다른 생각이 시작될 때의 간격이 길어지거나, 멈추고 싶은 생각을 그칠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의 뇌는 늘 평안해지거나, 언제든지 평안한 상태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

선각자들은 그 현상들을 깊이 이해하고,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가르친다.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며, ‘나’ 역시 환상이라고. 그 환상을 완전히 이해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그러면서 깨달은 사람은 “생로병사에서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며 “무아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자아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출가자도 아닌 평범한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깨달음에 대해 “진입 문턱을 낮추고 싶어”한다. “깨달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하게 어려워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직업을 버릴 정도로 전념하는 수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싶다”고 밝힌다.

조사들의 선(禪)이야기부터 미래학자의 다가올 지구에 대한 분석을 오가며 그는 자신이 아는 깨달음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저자는 적절하고 쉬운 예시를 들기도 하고, 지성의 언어로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깨달음을 공부하는 이들 중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깨달음의 진입장벽을 만드는 이들에게 “깨달음의 문턱을 높이지 말고, 자기 목적으로 추종자들을 만들거나 거느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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