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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인간 욕망의 두 얼굴과 바이러스공포
대강백 백운 선사의 삶과 행적
2020년 07월 23일 (목) 09:17:38 소암 스님 .

지난 겨울에 발병한 코로나19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2차, 3차 감염으로 재확산 중이다. 균이 잠복해 있다가 숙주를 만나면 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손의 접촉과 침으로 옮긴다 해서 세정제로 손을 씻고 마스크로 막아내면 사라질 줄 알았으나 공기로도 전염된다고 하니 코로나가 변종으로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19는 계절도 모르는 것 같다. 추운 겨울에 발병하고 전염되더라도 더운 여름이면 소멸하는 일반 독감처럼 계절 전염병이 아닌 일 년 내내 악성균을 퍼트릴 모양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이번의 코로나19는 100년 전 1차 대전 중에 발생해 수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과 맞먹는 전염병이라 해서 더욱더 두렵다. 눈에 보이는 전쟁만 무서운 줄 알았지 눈에 안 보이는 세균이 이렇게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고 숱한 생명을 앗아가는지 탄식할 뿐이다. 물론 현대의 첨단과학은 어떠한 신종전염병도 고칠 의료기술과 치료제 연구가 항상 준비돼 있으나 막상 새로운 전염병을 만나면 병균을 분석해서 백신과 치료약을 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다.

인류사에 나오는 수많은 전염병처럼 코로나도 야생상태에 있다가 동물과 인간으로 전파된다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은 지구의 숨은 미지의 장소를 찾아내고 과학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대가다. 산업혁명 이후 1, 2백년 동안 세계는 농경 수렵시대를 끝내고 공업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혁명의 눈부신 우주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바로 보면서 나이 든 세대들은 숨이 가쁘다. 그래서인지 십년 주기의 세대 차이가 존재하고 사고와 가치관도 달라진다. 당연한 차이겠으나 농경시대와 전쟁, 산업화와 개발독재를 거친 세대들과 90년대 이후 민주화와 정보 문명, 인권 양성평등의 존중시대로 가면서 사회적인 변화에서 오는 갈등은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60년대 이전 60, 70, 80세의 나이 든 세대들은 옛날보다 비할 데 없이 잘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이 좋았다’라고 장탄식을 내뱉는 경우가 많다. ‘추억은 아름답다’라고 한다. 우리의 지난 시절은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참혹한 수준이었다. 군사독재가 횡행해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생활도 일반적인 후진국의 특징을 다 갖고 있었다. 1세기 전 한일합방과 일제강점지의 질곡을 겪었고 해방 직후의 혼돈과 분단, 전쟁 독재가 연이어 발생해 국민들은 무엇보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일이 중요했다.

박원순 시장과 백선엽 장군의 공과

얼마 전 세상을 하직한 전 서울시장 박원순은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명문 고교와 대학을 마친 수재로 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개혁을 실천한 정의의 사도였다. 그 어렵다는 서울시장도 세 번이나 당선되고 독자적인 행정제도를 확립한 업적도 적지 않는 분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인가, 혹은 개혁의 피로일까, 아니면 끝없는 인생길에 고독감이 사무쳤을까 본의 아닌 여성 문제가 화근이 되어 하루아침에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벌써 개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법의 압박감을 못 이겨 생을 마감하고 그 뒤 민주화에 헌신한 진보 인사들이 줄줄이 자의로 비극적인 최후와 타의의 퇴장을 택한 것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것은 공은 크고 죄는 작은 박원순 시장이 당당하게 죗값을 치르고 나중에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도 있을 희망마저 불사른 일이다.

그에 비해 ‘백 세 장수’를 누린 육군 대장 1호인 백선엽은 오래 산 것만으로도 칭송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피 끓는 20대에 일제 군대에 복무한 장교로서 ‘독립군섬멸부대’에 가담했다는 과오 때문에 6·25 낙동강 전투의 영웅이라는 평가 못지않게 그의 일제 부역의 그림자는 부정적이다. 그 후 군의 후배인 박정희 대통령 정권 하에서 백선엽은 갖은 화려한 고위공직을 거쳐 소위 부귀영화를 평생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백선엽이 일제강점기의 장교군인으로 한국독립군을 상대로 싸운 것은 분명 반민족적 친일행위다. 근현대사의 왜곡을 바로잡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그의 공과도 시간을 두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만 백 세 장수를 누린 그가 젊은 시절 범한 잘못을 솔직히 반성하고 참회했다면 좋았을 것이나, 끝내 회피하고 말았으니 유감이다.

