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짐꾼들을 보았습니다. 내 눈에 그들은 시지푸스와 같은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걸려 올라가는 험한 산길을 그들은 이틀 만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삼십 킬로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손에 쥐는 돈은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고, 만약에 다치기라도 하면 굶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백년을 이렇게 등짐을 져 날라도 그들은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짐을 져야 할 운명으로 여겨졌습니다.

▲ 버거운 무게를 등에 지고 산에 오르는 히말라야 짐꾼들.

처음엔 ‘시지푸스 같은 삶’이라 여겨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가벼운 짐을 지고 아주 천천히 가면서도 오만 상을 찌푸린 채 올라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최신 유행하는 것 같은 네팔 노래가 들려오더니 짐꾼들이 순식간에 나를 지나쳐 앞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들의 걸음은 경쾌했습니다. 또 젊은 남자애들은 여러 명이서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베이스캠프 롯지에 짐을 전해주고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내려갔습니다. 또 어떤 할아버지는 대나무로 짠 바구니로 쌀 포대를 나르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마스떼” 라고 인사했습니다. 버겁게 보이는 무게를 옮기면서 그렇게 밝은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난 오르막을 오를 때 인사하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말을 해서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인사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짐을 나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짐꾼들은 힘겨워 보였습니다. 특히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무거운 철근을 두 사람이서 나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산을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짐꾼들의 삶은 시지푸스의 삶처럼 힘겨운 것이었고, 한없이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서 마큐라는 곳에서 포카라까지 오는 지프를 타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짐을 들어줬던 포터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지프를 타게 됐습니다. 롯지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사람과 우리 포터를 제외한 짐꾼 둘이 함께 탔습니다. 요리사도 그렇지만 짐꾼들도 아주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자주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산에서 지프를 타는 곳까지 내려오는 데만도 종일 걸리는 먼 길이었는데 지프를 타고 다시 포카라까지 가는데 4시간 걸리고, 그들은 포카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아주 먼 길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길인데 요리사는 내려오면서 마을마다 들러 아는 사람들과 술을 마셨는지 지프를 탔을 때는 거의 만취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프에 탔을 때 자리 배치가 좀 이상했습니다. 운전석 옆에는 술에 취한 요리사를 앉히고 남편과 나를 뒷자석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뒤쪽 집칸을 개조한 의자에 포터와 짐꾼들이 타고, 또 거기에 짐을 가득 싣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난 자리 배치가 너무 이상하다면서 짐이라도 우리 쪽으로 넘기라고 계속 말했지만 포터와 짐꾼들은 한사코 만류했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와 요리사가 차비의 대부분을 내고 그들은 거의 얻어 타는 수준으로 조금 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심상 우리가 편하게 앉아서 가도록 하고 자신들은 짐칸에 탔던 것입니다.

청룡열차 타듯 험난한 길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그들이 그렇게 불편한 자리에 끼어 앉아서 험한 길을 4시간이나 가야 하는 게 마음 쓰였습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무척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아침 7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8시간을, 그것도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왔기 때문에 거의 체력이 바닥나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프가 출발하자 이들이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가 비포장도로를 가다보니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의자에서 튀어 오르기도 하고 한쪽으로 밀려서 다른 사람에게 쏠리기도 하는데 뒤에 앉은 짐꾼들은 그때마다 청룡열차를 탄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기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즐거운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의 즐거움이 전염됐는지 이상하게 나도 차를 타는 일이 즐겁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걷기만 하다가 차를 타니까 마치 처음 차를 탄 아이처럼 의자에 앉아서 흔들리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여겨졌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언제 포카라까지 가지?”라면서 무려 네 시간이나 차를 타고 갈 일이 귀찮게만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앉은 짐꾼들의 즐거움이 나에게 전염돼서 나 또한 그들처럼 그 상황을 즐겁게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차에는 그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산에서 텔레비전과 단절된 생활을 해왔던 이들은 운전사가 켜놓은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DMB는 백미러에 걸려 있었는데 네팔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계속 나왔습니다. 노래도 좋고, 화면도 재미있게 자주 바뀌어서 나도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편하고 싶으면 현재 즐길 수 없다”는 깨달음

산에서 지프를 타고 포카라로 가면서 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내 부정적이기만 하던 마음이 갑자기 긍정바이러스라도 맞은 것처럼 다 좋고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내 뒤에서 즐겁게 텔레비전을 보는 히말라야의 짐꾼들에게 해피바이러스가 옮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난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나보다 몇 배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무거운 짐을 나르고 결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도 아주 가끔 만나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난 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들에겐 처음부터 그것이 없었습니다. 편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을 때는 참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현재를 즐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차 타는 걸 재미있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말라야 산을 일주일 동안 오르면서 행복한 순간도 있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됐고, 히말라야를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수용’의 자세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지프를 함께 타고 온 짐꾼들을 통해 삶을 즐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과의 동행은 내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청룡열차를 탄 아이처럼 마음이 울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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