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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조타
선종의 거대한 알레고리
2020년 04월 06일 (월) 10:01:21 강호진 작가

가끔 대승불교와 선불교는 정통 불교에서 벗어난 가르침이란 비난을 접할 때마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떠올린다. “만약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고, 복음서가 누군가의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할지라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은 내겐 여전히 진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승경전이 붓다가 직접 설한 내용이 아니고, 선종의 법맥이 종파의 자의적 편집임이 밝혀진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대승과 선종의 가르침을 존숭한다. 그 가르침의 바탕에 자리 잡은 공(空)이야말로 언제 누가 어디서 말했든 진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적 가르침은 역사적 실재나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여전히 진리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 선어록에 등장하는 선사나 일화들이 모조리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하거나, 선종 텍스트에 적힌 법맥을 불변의 진리인양 여기는 것이 선불교의 선양에는 어떠한 보탬도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그 자체로 비불교적이다. 사실과 과학에 근거를 두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세속적 논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실존 아니라도 충분히 가치 있다

선종의 법맥을 살피다보면 실존인물인지 의심스러운 이가 한 둘이 아니지만, 파조타처럼 근본이 없는 이도 드물다. 파조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경덕전등록》에서도 출신이나 속명은 찾을 길 없고 오조 홍인의 제자인 숭악 혜안(慧安)의 법을 이었다고만 나온다. 하지만 파조타란 이름의 유래조차 관련된 일화에서 따온 것이라 그의 실존가능성은 너무 미미하다. 어쩌면 파조타는 선종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응축한 가상의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경덕전등록》 원문의 직역을 통해 그 일화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숭악(嵩嶽) 파조타 화상은 성이나 이름으로 불려 지지 않았다. 그의 언행(言行)은 헤아리기 어려웠고, 숭악에 은거해있었다. 산 입구 마을에 묘당(廟堂)이 있었는데 매우 영험한 곳이었다. 묘당의 전각 가운데에는 부뚜막 하나만 안치되어 있었는데, 가깝거나 멀리서 온 사람들로 제사가 그칠 날이 없었고, 생명이 있는 제물을 삶거나 죽이는 일이 매우 많았다. 화상이 어느 날 시자를 거느리고 묘당에 들어가 지팡이로 부뚜막을 세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이 부뚜막은 단지 진흙과 기와를 합성해서 만든 것이니, 성스러움은 어디서 온 것이고, 영험함은 어디서 생겨난 것이냐? 이와 같은데도 어찌해서 생명을 삶고 잡고 하는 것인가?”

화상은 다시 지팡이로 부뚜막을 세 번 두드렸다. 그러자 부뚜막이 기울어지더니 부서져서 떨어졌다.(스승인 혜안국사는 이에 그를 파조타(破灶墮, 부뚜막이 깨어져 떨어졌다는 뜻)라 불렀다.) 잠시 후,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이가 홀연히 나타나 선사 앞에 절을 올렸다. 선사가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그는 “저는 본래 이 묘당의 부뚜막 신(조왕신)인데 오랫동안 업보를 받다가 선사께서 설하신 무생법(無生法) 덕분에 이곳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므로 특별히 감사를 올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선사는 “그건 네가 본래로 지닌 성품 덕분이지, 내가 억지로 한 말 때문은 아니다.(是汝本有之性 非吾彊言)”라고 답했다. 부뚜막 신은 다시 선사에게 절하고 사라져버렸다. 조금 있다가 시자가 선사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스승님 곁에서 오랜 시간 있었지만, 스승님이 저희를 위해 곧장 들어가는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셨는데, 부뚜막 신은 어찌해서 지름길의 가르침을 얻어 천상에 태어났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나는 단지 그에게 이것이 진흙과 기와의 합성이라 말했을 뿐이지, 그를 위해 별도의 도리를 설한 적이 없다.” 시자가 아무 말 없이 서있자, 선사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고 물었고, 시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선사가 ‘본래 지닌 성품이거늘 어찌 모른다고 하느냐?’고 말하자, 시자는 곧 절을 올렸다. 선사는 이에 “떨어졌구나, 떨어졌구나, 깨졌구나, 깨졌구나.(墮也墮也 破也破也)‘라고 말했다.

파조타 일화에서 보는 선종의 핵심사상

위의 일화는 세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는 선종의 핵심적 가르침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제당(祭堂)의 혁파다. 파조타는 기복(祈福)을 위해 살생을 일삼는 묘당에 들어가 생명에 대한 윤리적 당위성을 들먹이는 대신 신령한 부뚜막이 진흙과 기와의 합성이란 불교 본연의 연기법을 제시한다. 부뚜막이 공(空)이거늘 거기서 이루어지는 성스러움이나 영험 또한 공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여기서 파조타는 마치 달마의 화신과 같다. 달마가 양무제를 만나 ‘성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廓然無聖)’라고 일갈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둘째는 파조타와 조왕신과의 대화다. 감사를 표하는 조왕신은 파조타의 행위가 이웃종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폭력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를 선사한 것이란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핵심은 조왕신이 파조타의 설법으로 해탈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육조혜능 이후 선가에서 중시해온 언하변오(言下便悟, 스승의 말이나 행동 끝에 즉시 깨닫는 것)의 전통을 보여준다. 물론 멀쩡하게 설법을 해놓고도 그것은 억지로 일으킨 말이었다고 우기는 파조타의 행동에서 언어에 대한 선종 특유의 경계심과 노파심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후대에 기록된 선서들은 파조타의 말 대신 부뚜막을 두드린 지팡이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다.

셋째는 파조타와 제자와의 문답이다. 제자는 파조타가 비밀스러운 별도의 가르침을 내려서 조왕신이 천상에 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나 파조타의 입장은 단호하다. 평상시에 늘 말해온 연기의 도리를 전했을 뿐이고, 깨달음은 결국 각자의 본유지성(本有之性, 본래 지닌 부처의 성품)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수를 하다 코를 만지는 것처럼 쉽고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밖에 있는 것이라 여기는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이 바로 본유지성이다. 혜능의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이 선’이란 주장에서 시작해 마조의 ‘평상심이 도’라는 선언에서 완성된 본유지성의 사상은 결국 선종의 대표적 기치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파조타의 일화는 달마부터 혜능, 그리고 마조의 사상까지 함축한 선종의 거대한 알레고리로 보아도 좋다. 이솝우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선어록이나 파조타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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