참고로 일본 장교 출신이며 조선말 명문가 출신인 이종찬 전 참모총장은 백선엽과 반대로 평생 조상의 친일 경력과 일본 군 복무를 참회하고 살았다. 이승만 정권 때도 계엄령을 거부해 참모총장직을 백선엽에게 넘겼고, 청렴해서 전 대통령 박정희도 유일하게 존경했다는 철저히 정치 중립을 지킨 참군인이다. 이종찬은 박정희가 유신 국회의원으로 추대했으나 임기 내내 국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는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국방 비사를 쓴 전문기자의 말로는 장면 총리가 만일 이종찬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했다면 5·16도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민간인 출신 현석호 국방부 장관은 군을 너무 몰랐다고 한다. 독실한 불자로 한국군 역사상 이종찬은 평생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은 청빈한 삶을 살았고, 반면에 백선엽은 가톨릭 신자로 돈과 권력 명예를 탐했다. 불교계가 우리 군의 스승인 불자 이종찬 장군을 새롭게 조명하면 좋을 것이다.

백운 스님의 저술과 생사에 초연한 삶

6월 중순에 입적한 백운 지흥(白雲 知興) 스님은 부친이 전설적인 큰 선지식인 장성 백양사의 송만암 대선사와 인곡 대선사와 인척 관계로 태어날 때부터 불연이 깊었다. 단명하다고 해서 어린 나이에 절에 맡겨져 부모의 정을 그리워했으나, 고독한 절집 안에서 고통을 잘 견디고 후에 대학승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광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전 해인대학인 현 경남대학에서 유명한 대학승인 지관 스님과 동문수학했으며, 전통 불교 강원을 수료했다. 그리고 경학만이 아닌 참선 수행에도 적지 않는 정진을 거듭해서 참선과 교학을 함께 연마해 견성성불에는 참선이 중요하지만, 교학이 없으면 절름발이수행자가 된다고 보았다.

마치 고려불교의 보조국사가 선교쌍수(禪敎雙修)를 주창한 것과 같다. 1950년대 불교 정화개혁시대를 거치면서 교불교를 멀리하고 선불교 일변도에 집착하는 오류를 낳았던 시절이다. 내가 어릴 때 모신 대선지식들도 선과 교를 겸비한 스승들이 많았다. 일례로 1940년대부터 전설적인 선지식인 장설봉, 엄성호, 강고봉, 김탄허 대강백은 대학승이면서 동시에 평생 대선사로 숱한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려불교는 물론이요, 조선의 척불 시대 보우 서산 사명 이후 수많은 고승은 모두 선교를 갖춘 대선지식이었다. 근대불교의 조사인 경허 선사도 젊은 시절 대강백으로 나중에 대도인으로 근대한국불교를 계승한 수월, 해월, 만공, 담해, 성월, 용성 등 기라성 같은 수제자들을 낳았다. 해방 후 이분들에게서 《선문염송》, 《벽암록》, 《전등록》, 《선문촬요》, 《선관책진》,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각종 선문과 경문의 강의와 저술이 나왔다. 1960년대 불교 정화 이후 동산, 청담, 금오, 경산, 월하 선사 등의 불교개혁으로 비구 종단인 조계종이 확립되었으나,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불교가 선교양종의 전통교육으로 인재양성의 초석을 닦지 못했을 것이다.

백운 스님은 호남의 백양사와 영남의 범어사 양대 문중이 배출한 드문 인재로 저술과 강의를 통해 불법 홍보와 인재 양성에 큰 업적을 남겼다. 백양사의 편양 연기 선사를 소재로 한 <양 치는 성자>는 일찍이 유명세를 탔던 불교문학 작품이며 그 후 수십 년간 저술에 몰두했다. 서옹 종정의 뜻을 받들어 임제 연의와 진묵 대사, 초의 선사, 부설 거사, 완당 김정희, 만암 대선사, 인곡 대선사, 성월 대선사, 동산 대선사의 고승 일대기를 썼다. 불립문자의 선을 높이고 교를 낮추는 조계종의 풍토에서 선종 사찰인 백양사와 범어사의 출신 가운데 근래 대중적인 글을 쓴 분은 백운 스님이 처음일 것으로 생각한다.

한낮에는 밝은 구름 벗 삼고
푸른 밤에는 맑은 냇물 벗이 되어
시비 벗어난 자연의 온갖 모습이여
정녕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스님의 열반임종게는 넓고 깊은 정신세계를 엿보게 한다. 정신은 맑았으나 육신이 불편해 수년간 자리보전했던 스님은 홀연 법랍 77세 세수 87세로 사바를 하직하고 도솔천내원궁으로 떠났다. 남은 제자들과 후학들이 매우 슬퍼하고 추모의 마음이 지극하다.

회고컨대 범어사 출신으로 또한 각종 글을 쓰는 나는 스님의 후배로서 시사 받은 바 크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서술과 알찬 내용, 치밀한 묘사는 냉철하고 담백한 법정 스님의 문장과 대비된다. 백운 선사 대강백이시여! 속환사바하소서.

소암 | 승려시인, 불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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