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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불교를 넘어 한국 춤의 백미
2020년 04월 06일 (월) 10:47:52 이철진 춤꾼, 불교문화단체 구슬주머니 대표
   
▲ 사진 제공 이철진.

대부분의 전통예술이 그러하듯이 승무의 발생연도 역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은 있다. 먼저 불교의식 무용설이다. 영취산에서 석가세존이 설법을 할 때 가섭이 이를 알아차리고 춤을 추었는데, 후에 이를 승려들이 모방하였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민속유래설이다. 이 민속유래설에는 1) 황진이가 추었다는 황진이 유래설, 2) 이순신 장군이 적을 속이기 위하여 긴 장삼을 입히고 춤을 추게 하였다는 설, 3) 상좌승이 스승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시작되었다는 설, 4) 파계승이 번뇌를 잊기 위하여 북을 두드리면서 추었다는 설 5)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인 성진이 춘 춤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학계가 인정하는 설은 승가의 법고춤에서 출발하여, 조선 중기 운수승과 사당패에 의하여 민간으로 내려왔다는 설이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승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법고(큰북)와 의상이다. 불교의 의식무인 나비춤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장삼과 고깔, 그리고 가사를 걸치고 두 손에 북을 치는 북가락과 법고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

따라서 승무는 개인의 창작춤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승무와 유사한 점을 보이는 춤은 전국의 모든 춤판에서 볼 수 있다. 불교의 의식무에서부터 무속의 ‘불사거리’, ‘칠성거리’, 각 지방의 탈춤에 나타나는 노장춤이나 소무 등의 춤이 이 그것이다. 또한 기록이 남기 시작한 1900년 초기 기사 등을 볼 때 내로라하는 춤꾼이나 기생은 자신만의 승무가 있었고, 지역적으로도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불교의 의식무가 세간으로 내려오면서 보편화되었고, 그 속에는 불교의 법음이 숨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 한영숙(1920~1990).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무 보유자. 민속춤의 대가인 한성준의 손녀로, 13세부터 춤을 배웠다. 조선음 악무용연구소에서 양금과 해금을 익혔 으며, 승무·검무·살풀이춤·바라춤· 태평무·한량춤·학춤 등 많은 전통춤 을 배웠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 에서 살풀이춤을 추어 한국춤의 진수를 세계에 알렸다.

한성준이 집대성, 손녀 한영숙 꽃피워

조선 후기 이를 집대성한 사람은 명고수이자 명무인인 한성준이라는 명인이었다. 한성준은 무대예술이 등장한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의 전통춤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특히 한성준은 승무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선성악연구회에 ‘승무부’를 두어 승무만을 따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근대를 관통하면서 승무를 아름답게 가꾼 이는 그가 후계자로 삼은 손녀 한영숙이다.

한영숙은 1969년 제일 먼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의 승무가 세간으로 내려와 한국춤의 백미로 자리 잡았으며, 국가가 이를 인정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스승에서 제자로 면면히 내려오는 승무는 개인의 춤이라기보다 불교, 나아가 한민족의 소중한 춤으로 인식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한영숙이 서울에 올라와 승무를 사사하기 시작한 것이 1933년이라면 현재까지(2020) 그녀의 춤은 87년 동안 전승되고 있는 것이며, 한성준이 1907년 서울에 정착한 이후 활동시기를 포함하면 113년이 된다. 또한 승무의 역사성은 최소 조선 중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그 기원을 불교의식무에서 찾는다면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고 팔관회 등이 열린 시기까지 소급될 수 있으므로 1500년의 세월 동안 갈고 닦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승무는 한 개인의 춤일 수도 있지만, 나아가 불교와 한민족의 춤이기도 하다.

인생과 우주를 설하는 춤

그렇다면 승무의 어디에 불교의 사상이 남아 있는 것일까?

춤은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내용이 있는 춤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미를 강조하는 춤이다. 전자의 춤이 로맨틱 발레나 탈춤처럼 스토리가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승무와 같이 장삼과 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영숙류 승무의 장단은 10번의 변화를 거쳤으며, 법고 후의 당악이 춤으로 편성되어 있는 특이한 형식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승무는 바닥에 엎드려 북을 향하여 합장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느린 염불장단이 시작되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겁고 단아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타령으로 넘어가면서 탈춤에서 보는 기운찬 춤사위를 구사하다가 굿거리 장단에서는 농익은,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반조하는 듯한 완숙미를 보인다. 법고의 북놀음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빠른 당악을 거쳐 관객에게 합장하면서 끝맺는다. 이러한 춤의 편성으로 보았을 때 승무는 광대무변한 우주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게는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그리고 크게는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장삼을 통하여 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춤을 출 때의 느낌 역시 그러하다. 부처님(북)을 향하여 바닥에 엎드려 공연의 시작을 기다릴 때에는 뱃속의 태아처럼 세상에 처음 발을 딛는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타령에서는 용맹정진하여 진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활달함이 느껴지고, 북을 두드릴 때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참회하는 듯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당악장단에서 법열의 환희가 펼쳐진 후 다소곳이 관객을 향해 고개를 숙일 때는 한 인생을 잘 살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

은 춤을 추는 개인만의 느낌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전이된다.

   

▲ 이매방(1927~2015).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 97호 살풀이 보유자.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이대조 문하에서 승무를 배웠고, 박영구에게 법고와 승무를 배웠다. 1948년 임방울명인 명창대회에서 처음으로 승무를 추면서 이름을 알렸다. 작품으로는 삼현승무·보렴승무·살풀이· 검무·산조 등이 있다.

한영숙류·이매방류 승무의 비교

평론가 이근수는 한영숙 승무와 이매방 승무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한영숙류 승무의 특징은 그 남성적인 호방함에 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한 건장한 비구승이 세상의 고뇌를 떨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며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수행과정을 춤으로 드러낸 듯한 느낌이라면, 이매방의 승무는 세상의 한을 등지고 입산하여 속세를 잊고자 하는 비구니 스님의 고뇌와 애련이 느껴진다.”

현재는 세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한영숙과 이매방의 승무를 각각 비구 스님의 용맹정진과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으로 해설한 것이다.

현재 승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승무는 승가가 아닌 세간에서 보여주기 위한 춤 즉, 예술춤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불교가 승가에만 머물지 않고 세간에 깊게 내려온, 전법에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그 예술성만 강조하다보니 일부 승무 지도자가 이웃종교인인 것은 우려스럽다. 승무의 심오한 의미를 크게 오해하여 해석하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무 보존·발전을 위한 제언

이러한 면에서 앞으로 승무를 통한 전법이 더욱 왕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음 세가지 방법을 제시해 본다.

1) 무엇보다 불교무용학과의 개설이 시급하다. 이웃종교에서는 선교무용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무용과와 무용 전공이 생기는 반면 불교계는 승무라는 걸출한 예술을 보유하고도 변변한 무용과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 근래 5회째를 맞고 있는 불교무용대전과 같은 축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불교무용이라는 개념은 불교무용대전 이전에는 없었다. 불교무용대전을 통하여 불교무용의 정의를 내리고, 그 정수로 승무를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은 축제를 통하여 불교무용의 발전을 가속한 결과이다.

3) 나아가 불교집안 내부에서도 승무와 같은 무형문화재의 불교문화유산 지정을 도와야 할 것이다. 특히 불교음악이나 불교미술이 그러하듯이 승무를 예불이나 재의식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도 효과적인 발전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승무를 중심으로 불교를 전법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 될 것이며, 승무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불교예술로서 인식될 것이다.

승무가 한국 춤의 백미로서 오랫동안 보존되고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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